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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의 아들 102

검투사의 아들 22

원세가 잠에서 깬 시각은 다음날 정오쯤이었다. 원세의 잠자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던 노인이 원세가 눈을 뜨자마자 호통을 치듯 말했다. “어린놈이 늦잠은, 그렇게 게을러서 뭘 찾겠다는 게냐! 한심한 놈 같으니, 이놈아! 자고로 부지런한 자만이 뜻한 바를 얻을 수 있다고 했느니라! 네놈처럼 게을러터져선 끼니는커녕 굶어 죽기 딱이지, 알겠느냐! 이놈아!” “아 함, 훤히 날이 밝은 걸 보니, 정오쯤 된 것 같군요.” 하품하며 부스스 일어난 원세는 못 들은 척 하품을 해댔다. 그리곤 하늘을 올려다보며 동문서답(東問西答)식으로 말했다.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킬킬, 좋다. 이놈아, 어디 굶어봐라! 얼마나 견디는지,” “할아버지, 가르쳐주지 않을 거면 가만히 계세요. 다 제 문젭니다.” “이놈아!..

검투사의 아들 2021.11.08

검투사의 아들 21

꼬르륵, 꼬르륵, 꼬륵, 물배만 채워서인지 꼬르륵 소리가 심하게 났다. “제길, 전량을 가지러 가긴 정말 싫은데...” “내 말만 듣는다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먹을 것을 주지,” 노인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됐습니다. 내 굶어 죽고 말지 사람은 안 죽입니다.” “그래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썩을...” “......” ‘저놈을 어떻게 해서든 제자로 삼아야 한다. 제자가 아니더라도 무공을 가르쳐 그놈만은 꼭 죽이게 해야 하는데, 음, 내 손으로 죽일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련주님, 보고 계십니까? 제 신세를 보십시오. 련주님의 엄명이 아니었다면 벌써,’ 노인의 입에서 회한에 사무친 자조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에게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참, 불쌍한 할아버지네. 그런데 그동안 먹..

검투사의 아들 2021.11.05

검투사의 아들 20

날이 밝았다. 두 필의 흑마가 객점 앞에 세워져 있었다. 객점에서 나온 천수와 국환이 굳게 손을 잡았다 놓으며 말에 올라탔다. 헤어지기가 섭섭했을까, 그들은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철인, 내 부탁 잊지 말게,” “추객, 제수씨까지 내가 책임지지,” “떽, 아무튼 몸조심하시게,” “내 걱정은 말고 자네나, 아무튼 우리 두 달 후에 보세!” “두 달 후에--- 이랴!” “이랴!” 히히힝- 히히힝- 두 사람의 채찍질에 말이 앞발을 높이 들어다 놓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동서로 갈린 길을 말들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배웅하러 나왔던 점소이가 양쪽을 향해 번갈아 손을 흔들어댔다. ----- 그 시각이었다. 계곡의 암동, 정적과 어우러진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청아하게 암동을 울렸다. 언제 머리를 손질해..

검투사의 아들 2021.11.02

검투사의 아들 19

큰 구경거리가 객점 밖에서 벌어졌다. 객점에 있던 손님들은 먹던 음식도 제쳐놓고 우르르 몰려나갔고, 고개를 갸웃거린 점소이는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자마자 뛰쳐나갔다. 점소이의 눈엔 동료가 싸움하러 나갔는데도 태연하게 앉아있는 천수의 행동이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어이쿠! 쓰벌, 배때기에 철판을 깔았나,” 한 청년이 슬며시 주먹을 굳게 말아 쥐더니 떡 버티고 선 국환의 복부를 기습적으로 가격했다. 그러나 신음을 흘린 건 청년이었다. “어쭈, 이번에도 버티나 보자, 이얍! 얏!” 퍽! 이를 지켜본 다른 청년이 눈에 불을 켜곤 순간적으로 몸을 날렸다. 제법 날렵한 발차기가 국환의 귓가를 스쳤다. 이어서 몸을 회전한 청년은 날렵하게 국환 앞으로 다가서며 주먹을 날렸다. 주먹은 휙. 휙,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빨..

검투사의 아들 2021.10.29

검투사의 아들 18

여기는 어둠이 깔린 낙양, 낙양에서도 후미진 곳에 자리한 한 객점, 객점 입구에 내 걸린 등에는 만루(滿樓)라 적혀 있었다. 그때 객점에 딸린 마방 쪽에서 두 사나이가 걸어왔다. 흐릿한 불빛에 드러난 사나이들은 고천수와 함께 온 철인(鐵人), 양국환이었다. “어서 옵쇼.” 두 사람이 객점으로 들어서자, 키가 작달막한 20대 점소이가 반갑게 맞이했다. “묵어갈 방이 있는지 모르겠군.” 철인 양국환이 객점 안을 휘 둘러보며 말했다. “딱 하나 남은 방이 있기는 한 뎁쇼. 제일 좋은 방이라...” 눈치를 보는지 흘끔거린 점소이가 말끝을 흐렸다. “좋네, 그 방을 주게, 일단 배는 채우고 올라가야겠지,” “예-예-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점소이의 안내로 빈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맞은편 탁자를 바라보며 주름이 잡..

검투사의 아들 2021.10.26

검투사의 아들 17

“할아버지, 귀 아파요.” 얼마나 웃음소리가 컸던지, 원세는 귀를 틀어막았다. “흐흐... 이리 가까이 앉거라!” “왜요?” “이놈이 겁을 다 내네.” “겁내긴 누가 겁냈다고 그래요. 자요. 왜요?” 원세는 주춤거리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괴인 맞은편에 앉았다. “손을 내거라!” “자요.” 원세는 퉁명스럽게 말하곤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겁이 났는지 내미는 손이 잔잔하게 떨었다. “으음, 제법 탄탄히 다져졌군. 어느 놈인지 제자 하나는 잘 뒀어, 그런데 이 기운은 뭐지? 아니야, 기혈 따라 흐르는 기운 때문인가? 허허, 이젠 늙었음이야, 됐다. 이놈아!” 한참 동안 진맥을 짚어본 괴인은 냅다 손을 뿌리쳤다. “그런데 할아버지! 역정은 왜 내세요?” 약간 짜증 섞인 원세의 목소린 제법 당당했다. ..

검투사의 아들 2021.10.23

검투사의 아들 16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원세와 괴인은 2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앉은 상태로 꿈쩍 않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갔을까, 원세의 산발한 머리칼 사이로 살짝 드러난 눈꺼풀이 파르르 떨었다. 운공도 운공이지만 정신력의 한계에 달했는지, 원세는 주화입마와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이놈! 뭘 꾸물거리느냐? 냉큼 일어서거라!” 별안간 암동이 들썩거렸다. “윽, 누구지?” 원세가 답답한 신음을 흐리곤 눈을 번쩍 뜸과 동시 벌떡 일어섰다.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꿈에 볼까 무서운 괴인의 모습이었다. 원세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원세가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누구?” “킬킬킬- 이놈!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왔느냐?” 괴인의 머리칼 사이로 형형..

검투사의 아들 2021.10.20

검투사의 아들 15

따가닥, 따가닥, 원세가 한창 운공에 빠져있을 즈음, 일단의 인물들이 아침 햇살을 뒤로하고 장원을 떠나고 있었다. 그들은 제갈왕민 일행이었고 배웅한 인물들은 진충원을 비롯해 쌍노와 호위무사들이었다. 제갈왕민 일행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진충원이 돌아서며 쌍노에게 일갈했다. “쌍노! 준비를 시켜라!” “예, 주인님! 너희들은 나를 따라라!” 진충원은 뒷짐을 하곤 천천히 마방 쪽으로 걸어갔고, 천수를 비롯한 호위무사들은 쌍노를 따라 장원으로 들어갔다. 대략 반 시진쯤 흘렀을 것이다. 대청 앞에 천수를 비롯해 호위무사 20여 명이 정렬해 서 있었다. 그들은 작은 봇짐을 메고 있었고, 일견해도 멀리 길을 떠날 차림새였다. 그런데 풍객은 보이지..

검투사의 아들 2021.10.17

검투사의 아들 14

으스스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갈 땐 오싹오싹 한기가 들었고 겁이 나기도 했다. 몸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휴- 많이 들어온 것 같은데, 먹을 물이 있기는 할까, 어쨌든 냄새는 안 나서 좋다. 후-후, 후-휴--” 앞쪽을 노려보는 원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마치 먹이를 찾아 나선 들짐승의 눈빛이었다. 몇 번 깊게 심호흡을 해댄 원세가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제법 힘이 들어간 발걸음에 철벙거리는 소리만 크게 동굴을 울려댔다. 들려오던 물방울 소리마저 철벙거리는 소리가 삼켜버렸다. 어어어-- 첨벙- 대략 50장은 들어갔을 것이다. 동굴이 이번엔 좌측으로 꺾였다. 원세가 조심스럽게 돌아서서 몇 걸음 내디딘 순간이었다. 발밑이 푹 꺼지는 바람에 원세의 몸은 그대로 물..

검투사의 아들 2021.10.14

검투사의 아들 13

날이 밝기는 이른 시각이었다. 진 가장 별당 뒤뜰, 청의 노인이 샛별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때 한 사나이가 뒤뜰로 다가왔다. “의원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천수, 왔는가,” 사나이가 다가오자 노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무슨 근심이라도?” “근심은 무슨, 자네야말로 근심이 크겠군.” 노인이 천천히 돌아섰다. “예, 네에, 걱정됩니다.” “자네답지 않군, 그렇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 원세 그놈은 사지(死地)에 갖다가 놔도 살아 나올 놈일세!” “저야 의원님 말씀을 믿지만, 그래도 걱정이 됩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 그런데 말이야, 이 시간에 날 찾아온 걸 보면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네. 그려,” “의원님!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뭘 말..

검투사의 아들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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