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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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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천지봉,

파란 하늘엔 목화솜을 띄워 놓은 것처럼 하얀 뭉게구름들이 두둥실 떠다녔다. , 하고 함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하늘은 너무도 맑고 깨끗했다.

 

휘이잉, 휘이잉,

북쪽 계곡을 타고 제법 세찬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은 계곡을 지나더니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과 한차례 실랑이를 벌이곤 곧바로 서쪽으로 비켜 달아났다.

 

! ! -! !”

절벽 앞, 한 여인이 목검으로 찌르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낭랑한 기합 소리가 당차다.

여인이 움직일 때마다 등 뒤로 늘어진 검은 머리가 차랑거렸다. 살펴보니 여인은 가죽으로 만든 반바지에 가죽조끼를 입었으며, 머리는 분홍색 끈으로 묶어 길게 늘어 뜨렷다. 늘어뜨린 분홍색 끈은 의외로 잘 어울렸다.

 

소연아! 이젠 그만하고 들어오너라!”

오랫동안 연습을 했는지 소연의 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에 들어갔는지, 소연은 눈을 비벼댔다. 아주 건강해 보이는 소연이었다.

 

사부님! 한 참 집중하고 연습 중인데 무슨 일이에요,”

게 앉거라!”

노인은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소연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소연아! 내가 한 이틀 어디 좀 다녀와야겠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하구요.”

이틀이면 될 것이다. 그동안 비급이나 읽으면서 동굴에만 있어라! 그러면 별일 없을 것이다.”

사부님! 정말 저 혼자...”

소연아! 읍에 잠깐 들러서 필요한 물건도 좀 사고, 강호사정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도 보고 곧바로 올 것이다. 그래봐야, 하룻밤만 혼자 지내면 된다. 그것도 못 참는단 말이냐?”

그래 두... 언제 갈 건데요?”

내일 새벽에 내려갔다가 모레 아침나절에 돌아오마!”

알았어요. 그렇게 하세요.”

소연은 대답을 하긴 했어도 마음은 불안했다. 산중에 혼자 있는 것이 처음은 아닌데, 때가 때라서 그런지 무섭단 생각이 들었음이었다.

 

땀을 많이 흘렸구나! 가서 씻어라!”

누가 그런 것까지 간섭하래요,”

소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암동으로 들어갔다.

 

내가 왜 이럴까?’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 설움이 복받쳤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얼른 옷을 벗고 연못 속으로 들어갔다. 이젠 연못이 아니라 소연의 전용 목욕탕이 되었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쌓였던 피로도 확 풀렸다.

 

무룡아! 제발 살아만 있어, 내가 너를 꼭 찾을 거야, 제발 살아만 있어 줘! 할아버지! 자영아! 꼭 복수할 거야!”

소연은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불쌍한 것, 걱정 말거라! 내가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 원한을 갚도록 도와주마! 내 모든 것을 네게 줄 것이다.’

소연만 생각하면 가슴이 쓰린 한철이었다.

 

소연은 할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동생과 사랑하는 정인(情人)마저 행방불명이 되었다. 소연의 애타는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한철은 소연을 도와 동생과 정인을 찾아주어야겠다고 벌써부터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놈들이 강하고 무시무시한 놈들이라면 나는 놈들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될 거예요.. 꼭 진상을 파헤쳐 놈들을 응징하고 말 테니까, 무룡아! 꼭 살아만 있어, 내가 아저씨 복수도 해줄게,”

탕에서 나온 소연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뭘 봐요. 남에 속도 모르면서...”

소연은 괜한 짜증을 부렸다.

 

뭐 묻은 것이 화낸다고, 네가 그 꼴이 아니냐?”

사부님은 내 맘, 알기나 하세요. 그런 말씀을 하시게...”

네 맘이라, 못난 것, 쓸데없이 눈물이 나 질질 짜는 울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정말 앞날이 걱정된다.”

“걱정 마세요.. 두고 보세요,”

두고 보자는 놈! 볼 거 하나도 없더라!”

정말이라니까요. 이젠 안 운 다 구요!”

이것아! 악다구니 좀 치지 마라, 가뜩이나 심장이 약한데, 놀라서 넘어지면 어쩔래,”

죄송해요. 사부님, 어쨌든 사부님이 다 책임지세요. 무룡이를 찾는 것도 도와주시고, 놈들을 찾는 것 두요.”

소연은 제풀에 꺾였는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

암튼, 소연아! 내 다녀온 후엔 너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이왕 무공을 배울 결심이면 기본부터 철저히 배워야 한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오늘부터는 비급들을 전부 탐독해 숙지하거라!”

사부님! 그렇지 않아도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말해 보거라!”

사부님! 천무신무를 익히는데...”

어떻게 무공을 펼치느냐, 그것이 문제란 말이지?”

그래요. 힘이 있어야 토끼를 잡든, 할 거 아니겠어요.”

이제야, 뭔가를 느낀 게지, 걱정 말거라! 네가 천무신무를 자연스럽게 출 수 있을 때, 자연적으로 힘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위력이 배가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기본이 충실해야, 옳은 힘을 발휘할 수가 있게 된다는 말이다. 내공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알겠느냐?”

이제부터는 사부님 말씀 잘 듣겠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도 말거라! 진심은 마음이 동하여 스스로 행하는 것이 진심이다. 명심해라! 진심을 외면하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진지하게 말한 한철은 눈을 꾹 내리 감았다.

 

, 사부님! 명심하겠습니다.”

“......”

이제야 뭔가를 느낀 듯 소연은 사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리곤 사부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 양으로 구석에 처박혀있는 비급을 들고 등불 앞에 앉았다.

 

***

 

며칠 후, 천길 벼랑을 사이에 두고 소연이 검술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늘색 치맛자락을 너풀거리며 춤추듯 목검을 휘두르는 소연의 몸놀림은 자연스럽고 절도가 있었다. 그동안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겠지만 많은 진전이 있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 제법 숙달이 된 것 같군, 그래야지,’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는 노인은 한철이었다.

 

소연아! 이젠 그만하거라! 너무 무리하는 것은 오히려 몸을 해친다. 알겠느냐? 어서...”

한철이 일어서며 말했다.

 

, 사부님! 어땠어요,”

목검을 거둔 소연이 나는 듯이 한철 앞에 내려섰다.

 

아주 좋았다. 머지않아, 강호에 여 협객이 나타났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강호이니...”

대성을 하려면 몇 년은 걸려야 한다면서요.”

허긴, 그렇지만 앞으로 이삼 년이면 가능성이 있다.”

정말이세요. 그런데 사부님! 그렇게 오래 걸리면 무룡이는 언제 찾으러 가요.”

네가 대성을 해야...”

“안 돼요. 내일이라도 찾으러 갈 수 있게 가르쳐 주세요.”

무엇이라! 당장에 대성을 시켜라! 소연아! 방금도 얘기했지 않느냐! 몸을 무리하면 좋을 것이 없다고...”

알았어요. 일단 가요.”

노소는 서쪽 끝에 있는 절벽으로 걸어갔다.

누가 봐도 노소는 다정한 할아버지와 손녀였다.

 

사실, 소연은 한철에게 체계적인 무공수련을 혹독하게 배웠다. 내공을 키우는 법에서부터 검술의 기본법과 경공술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를... 또한 천무신무를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는 요령까지 착실하게 배웠다.

 

날짜로 보면 오십여 일에 불과하지만, 그야말로 소연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수련에 임했다. 특히 한철은 그동안 모아 두었던 각종 영약들을 아낌없이 소연에게 먹였다. 내공을 빠른 시일 내에 키워주기 위해 한철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었다.

 

어쨌거나 한철은 평생을 산속에서 살았다 해도 무방했다. 그렇다 보니 온갖 영초와 영물들을 채집하고 수집해 감춰두고 있었다. 한철은 그것들을 아낌없이 소연에게 먹인 것이다. 무룡이 먹은 설삼(雪蔘)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백 년은 족히 넘었을 산삼 두 뿌리를 먹였고, 영지와 백 년이 넘은 봉밀(蜂蜜)을 수시로 먹였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 챙겨 먹였고 거기다가 체계적인 무공수련을 시켰다. 그 결과 소연은 적잖은 내공을 쌓게 되었고. 무공도 일취월장했다.

 

 

지금 소연은 암동 독탕에 들어앉아 내공심법을 운기하고 있었다. 이 심법도 한철이 체계적인 무공수련에 앞서 가르쳐준 독특한 내공심법이었다. 그렇지만 소연은 이 심법이 어떤 내공심법인지 알지도 못한 채, 사부의 가르침에 따라 운기 할 뿐이었다.

 

암동의 독탕인 열탕은 흔히 볼 수 있는 온천물이 아니었다. 천지봉 지심(地心)에서부터 솟아오른 온천으로서 온갖 신비의 자양분을 함유한 열탕이었다. 300장 높이의 절벽 암동까지 솟아올랐다는 것만 봐도 예사 열탕은 아닐 것이었다. 소연은 그 열탕에서 날마다 몸을 담근 채, 내공심법을 운기 했다.

 

사실 소연은 일반 여인들보다 음기가 몇 배 이상 강한 여인이었다. 이 또한 한철이 소연을 진맥하고 알아낸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철은 이런 사실을 소연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혹여 소연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 때문이었다.

 

소연은 사부가 가르쳐준 대로 날마다 양의 기운을 흡수해 강한 음기를 다스리는 내공심법을 운기 했다. 이는 음양의 조화를 이용 독특한 내공을 키워주기 위해 한철이 일부러 조처한 일이었다. 하여 내공이 급진전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소연이 탕 속에서 나왔다.

대략 한 시진은 넘었을 것이었다.

 

소연의 몸이 은은한 등불에 비쳤다.. 물기를 머금은 싱싱한 몸은 가히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바짝바짝 탔으며 마른침을 꼴까닥꼴까닥 삼켜야 했다. 소연은 물기 머금은 몸을 구석구석 닦았다. 그럴 때마다 여인의 중요 부분이 아슬아슬, 보일 듯 말 듯했다..

 

소연은 동굴 밖으로 나와 절벽 앞에 섰다.

서쪽 하늘 끝에 아스라이 걸린 해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듯 붉은 빛살들을 마구 뿌려댔다. 그 빛살들은 여지없이 소연의 몸으로 뿌려졌다. 붉게 피어오른 노을을 한 몸에 받고 서 있는 소연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무룡아! 어디 있니, 할아버지! 자영아!”

소연은 노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소연의 짜랑짜랑한 고함 소리가 천지봉을 돌아 계곡 아래로 메아리쳤다. 마음속에 쌓였던 묵직한 것들을 몽땅 날려버린 것 같아서 잠시나마 후련해하는 소연이었다.

 

***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실록이 우거진 오월,

천지봉 일대는 싱그럽다 못해 울창한 숲으로 사위를 덮었다. 들짐승들은 물론이고 미물들까지 제 세상을 만났다. 넓은 들녘은 농부들의 힘찬 발걸음에 맞추어 푸른 함성을 질러댔다. 아마도 금년 농사는 대풍일 것이었다.

 

아침나절, 햇살은 눈이 부셨고 천지봉 일대는 생기로 넘쳐났다. 파란 잔디가 보기 좋게 깔린 양지바른 능선엔 세 기의 봉분(封墳)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앞에 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사나이는 아주 깨끗한 황의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긴 흑발은 가지런히 뒤로 넘겨 늘어뜨린 채, 황색 끈으로 이마를 질끈 묶었다. 머리띠가 의외로 잘 어울렸다. 게다가 반듯한 이마에 우뚝한 코, 부리부리한 눈을 봐도 대장부요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리고 사나이는 가죽으로 둘둘 말아 끈으로 묶은 길쭉한 물건을 메고 있었고, 허리춤엔 작은 손도끼를 꿰차고 있었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나그네 행색이었다.

 

소자는 기약도 없이 떠납니다. 세분 앞에 말씀드렸듯이 결코 뜻한 것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결심으로 떠나는 겁니다.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무룡은 결심한 뜻을 고했다.

 

잠시 천지봉을 바라보고 섰던 무룡이 천천히 봉분 앞에서 돌아섰다. 그리곤 빠른 걸음으로 능선을 내려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 가는 무룡의 등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았다. 돌아보면 눈물이 날까, 돌아보지도 않는 무룡이었다.

 

점점 멀어지는 무룡의 뒷모습은 의지가 굳건해 보였다.

그렇게 무룡은 천지봉을 떠나 강호로 향했다.

 

----------계속

 

일교차가 심합니다.

모두 건강 챙기세요.

건강이 큰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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