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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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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삼월은 지나가고 사월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천지봉 일대가 철쭉과 진달래꽃들로 붉게 타올랐다.

 

무룡이 만화곡엘 다녀온 지도 꼭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무룡은 무공수련에만 정신을 집중하느라 부모님 묘소에도 다녀가질 못했었다. 지금 무룡은 묘소 앞에 엎드려 있었다.

 

아버지!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무공수련을 하느라 꾀를 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 뭐라고요. 무공수련에 전념이나 하라고요. 그래도 그렇지요. 자식의 도리를 못 하는 것은 불효라 하셨지 않습니까? , 그게 아니라고요. 무공수련에 전념하여 대성을 이루는 것이, 그게 효도를 하는 것이란 말이죠. ,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소자, 무룡! 수련을 끝내고 뜻을 이루기 위해 떠날 때, 그때 찾아오겠습니다. ,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무룡은 한참 동안 누구와 얘기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불타버린 집터를 바라봤다. 적송만이 꼿꼿이 서서 빈 집터를 지키고 있었다. 때는 하오 신시(辛時) 경이었다.

 

아니 저들은? 혹시, 놈들이 아직도...”

초옥 쪽을 바라보던 무룡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적송 사이를 얼쩡거리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거리가 멀어서 구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룡은 아버지를 죽인 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폐허의 집터를 찾은 자들이라면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무공비급을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내 당장 쫓아가 놈들을, , 쳐 죽일 놈들! 두고 보자!’

 

무룡은 곧 쫓아갈 것처럼 기세를 부리다가 제풀에 꺾이고 말았다. 아직 객기를 부릴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무룡의 입장이었고 힘이 없으니 멀리서 울분을 삭일뿐이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무룡의 눈엔 분노만 이글거렸다.

 

 

적송 앞,

가죽옷을 입은 한 여인이 적송 앞에 쪼그리고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뭔가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여인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서성거리는 노인은 가죽으로 만든 반바지 차림의 한철 노인이었다.

 

소연아! 어쩌겠느냐. 노인의 죽음은 정말 안 되었다. 그러나 네 정인(情人)인가 하는 젊은이는 놈들에게 화를 당한 것 같지는 않다. 내 살펴보니, 분명 젊은이는 화를 면한 것 같다. 내 직감이 틀림없다. 수십 년 동안 동물들을 상대하고 살았지 않느냐!”

사부님! 흑흑, 그럼 무룡이가 동물이란 말이에요, 흑흑,”

내가 무얼 어쨌다고, 엄밀히 따지면 사람도 동물이지...”

사부님! 엉엉-”

알았다. 알았어, 허나, 네 정인인지 그 젊은이는 죽지 않고 도망을 갔을 게다. 이건 틀림없다. 내가 장담한다.”

좋아요. 그럼 사부님이 우리 무룡이를 찾아내세요, 아셨지요. 무룡이를 꼭 찾아내요. 무룡이를...”

제기랄, 알았다. 내 꼭 네 사랑을 찾아주마! 그러니 이젠 그만 울어라!”

꼭 찾아 주기로 약속했어요. 꼭이요.”

“험! 약속했다. 나도 남자다.”

한철은 한번 헛기침을 해대곤 묵직하게 말했다.

 

소연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맷자락으로 쓱쓱 닦고는 마지못해 일어서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연아! 가자, 내 꼭 네 정인을 찾아주마!”

히히, 정말로 약속했어요.”

소연은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이 웃고는 다짐받듯 말했다.

 

하늘에 대고 약속했다. 나도 남자라고, 이만 가자!”

한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지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가던 소연은 자꾸만 뒤를 돌아다봤다..

 

 

어느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무룡은 두 인물이 사라질 때까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봤다.

이미 그들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룡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봉분 앞에 머물던 노을마저 땅거미에 쫓겨 갔다. 하늘엔 하나 둘 별들이 떴다. 그때서야 무룡은 세 기의 봉분을 결연한 눈빛으로 둘러봤다. 그리고 돌아서서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

 

지금은 한낮이다.

바위로 반쯤 가려진 동굴 입구가 보였다.

 

암동 안, 무룡이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득도한 고승처럼 반개한 눈은 정면을 응시한 채 가는 숨만 길게 내쉬고 있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얼마 동안 이렇게 앉아있었는지,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그렇게 한 시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그리고 대략 반 시진쯤 더 지났을 때였다. 무룡이 반개한 눈꺼풀을 천천히 밀어 올렸다. 눈을 뜬 순간, 한줄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대단한 경지에 오른 그런 눈빛이었다.

 

이러다간 평생을 걸려도 대성을 이루긴 틀렸다.”.”

무룡은 뭔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사실 무룡은 마음만 급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가늠하지도 못한 채, 진전이 없음을 탓했다. 무룡이 아직 진정한 무공의 진의를 깨닫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름대로는 무공수련에 최선을 다했다. 지금 무룡의 내공은 대략 3갑자 200년 수위에 육박해 있었다. 그러나 무룡은 이를 알지 못했다. 무림고수라 하더라도 가늠하기 어려운 내공 수위지만 무룡의 내공 수위를 알아봤다면 까무러치듯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무림인이라 하더라도 200년 내공을 쌓으려면 평생 내공 수련만 해도 얻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그런데 무룡은 업둥이가 되는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진신 내공을 얻은 장본인이 되었다. 그 기연을 모를 뿐이었다.

 

무룡이 지금 배우고 있는 무공비급들은 하나같이 경외할 비급들이다. 그런 비급의 무공을 단시일 내에 대성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겠는가, 차근차근 처음부터 꾸준히 익혀도 대성을 이룬다는 것은 태산을 옮기는 것보다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무룡이니까, 단시일 내에 대성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무림고수라 해도 비급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고, 특히 무룡 같은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무룡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 일어난 순간 몸은 이미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숨 몇 모금 들이마실 시간에 무룡의 몸은 암동에서 사라졌고, 밖에 나와서도 보이지가 않았다.

 

***

 

한 사나이가 막 떠오른 달빛을 받으며 계곡을 나는 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위험천만한 계곡을 거침없이 달려온다는 것은 그만큼 눈이 밝거나 경공이 뛰어난 때문일 것이었다. 불과 한 식경 만에 계곡 아래까지 달려갔다가 올라온 것이다.

 

“후휴, 후, ,”

사나이는 절벽 밑에 당도하여 심호흡을 해댔다.

 

이제야! 허공만보가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겠다. 아직 대성을 이루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칠성(七成)을 달성했으니, 앞으로가 문제다. 칠성 이후가 고비라고 했으니,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

 

무룡은 불과 한 달 보름 만에 허공만보를 칠성까지 성취를 보았다. 아무리 무공에 일가견이 있는 자라도 허공만보를 칠성에 달하도록 익히려면 적어도 십 년은 허공만보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이것만 봐도 무룡은 아기 때 먹은 천년설삼(千年雪蔘)과 영약의 효능들을 톡톡히 보고 있음이었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무룡은 아기 때부터 신동이었다.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았으며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았다.

“......”

한참 동안 몸을 푼 무룡이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암동에 들어선 무룡은 탁자 앞에 앉았다. 탁자 위엔 언제 캐다 놓았는지, 더덕과 칡뿌리, 산삼, 진달래꽃잎, 고사리 등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무룡은 제일 먼저 진달래꽃잎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는 씹어 먹었다. 그리곤 더덕 한 뿌리를 먹었고 칡뿌리를 질겅질겅 씹었다. 아마도 기인이 말한 생식(生食)을 실천 중인 모양이었다.

 

, 잘 먹었다.”

생식을 하고 잘 먹었다고 배를 두드린 무룡은 침상으로 가더니 침상 머리에 놓인 궤짝을 열었다.

 

“만검아! 우리 멋지게 한판 하러 가자, 이젠 나를 너무 무시하지는 말거라! 어차피 너는 내 동생이니까, 나와 평생을 함께할 몸인데 자꾸 짜증을 부리면 이 형도 화를 낼 것이다. 알아들었겠지, 만검아!”

무룡은 중얼거리며 검을 꺼내 들었다.

 

 

검을 들고 밖으로 나선 무룡!

하늘은 맑았다.

달빛도 은은히 내리비췄고 별빛도 초롱초롱했다.

무룡은 계곡 옆을 타고 절벽 위로 올라갔다. 적어도 20장은 되어 보이는 까마득한 절벽 위는 크고 작은 돌들이 깔려있는 평지였다. 방원(方圓) 십장은 넘을 것 같았다.

 

스르릉--

무룡은 절벽 위에 우뚝 서서 만검을 뽑았다.

순간, 푸른빛을 띤 검기가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족심(足心)에 힘을 주고 기마 자세로 선 무룡,

검 끝을 발끝에 두었다가 공기를 자르듯 치켜올려 하늘을 찌르는 자세를 취했다. 이번엔 하늘을 향한 검을 크게 원을 그리듯이 가슴 높이로 회전시키며 횡으로 그었다. 날카로운 칼바람소리가 났다. 그런 다음 앞으로 뻗쳤던 검을 몸을 회전시키며 종으로 내려 긋고는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천천히 움직인 동작이었으나, 검을 그을 때마다 일어난 검기가 달빛을 받아 푸른빛을 띠었다.

 

“만검아! 고맙다. 너는 나와 한 몸이니라! 네가 잘못되면 내가 죽을 것이고 내가 죽으면 네가 잘못될 것이다. 이젠 친하게 지내자, 정말이다. 만검아!”

-, -,

별안간 검이 알았다는 듯 웅웅 소리를 냈다.

 

그동안 무룡은 검법수련을 할 때마다 무쇠 덩어리를 들고 춤추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검을 위로 치켜올리려고 하면 마음먹은 대로 자세가 잡히질 않았었다. 다른 자세를 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무룡은 생각했다. 검이 투정을 부리는 것이라고... 무룡은 한 비기(秘記)에서 영물과 신물, 명검에 대한 고사(古事)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분명 비기에 수록된 고사는 영물이나 명검, 그리고 신물 등은 주인을 알아본다고 되어 있었다. 무룡은 명검인 만검이 투정을 부렸다고 생각했었다.

 

잠시 숨을 돌린 무룡은 검법을 기초적인 초식부터 다시 시전 했다. 아니, 검법을 반복적으로 시전 했다. 이젠 숙달이 되었는지 연속적으로 시전 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검법을 시전 할 때마다 검기가 눈부신 빛으로 화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렇게 검법을 연속적으로 펼치던 무룡이 이번엔 춤추듯이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발과 손놀림이 자연스럽게 움직여졌고, 그동안 틈틈이 연습했던 자세들까지 한꺼번에 춤추듯 연결되었다.. 이렇듯 춤추듯 연습에 몰두하던 무룡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려고 했다. 그러나 의지완 상관없이 움직임은 멈춰지질 않았다.

 

사실, 무룡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펼쳐지는 검법들은 그동안 무룡이 읽어봤던 비기의 검법들이었고, 그 검법들이 무작위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아니다. 분명 뭔가가 잘못 됐다.’

무룡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지나친 무공수련은 오히려 몸을 해친다는 말도 생각났다. 주화입마에 든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도... 무룡은 동작을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그냥 막무가내로 걷잡을 수 없는 동작들이 계속 이어졌다.

 

얼마 동안 검법을 펼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갔을 것이었다. 땀이 비 오듯 했다. 무룡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런데 이번엔 엉뚱하게 허공답보인 허공만보가 스스로 펼쳐졌다.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20장 절벽 아래로 떨어질 판이다. 훌쩍훌쩍 날듯이 뛰는 무룡은 정말이지 위태위태했다.

 

순간, 무룡이 검을 치켜들고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뛰어오른 것이었다.

적어도 3장 높이는 되었다.

그렇게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던 무룡이 이번엔 거꾸로 떨어져 내렸다. 참으로 아찔한 위기의 순간에 봉착했다.

 

쨍그렁--

!

금속성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메아리쳤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무룡은 검이 떨어진 바로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까마득한 절벽에 걸터앉듯이 앉아서 운공 중이었다. 터진 머리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얼굴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그래도 무룡은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질 않았다. 대략 반 시진은 지났을 것이다. 피도 멎었다.

 

무룡은 주화입마에 빠졌다가 살아난 상태였다.

주화입마에 빠진 상태에서 허공만보상 중급 단계를 펼쳤고, 3장 높이로 도약해 올랐다. 이렇듯 주화입마에 빠진 상태가 지속된다면 위험이 없는 곳이라도 무룡은 큰 불상사를 당했을 것이었다. 다행인지, 공중으로 도약한 것이 주화입마에서 벗어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무룡이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머리에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피를 흘렸기 때문에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고 전화위복이 되었다.

 

어쨌거나 무룡은 그 일로 갈무리되었던 내공이 일부나마 몸에 흡수가 되었다. 공중에서 떨어져 내린 곳이 절벽 한 치 앞이었으니, 상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마도 무룡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한 여인의 죽음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었다.

 

18년 전, 그것도 폭설이 쏟아지던 겨울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아기 무룡을 살리기 위해 한 여인이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그 여인의 장렬한 죽음이 오늘 하늘을 감복시킨 것이리라!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무룡은 몸속에 축적된 내공을 일부나마 일깨웠다는 것이 큰 성과일 것이었다.

 

, -, -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수컷 늑대가 처량하게 울어댔다.

시간은 계속 흘렀으나, 무룡은 석불인양 움직이질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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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행복하면 하루가 즐겁습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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