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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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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야의 유정만리 2권 16화 무룡이 읍성 입구에 당도할 즈음엔 어둠이 잔잔히 깔리고 있었다. 그때는 읍성 초입에 있는 호산객점이 등불을 환하게 밝힌 때였다. 무룡은 객점 앞에 서서 문 옆에 걸려있는 두 개의 등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객점 안을 기웃거렸다. “냄새 한번 좋다. 누구 없나? 길을 물어봐야 하는데, 오늘도 산에 올라가서 자야겠지, 킁킁,” 무룡은 중얼거리며 객점 안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냄새를 맡아댔다. 꼭 개가 냄새를 맡으며 킁킁거리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구걸하러 온 자 같았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하는 행동은 약간 모자란 듯이 보이기도 했다. “이보게 젊은이! 게서 무얼 하는 겐가, 들어가지 않고,” 언제 다가왔는지 50대로 보이는 사나이가 말을 걸었다. 별안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나자 무룡이 급히 돌아섰다. “아,..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5화 3장, 소연을 찾아서 호북성 양양에서 40리쯤 떨어진 복룡산(伏龍山), 복룡산은 첩첩산중이 깊기로도 유명한 산이다.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복룡산 중지로 이어진 숲길을 따라 세 필의 흑마가 달려가고 있었다. 말 탄 자들은 흑색 무복에 검을 어깨에 메고 있었으며, 급한 일이 있는 듯 말채찍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달렸다. 두두두, 두두두, 두두두, 말들은 능선을 돌아 측백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길로 들어섰다. 길게 뻗은 측백나무 숲길을 지나자 천년 고송들이 울창하게 들어선 평지가 나타났다. 말들은 고송들 사이로 곧게 이어진 길을 내쳐 달려갔다. 워워, 워워, 워- 히히힝, 히힝, 히히힝, 한 채의 커다란 장원 앞에 말들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멈췄다. 무황세가(武皇世家)..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4화 여기는 천지봉, 파란 하늘엔 목화솜을 띄워 놓은 것처럼 하얀 뭉게구름들이 두둥실 떠다녔다. 아, 하고 함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하늘은 너무도 맑고 깨끗했다. 휘이잉, 휘이잉, 북쪽 계곡을 타고 제법 세찬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은 계곡을 지나더니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과 한차례 실랑이를 벌이곤 곧바로 서쪽으로 비켜 달아났다. “얏! 얏! 이-얏! 얏!” 절벽 앞, 한 여인이 목검으로 찌르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낭랑한 기합 소리가 당차다. 여인이 움직일 때마다 등 뒤로 늘어진 검은 머리가 차랑거렸다. 살펴보니 여인은 가죽으로 만든 반바지에 가죽조끼를 입었으며, 머리는 분홍색 끈으로 묶어 길게 늘어 뜨렷다. 늘어뜨린 분홍색 끈은 의외로 잘 어울렸다. “소연아! 이젠 그만하고 들어오너라!” 오랫동안 연습을 했..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3화 동녘을 붉게 물들이며 여명이 밝아왔다. 태양의 붉은빛이 피에 얼룩진 무룡을 감쌌다. 마치 불의 사나이처럼 두렵게도 느껴졌다. 굳어버린 피만 아니라면 무룡의 얼굴은 득도한 스님의 얼굴처럼 평온해 보였을 것이다. “음--” 무룡이 눈을 번쩍 떴다. 순간, 강렬한 눈빛이 쏘아나가듯 뻗쳤다가 사라졌다. 무룡은 옆에 떨어진 검을 집어 들곤 검신을 한차례 쓰다듬었다. 그때, 무룡의 마음을 아는 양, 검신에서 푸른 검기가 은은히 피어올랐다. 검을 꽉 틀어쥔 무룡이 천천히 일어나 검을 아니 만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야호! 야~~ 야호! 천지봉 일대가 무룡의 고함소리에 진저리를 쳐댔다. 한편, 무룡이 무공 수련에 전념할 그 무렵이었다. 마교의 본거지가 있다는 명사산(鳴砂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막의 거센 ..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2화 슬픔의 삼월은 지나가고 사월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천지봉 일대가 철쭉과 진달래꽃들로 붉게 타올랐다. 무룡이 만화곡엘 다녀온 지도 꼭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무룡은 무공수련에만 정신을 집중하느라 부모님 묘소에도 다녀가질 못했었다. 지금 무룡은 묘소 앞에 엎드려 있었다. “아버지!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무공수련을 하느라 꾀를 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예, 뭐라고요. 무공수련에 전념이나 하라고요. 그래도 그렇지요. 자식의 도리를 못 하는 것은 불효라 하셨지 않습니까? 예, 그게 아니라고요. 무공수련에 전념하여 대성을 이루는 것이, 그게 효도를 하는 것이란 말이죠. 예,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소자, 무룡! 수련을 끝내고 뜻을 이루기 위해 떠날 때, 그때 찾아오겠습니다. ..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1화 4장, 천지봉을 떠나다. 무룡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결심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대장부답게 살겠다는 것이었고, 사무친 한을 꼭 풀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심한 무룡은 암동(巖洞)에서 7일 동안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 그리고 8일째 새벽, 웃통을 벗은 무룡이 동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었다. 무룡은 밖에 나오자마자 간단히 몸을 풀었다. 그리곤 허공만보인 경공술을 수련하기 위해 계곡 아래로 달려갔다. 약간 야위어 보이긴 했어도 얼굴엔 근심 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 시각이었다. 북쪽에 위치한 한 절벽 앞에선 소연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는지, 몸놀림이 더 빨라졌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허어, 별종이네. 한 달 만에 이렇듯 성취를 보이..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0화 스스슥, 스스슥, 스슥, 미미하게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검은 인영들이 초옥을 에워쌌다. 사나이들의 눈빛이 먹이를 향해 다가오는 야수들의 눈빛처럼 섬뜩하기만 했다. “......” 쿨룩, 쿨룩, 쿨-룩, 등불을 들고 방 안에서 나온 노인이 심하게 기침을 해대곤 대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기둥에 등을 매달았다. “멈춰라!” 살기가 어린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솟아오르듯 다섯 명의 검은 인영들이 불시에 대문 앞에 나타났다. 노인은 등을 걸고 돌아서다 기겁하여 그 자리에 장승처럼 멈춰 섰다. 그래도 노인은 침착했다. “뉘 신지요, 이 밤중에...?” 만복철은 아주 담담히 말했다. “늙은이! 물을 것이 있다. 묻는 말에 이실직고를 한다면 살 것이나,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목을 벨 것이다. 알겠느냐? 늙..
단야의 유정만리 2권 9화 해가 동창을 밝혔다. 만복철은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무슨 일인지 집안 곳곳을 쓸고 닦았다. 마당과 길도 깨끗이 쓸었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었어도 대청소는 아침나절에야 끝났다. 어젯밤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하더니 결국엔 만화곡엘 가볼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소연을 데려올 생각에 집안청소를 한 것이었다. 만복철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가벼운 옷차림이라고 해봤자 얼룩진 무명바지저고리에 토끼 가죽으로 만든 덧옷을 입은 것이 다였다. 게다가 집안 단속도 할 필요가 없으니 날마다 그랬던 것처럼 대문 앞에 통나무 하나를 들어다 놓는 것이 전부였다. 집이 비었다는 만복철만의 표식이었다. 만복철은 지팡이 하나만 짚고 집을 나섰다. 부지런히 걸어가는 만복철이 아무래도 쓸쓸해 보였다. 이를 안쓰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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