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1화

썬라이즈 2023. 10. 17.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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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지봉을 떠나다.

 

 

무룡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결심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대장부답게 살겠다는 것이었고, 사무친 한을 꼭 풀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심한 무룡은 암동(巖洞)에서 7일 동안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

 

그리고 8일째 새벽,

웃통을 벗은 무룡이 동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었다.

무룡은 밖에 나오자마자 간단히 몸을 풀었다. 그리곤 허공만보인 경공술을 수련하기 위해 계곡 아래로 달려갔다. 약간 야위어 보이긴 했어도 얼굴엔 근심 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 시각이었다.

북쪽에 위치한 한 절벽 앞에선 소연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는지, 몸놀림이 더 빨라졌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허어, 별종이네. 한 달 만에 이렇듯 성취를 보이다니, 내가 제자 하나는 정말이지 잘 두었단 말씀이야, 헌데, 만화곡엘 가보자고 떼를 쓰니 이를 어쩐다.”

동굴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무슨 말을 하는지, 계속 중얼거리는 노인은 한철이었다.

 

소연아! 오늘은 그만하자, 만화곡에 가자꾸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연을 불렀다.

사부님! 정말이세요. 진즉에 그러실 것이지...”

“......”

소연은 귀가 번쩍 뜨였는지 춤추던 동작을 멈추곤 한철을 따라 동굴로 들어섰다. 한철은 원래 자기 자리인 가죽으로 만든 시커먼 깔개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소연은 한철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사부님! 정말이지요,”

그래, 일단 가보자꾸나.”

그런데 사부님! 언제쯤 갈 거예요, 이왕이면 조반 먹고 바로 가요. 아침은 제가 준비할게요.”

아침이나 먹고 생각해 보자. 맛있으면 바로 갈 거고,”

알았어요.”

소연은 쪼르르 화덕 앞으로 가더니 주섬주섬 그릇들을 챙겨 암동으로 들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한철의 입이 함지박처럼 크게 벌어졌다. 그렇다고 웃음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켁! 켁!

억지로 웃음을 참으려다 사래가든 한철이 기침을 해댔다.

 

소연아! 만화곡엘 가봤자 네 마음만 아플 것이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지, 도대체 놈들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일까? 어쨌든 놈들이 철수를 한 것 같으니, 오늘은 너를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다. 허나 철없는 계집애처럼 눈물이나 질질 짜지는 말거라, 마음을 독하게 먹고...’

한철은 정말이지 마음이 아팠다.

 

사실 한철은 놈들이 철수했음을 알고 은밀히 만화곡엘 다녀왔었다. 그러나 너무나 끔찍한 현장을 보고는 아연했다. 그렇다고, 그 상황을 소연에게 그대로 말해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다. 다만 소연이가 끔찍한 현장을 보고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놈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대단한 놈들이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무언가 깨닫길 바랐다. 그래야만 독한 마음도 생기고 무공수련에 전념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사부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그리고 인상 좀 부드럽게 가지세요. 가뜩이나 험상 굿은 인상인데, 무서워요,”

에끼 몹쓸 것, 사부를 놀려도 유분수지...”

한철은 잔뜩 찌푸렸던 인상을 풀며 소연을 노려봤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만 이쪽으로 오시지요. 어쩌겠어요, 음식 재료가 없으니, 오늘도 삶은 고기나 먹어야겠어요.”

언젠 쌀밥 먹었냐? 암튼, 소면이나 댓 그릇 먹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에그, 또 먹는 타령이에요. 어제는 꿩고기를 넣은 만두를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시더니, 이젠 소면예요.”

“험험, 말도 못하냐! 어디 잘 익었나 보자,”

한철은 코를 벌름거리며 화덕 앞으로 다가앉았다.

 

고기는 5일 전에 한철이 잡아 온 노루고기였다. 처음엔 노린내가 난다고 소연은 입에도 대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어서 못 먹었다. 그만큼 고기 맛을 알게 된 소연이었다. 삶은 고기에 굵은소금을 훌훌 뿌려서 먹으면 정말이지 그 맛이 꿀맛이었다.

 

소연아! 네가 춤추는 것을 보면 많이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인 내공이 필요하다. 오늘은 만화곡엘 다녀오고 내일부터는 내공 익히는 법을 가르쳐 주마! 암튼, 천무신무는 내가 남자라서 십성의 수준밖에 익히질 못했다. 그만큼 천무신무(天舞神巫)는 대단한 무공임을 명심해라!”

 

한철이 천무신무를 십 성에 달했다면, 벌써 대성을 이루었어야 했다. 그러나 천무신무는 여인에게 합당한 무공이지, 남자에겐 맞지 않는 무공이었다. 그런 연유로 한철은 대성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철 노인이 십 성을 이루었다는 것은 대단한 성취를 본 것이었다. 천무신무는 여인만이 12성인 대성을 성취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여인만의 무공이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 테니 어서 가요.”

소연은 깨작깨작 젓가락질을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화곡엘 간다니 입맛이 없었을 것이었다.

 

이것아! 나는 배도 다 채우지 못했다. 좀 기다려라!”

커다란 고기 한 점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한철이 불룩한 배를 꾸욱 찔러 보이며 한소리 해댔다.

 

, 음식을 그렇게 오래 드세요. 빨리빨리 드세요.”

이놈아! 너는 먹기만 했지, 나는 말하느라 한 입도 못 먹었다. 말 시키지 말고 저만치 가 있어라!”

그렇다고 급하게 먹진 마세요. 체해요.”

말 시키지 말랬지--”

, 사부님! 오래오래 많이 드세요.”

 

소연은 겉으로는 즐거운 표정에 말도 명랑하게 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무엇하나 마음 쓰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특히 할아버지와 자영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게다가 무룡과 함께 있어야 할 자신이 무공을 익힌다고 이곳에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마저도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굳게 마음을 먹어보기도 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무공수련에 몰두할 때만 잠시 잊었을 뿐 돌아서면 생각났고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소연이의 입장에서는 잘 참아내고 있음이었다.

 

***

 

여기는 만화곡,

소연은 만화곡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이 글썽거렸다. 한철은 몇 번이고 놀라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너무도 끔찍하게 변한 현장을 보고 소연이 까무러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소연은 미친년처럼 불타버린 초막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결국엔 구덩이를 발견하고 뼈만 앙상한 해골을 보았다. 순간 소연은 엉망으로 찢긴 청포를 보고, 해골로 변한 시체가 할아버지라고 직감했다.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외치며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아니 뛰어들려는 그 순간, 한철이 붙잡아 앉혔다.

이것아! 좀 진정하여라!”!”

이것 놓으세요. 할아버지! 엉엉, 엉엉엉- 할아버지!”

내 무어라 했더냐? 이러면 안 된다고 그랬지, 참 거라!”

소연은 엉엉 울며 발버둥을 쳐댔다.

이를 지켜보는 한철의 마음도 찢어지듯 아팠다.

 

그래, 실컷 울어라! 우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실컷 울어라!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해 봐야, 마음이 독해진다..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런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굳건해야 무슨 일인지 알아낼 것이 아니냐? 그 후에 복수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할 수가 있다. 독해져야 한다. 이런,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게야, 복수를 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니, 그건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그냥 제자 하나 잘 두었다고 생각을 했더니, 이거 요상하게 꼬인 인연이네.’

한철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 자영아! 엉엉, 사부님! 나는 어떻게 해요. 훌쩍훌쩍, 할아버지! 엉엉- 자영아!”

소연은 아예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

소연아! 이젠 그만하여라!! 일단 할아버지를 잘 모셔야지, 너무 이러면 못쓴다. 소연아! 그만 하고, 그렇지...”

한철은 소연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저는 어쩌면 좋아요. 이젠 누굴 믿고 살아요. 사부님!”

소연은 한철의 품에 와락 안기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철의 눈에도 끝내는 물막이 어렸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그렇게 부둥켜안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소연이 눈물을 훔치며 한철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눈은 퉁퉁 부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사부님, 으흑, 사부니임, 정말 어떻게--”

소연아! 이젠 그만, 일단 할아버지 유골을 수습하자꾸나,, 너는 저쪽에 가서 잠시만 앉아있어라! 내가 유골을 수습하마! 우리 유골을 양지바른 곳에 모시자, 알았지,”

한철은 소연을 부축해 한쪽으로 데려갔다.

 

흐흑, 흑흑,”

소연은 계속 흐느꼈다.

 

한철은 품속을 뒤져 가죽으로 만든 자루를 꺼내 들더니,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자루는 한철이 어디를 가던 갖고 다니는 유일한 소지품이었다. 사실 자루는 독사 같은 뱀도 잡아서 넣고, 꿩이나 토끼, 하물며 음식도 넣어 다니는 자루였다. 한철의 유일한 짐 보따리이자 동냥자루였다.

“......”

손녀는 아주 잘 두셨수다. 이것도 복이요. !’

한철은 유골에 엉겨 붙어있는 불개미와 구덕이 같은 벌레들을 털어 내며 유골을 수습했다. 역한 냄새가 났지만 한철은 꾹 참았다. 그리고 유골에 걸쳐진 냄새나는 옷 쪼가리도 유골과 함께 자루에 담았다.

 

휴우, 내 생전에 이런 일을 할 줄은 몰랐다. 소연아! 가자,”

일을 끝낸 한철은 구덩이에서 나오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곤 소연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소연은 몇 번 휘청거리더니 간신히 일어섰다.

 

가요. 사부님~”

그래, 가자--”

소연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힘은 없어 보였지만 많이 진정이 된 듯싶었다. 한철은 왼손으론 소연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론 자루를 걸머지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노소는 중천에 떠오른 햇살을 받으며 폐허로 변한 만화곡을 떠났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될 즈음 봄바람도 그들의 슬픔을 아는 양 만화곡으로 불어왔다.

 

 

그들이 떠나고 불과 일다경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한 사나이가 만화곡으로 들어섰다.

안타깝게 무룡을 반긴 것은 슬픔에 젖은 바람뿐이었다.

 

무룡은 오늘 새벽 만화곡엘 다녀갈 심산으로 그동안 불편했던 심기를 훌훌 털어버렸다. 사실 무룡은 불과 한 달 사이에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너무도 큰 슬픔으로 침식을 전폐했다. 거기다가 태궁의 죽음, 그리고 소연과 자영을 생각하면 미치도록 괴로웠다. 울기도 엄청나게 울었었다.

 

무룡은 암동에서 칠 일간 애통해하며 괴로워했었다. 그것도 부족해 몸을 혹사시켜 가며 나날을 보냈다. 무룡이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을 시험한 것이었다. 앞으로 자신 앞에 펼쳐질 험난한 날들을 이겨내려면 오늘 같은 울분과 슬픔을 견뎌 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한 것이었다.

 

아무튼 무룡은 심기일전하기 위해 단식을 해가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 무룡의 얼굴은 야위긴 했으나 굳은 의지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전보다도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무룡은 구덩이 앞에 서서 망연자실했다.

분명 있어야 할 태궁의 시신이 없어진 것이었다.

 

무룡은 주위를 세밀히 살폈다. 혹시나 다녀간 사람의 흔적이라도 찾을까 해서였다. 분명한 것은 들짐승들의 소행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태궁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무룡은 잠시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도 분명 이곳을 다녀가셨다. 그 일로 화를 당하신 것임을 무룡은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시신을 치웠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가 집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놈들이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놈들의 소행으로 보아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가 무룡의 생각이었다. 그러면 제 삼의 인물이 치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도대체 누굴까?

 

혹시, 소연이가 다녀갔나? 아니야, 소연이가 근처에 숨어있었다면 분명 집에 왔을 텐데, 허면 자영이, 그도 아니다. 그럼 누굴까? 누굴까?’

무룡은 의혹 속에서 놈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위경계를 철저히 했다. 그리곤 만화곡을 세밀히 살피며 한 바퀴 돌아봤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지를 못했다.

 

이곳엔 없다. 분명 누군가가 시신을 옮겼다. 그렇다면 일단 시신에 대한 미련은 버리자, 누군가 잘 모셨다면 감사하고... 헌데, 그녀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제발 놈들에게만은 잡혀가지 않았기를... 내가 너희들을 찾을 때까지는 건강하고 무사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 만약 쳐 죽일 놈들이 너희들을 잡아갔다면 놈들은 내 손에 도륙이 날 것이야!”

무룡의 입에서 무서운 말이 다 튀어나왔다. 분노가 얼마나 컸으면 한 번도 입에 담아보지 않았던 무섭고도 쌍스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을까,,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소연아! 자영아! 정말 너희들이 걱정이다. 소연이는 나이는 있어도 어린애 같고, 자영이 너는 그래도 영악하니 잘 지낼 수 있을 게야, 자영아! 소연이와 같이 있다면 언니를 잘 부탁한다. 알았지 자영아!! 어쨌든 내가 너희들을 꼭 찾겠다.”

 

두 주먹을 꽉 움켜쥔 무룡이 하늘에다 삿대질을 해댔다. 그렇다고 하늘을 욕한 것은 아니었다. 하늘에 대고 소연과 자영을 찾겠다고 다짐한 것이었다.

 

-----------계속

 

^(^,

늙는 것을 두려워 말라

인생은 100세 시대, 60부터 새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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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정의 삶으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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