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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2권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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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동창을 밝혔다.

만복철은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무슨 일인지 집안 곳곳을 쓸고 닦았다. 마당과 길도 깨끗이 쓸었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었어도 대청소는 아침나절에야 끝났다. 어젯밤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하더니 결국엔 만화곡엘 가볼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소연을 데려올 생각에 집안청소를 한 것이었다.

 

만복철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가벼운 옷차림이라고 해봤자 얼룩진 무명바지저고리에 토끼 가죽으로 만든 덧옷을 입은 것이 다였다. 게다가 집안 단속도 할 필요가 없으니 날마다 그랬던 것처럼 대문 앞에 통나무 하나를 들어다 놓는 것이 전부였다. 집이 비었다는 만복철만의 표식이었다.

 

만복철은 지팡이 하나만 짚고 집을 나섰다.

부지런히 걸어가는 만복철이 아무래도 쓸쓸해 보였다.

이를 안쓰럽게 생각했을까 따사로운 햇살이 허전하고 시릴 것 같은 만복철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멀리 산을 돌아가던 만복철이 사라지고, 찬란한 햇살만 눈이 부셨다.

 

****

 

한편, 중천에 떠오른 햇살들이 상수리나무 숲으로 비쳐 들었다.. 그때 두 명의 흑의인이 햇살이 내려앉는 바위에 걸터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언뜻 보니 매복을 서는 혈살대 무사들이었다.

 

이보게, 내일은 정말 철수를 한다고 하던가?”

공자가 지시를 했으니, 철수할 것일세!”

정말 지긋지긋해, 벌써 며칠인가? 한 달 가까이 이런 산속에서 생활하려니, 이거 몸이 근질거려서 말이야!”

그러게 말일세! 그 계집은 도망을 갔어도 천리는 갔겠다. 공연히 헛고생만 한 게지, 나는 철수하면 기방(妓房)부터 들려야겠네. 그동안 계집 속살 맛을 못 봤더니, 아예 졸아붙었네그려, 졸아붙었어,”

그런 소리 말게, 자네 물건은 자타가 공인하는 물건이 아닌가? 대물 말일세.”

아무튼 속 살 맛을 봐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니 밤마다 발광을 하다가 이젠 아예 풀이 팍 죽었네, 이러다가 고자 소릴 듣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그려,”

무슨 그런 말, 쉿 저기...”

 

한 사내가 말하다 말고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두 사나이는 얼른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곤 10장쯤 떨어진 곳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한 노인이 연방 지팡이 질을 해대며 계곡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가죽옷을 입고 지팡이를 든 것을 보면 분명 만복철이었다. 만복철은 아침나절 집을 나서, 이제야 만화곡 입구에 당도한 것이다. 만복철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마음만 급해 발걸음만 부지런히 움직였다.

 

늙은인데, 이곳엔 무슨 일로 왔을까?”

지켜보면 알겠지, 어라, 늙은이가 만화곡으로 들어가잖아, 일단 따라가세!”

사나이들이 은밀히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아니, 이럴 수가...?”

화원에 들어선 만복철은 기겁하고 말았다.

 

무룡이 말에 거짓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건 너무했구나, 어찌 이런 짓거리를, 놈들이 도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이런 만행을? , 선인께서 돌아가신 것을 보면 놈들은 아주 대단한 놈들일 것이야, 무룡아! 보았느냐? 이것이 강호 무림 세계의 실체란다. 내 일찍이 무림인들이 악랄하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렇게까지 무자비할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소연 아가씨는? 어디로 가신 게지, 무룡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야, 공연히 무공을 배우라고 했나, 아예 신분을 숨겼으면, 다 무지한 내 탓이다.”

만복철은 무식한 자신을 탓했다.

 

게다가 현 상황에 더럭 겁부터 났다. 무룡에게 무공을 익히라고 한 것이 괜한 짓이었나 걱정이 앞섰다. 무엇보다도 복수와 원한을 운운한 것부터 후회가 되었다. 만에 하나 무룡에게 어떤 불상사라도 일어난다면 그 책임이 다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만복철이었다.

 

만복철은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초막이 있던 곳으로 걸어갔다. 사방을 둘러보면 볼수록 만복철의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무룡이가 구덩이라고 했는데...”

 

만복철은 선인의 시신이 있다고 말한 구덩이 앞으로 다가갔다. 구덩이 안엔 앙상한 해골만 누워있었다. 이미 들짐승들이 살점은 뜯어먹었고, 지금은 개미와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뒤치다꺼리를 말끔히 하는 중이었다.

 

쿨룩! 쿨룩! , 어찌, 우엑! 우욱!”

 

만복철은 후들후들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도저히 해골로 변한 시체를 지켜볼 수가 없었음이었다.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해댄 만복철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돌아섰다. 왠지 모르게 마음까지 불안해 더는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머물다간...”

섬뜩한 살기를 느낀 만복철은 자신에게도 불길한 일이 닥칠 것만 같아 마음만 급했다.

 

, 돌아가자, 무룡아! 너는 절대 이곳에 오지 말거라!’

 

만복철은 유골을 수습하기는커녕 빠르게 지팡이 질을 해대며 도망치기에 바빴다. 어스름한 달밤에 귀신을 보고 도망을 치듯 만복철은 그렇게 허둥지둥 만화곡을 벗어났다.

 

늙은이가 겁이 되게 낫나 보군, 어쩔 텐가?”

무얼, 쫓아 가야지,”

그럼 자네가 대두에게 연락하게, 내가 슬슬 따라가지,”,”

알았네, 곧 뒤따라감세!”

 

나무 뒤에 숨어서 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사나이들이 무어라 쑥덕거렸다. 그중 한 사나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 사나이는 노인의 뒤를 쫓았다. 노인이 아무리 빨리 걸어도 사나이의 느긋한 걸음만도 못했다.

 

휘리링- 휘리링---

때 없이 세찬 바람이 산속을 휘저으며 지나갔다.

“......”

 

죽일 놈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쳐 죽일 놈들, 무룡아! 어서 대성해라! 이왕 무공수련을 할양이면 저런 놈들을 쳐 죽일 수 있도록 막강해야 한다, 천벌을 받을 놈들, 그런데 수연 아가씨는 어딜 갔을까? 혹시 놈들에게 붙들려간 것은 아니겠지? 무룡아! 절대로 집에는 오지 마라! 필요한 건 내가 다 갖다 주마! 그리고 무룡아! 현장에 놈들의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오늘 다녀간 발자국이었다. 아직도 놈들이 만화곡을 지키고 있다. 쿨룩! 쿨룩!”

 

만복철은 처음엔 별 이상을 못 느꼈었다. 그러다 구덩이 안을 들여다볼 양으로 구덩이 가까이 다가섰을 때였다. 구덩이 근처에 몇 명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것도 오늘 다녀간 발자국이었다.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만복철의 눈을 벗어나진 못했다. 산에서만 생활한 만복철이라 대번에 수상쩍은 발자국임을 쉽게 간파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젊었을 때의 예리한 눈과 후각이 무뎌졌는지, 아니 늙었는지 놈들의 냄새는 맡지 못했다.

 

만복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 헉헉

숨소리가 매우 거칠었다.

“......”

 

적송과 초옥이 보였다.

막 능선을 내려선 만복철의 얼굴엔 안도감이 어렸다.

 

- 이제야 살았군. 무룡아! 집엔 절대로 오지 마라!”

만복철은 잠시 허리를 펴곤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만복철이 집 가까이 다가갔을 무렵,

흉흉한 사나이들이 산자락에 나타났다.

 

듣거라! 늙은이 집이 저 초옥(草屋)인 것 같다. 늙은이가 집으로 들어간 다음에 쳐들어간다. 필시 저 집에 그 계집이 있을 것이다. 집을 철저히 포위하라! 이번엔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 알겠느냐?”

, 대두! 염려 마십시오.”

 

산자락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들은 다섯 명이었다. 놈들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초옥으로 향하는 노인의 등을 노려봤다. 그때 저녁노을이 잔잔히 깔리며 노인을 붉게 물들였다. 평상시 같았으면 늙은 촌부가 저녁노을을 받으며 집으로 귀향하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노인의 등은 핏빛처럼 붉게 물이 들었다.

 

! 휘휙! 휙! ! !

청의를 입은 젊은이를 위시해 사나이들이 날아 내렸다..

 

공자!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

보고를 받고 즉시 달려왔다. 늙은이가 만화곡엘 다녀갔다고, 수상쩍은 것이 있었느냐?”

, 공자! 분명 만화곡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삼호 말로는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았으나, 생각해 보니, 늙은이가 그 험한 곳에는 무엇하러 갔겠습니까? 그것만 봐도 무언가 냄새가 나질 않습니까?”

대두 말에 일리가 있다. 내 늙은이를 직접 문초할 것이다. 혹시 모르니 경계를 철저히 하라! 가자!”

! 공자!”

 

사나이들은 소리도 없이 몸을 날렸다.

어둠이 죽음을 예고하듯 땅바닥을 기듯이 몰려왔다.

 

----------계속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우리 한글이 세계에 우뚝 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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