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5화

썬라이즈 2023. 11. 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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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연을 찾아서

 

 

호북성 양양에서 40리쯤 떨어진 복룡산(伏龍山),

복룡산은 첩첩산중이 깊기로도 유명한 산이다.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복룡산 중지로 이어진 숲길을 따라 세 필의 흑마가 달려가고 있었다. 말 탄 자들은 흑색 무복에 검을 어깨에 메고 있었으며, 급한 일이 있는 듯 말채찍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달렸다.

 

두두두, 두두두, 두두두,

말들은 능선을 돌아 측백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길로 들어섰다. 길게 뻗은 측백나무 숲길을 지나자 천년 고송들이 울창하게 들어선 평지가 나타났다. 말들은 고송들 사이로 곧게 이어진 길을 내쳐 달려갔다.

 

워워, 워워, -

히히힝, 히힝, 히히힝,

한 채의 커다란 장원 앞에 말들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멈췄다.

 

무황세가(武皇世家),

장원 대문엔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었다. 무황세가란 글씨는 누가 썼는지 필체는 좋았으나 세가의 위용과 부()를 자랑이라도 하듯 황금색으로 덧칠을 했다.

 

언제부터 무황세가가 복룡산에 있었는지 알려진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무황세가가 강호 무림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년 전이었다. 암암리에 활동하던 마교가 정도무림맹을 접수하겠다고 나섰을 때였다. 정도무림을 은밀히 수호하던 만무가는 의문의 멸문을 당했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무황세가가 나타나 마교와 중재에 나섰고, 마교는 무황세가의 뜻에 따라 중원에서 조용히 물러갔다.

 

그 후 새로 등장한 무황세가가 기세등등하게 강호에 이름을 날렸다.. 게다가 사람들은 무황세가가 아니었다면 끔찍한 정사 대전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무황세가를 칭송했었다.

 

그때부터 무황세가는 중원 무림을 구했다며 기득권을 내세웠다. 정도무림맹은 부득이 무황세가의 제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제의는 정도무림이 안정이 된 후 5년마다 무술대회를 통해 정도무림맹의 맹주를 새롭게 뽑는다는 조건이었다. 그 당시 정도무림맹이나 무림방파들, 그리고 무림세가들도 자신들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여긴 탓에 무황세가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만 정도 무림의 안정을 위해 20년 후부터 무술대회를 치르기로 정했다. 그때부터 무황세가란 이름이 강호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급히 말에서 내린 흑의인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일단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어서 오시오. 대두!”

가주께서는 안에 계시느냐?”

요즘 무공수련에 전념하시느라 바쁘십니다. 오셨다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시간이 없다. 곧바로 연락해라! 중요한 정보가 있다고...”

알겠습니다. 칠구는 가주께 연락하라!”

!”

“.......”

대두란 자는 추(追)자가 새겨진 붉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나이는 50대로 보였고, 몸에서 풍기는 살벌한 기운만 봐도 예사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날카로운 눈빛에선 살기까지 감돌았다. 함께 온 자들 역시 붉은 머리띠에 30대 후반쯤으로 보였고 그들 역시 만만찮은 인물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만화곡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만복철을 죽인 바로 천태일의 수하들인 추살대 인물들이었다.

 

장원은 십여 채의 크고 작은 전각들로 세워져 있었다.. 언뜻 보기엔 평화롭고 조용한 장원이었으나 살벌함과 곳곳에서 느껴지는 번뜩이는 눈빛들로 봐선 많은 인원이 기거하고 있음이었다. 그것도 고도로 수련을 쌓은 무사들일 것이었다.

 

추살대 사나이들은 정원을 지나 고풍스럽게 지어진 커다란 단층전각 앞에 멈췄다. 대웅각(大雄閣)이란 현판이 내걸린 것을 보면 무황세가의 가주가 기거하는 곳일 것이었다.

 

추살대 대두를 뵙습니다.”

경계를 서듯 문 옆에 서 있던 자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군.”

대두는 중얼거리듯 말하곤 수하들과 대전으로 들어갔다.

 

대전은 넓었다. 한쪽 벽엔 커다란 산수화가 걸려 있었고, 맞은편엔 고급스러운 장식장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산수화 앞엔 커다란 원형탁자가 놓여있었고 한 단계 높게 만들어진 단상엔 호피가 깔린 태사의가 놓여있었다. 그 아래 좌우로는 호피로 만든 방석이 열 개씩 놓였다.

 

대두와 두 사나이는 좌측 방석에 나란히 앉았다.

그때 뒷문을 통해 한 젊은이가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왔다. 젊은이는 청의를 입었으며 황금색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보기에도 대단해 보이는 젊은이는 천태일이었다.

 

공자! 문안드립니다.”

태일이 테사의에 앉자 세 사나이가 일제히 부복했다.

 

대두! 입조심, 하라!”

태일의 입에서 싸늘한 일갈이 터져 나왔다.

 

가주! 용서하십시오. 공자라는 말이 입에 붙어서...”

대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앞으론 각별히 입조심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 긴급한 정보를 가져왔다고...”

, 가주! 현 중원 무림은 팔월 중추절에 있을 무술대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주시할 것은 무림세가들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태일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가주! 무림세가들이 약속을 어기고, 이번 무술대회에 참가자를 내보낼 심산인 것 같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5년 전서부터 참가할 자들을 선별해 가전 무공뿐만 아니라, 각종 무공들을 수련시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참가할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극비에 부쳐진 상황이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대두가 황송하다는 듯 머리를 조아려댔다.

 

뭐라! 세가들이 나섰다. 흥미 있는 대회가 되겠군.”

그렇습니다. 가주!”

일단 대두는 어떤 세가에서 어떤 놈들이 참가하는지, 그들의 신상명세서를 확보하라!“

이미 지시를 내려놨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놈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야 한다. 완벽한 승리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

기필코 승리하여 당당히 정도 무림맹에 입성할 것이다. 우리 무황세가가 정도 무림맹을 장악하는 날, 마교가 중원 무림을 접수하는 날이 될 것이다.”

태일의 눈에서 욕망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영광의 그날을 교도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목소리가 너무 크다.”

“........”

 

사실은 이번 팔월에 치러지는 정도무림맹 무술대회는 나이 50세 이하의 인물들만 참가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공평한 대회를 치르기 위해 은거 기인이나 나이 많은 고수들을 배제한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팔월 무술대회는 젊고 유능한 차기 맹주를 뽑기 위해 치러지는 그야말로 정도 무림의 축제와 같은 큰 대회였다.

 

가주! 소인은 이만 물러갑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었다가 가라!”

아닙니다. 일단 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머지않아 교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그때 다시 뵙게 될 것입니다.”

알겠다. 다시 보자!”

물러갑니다.”

사나이들은 발소리도 없이 대전에서 물러갔다.

 

사부님만 아니었다면 자영이를 데려오는 건데, 킬킬, 밤마다 자영이 고것이 생각나 미치겠군.”

태일은 만화곡에서의 자영을 떠올리곤 킬킬댔다.

 

어떻게 해서든 승리를 해야 한다. 이번에도 사부님이 오시겠지, 제기랄, 사부님은 얼굴이 알려졌으니 힘들겠군. 장로께서, 아니야 장로는 이미 죽은 것으로, 그렇다면 누가?”

태일은 사부가 돕길 바랐지만 여의치 않음을 알았다.

 

10년 전이었다.

무황세가의 가주로 활동하던 마교의 탁원숭 장로가 죽음을 가장하여 교로 돌아갔다. 그 뒤를 이어 천태일이 탁태일이 되어 가주가 됐다. 20년 전서부터 계획된 마교의 은밀한 음모가 마침내 무르익어 가고 있음이었다.

 

 

한편, 그 시각이었다.

저녁노을이 물감을 뿌리듯 농촌풍경을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었다.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화처럼 넓은 관도를 끼고 좌측으로 나지막한 야산이 보기 좋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측으로는 크고 작은 밭떼기들이 쭉 늘어서서 싱그럽고 풍성한 작물들을 자랑했다. 그야말로 평화롭고 정겨운 농촌풍경이다.

 

그 풍경화의 인물처럼 한 사나이가 저녁노을을 등지고 길게 뻗은 관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행색으로 보면 떠돌이 낭인이 분명했다. 등에는 작은 봇짐을 지고 손에는 가죽으로 둘둘 말아서 묶은 길쭉한 물건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남들이 봐도 이상해할 정도로 손도끼를 허리춤에 꾹 찔러 넣은 사나이였다. 사나이는 흐느적흐느적 걸어가면서도 멀리 보이는 산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저 앞에 보이는 것이 평도읍(坪陶邑)이면, 그 뒤에 보이는 높은 산이 호산(虎山)이라는 얘긴데, 화전민촌이라...”

 

대략 100장 거리에 평도라는 작은 읍성이 보였다. 읍성 뒤쪽으로는 까마득히 솟아오른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산봉우리는 가히 장관을 이뤘다. 해발 600장은 넘을 것 같았다. 사나이는 운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사나이의 걸음걸이는 취기가 있는 듯 부자유스러운 걸음이었다. 그런데도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일반 사람들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언뜻 보기에는 걸음걸이가 느려 보였으나, 눈을 떼었다가 다시 보면 멀찍이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사나이의 보법은 정말로 희한한 보법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만약 일반 사람들이 이를 봤다면 술에 취한 미친놈이라고 욕을 했을 것이었다.

 

소연아! 네 고향이라고 했으니 분명 이곳에 와 있겠지, 내가 간다. 기다리고 있어라! 꼭 와 있어야 하는데...”

사나이가 누군지 걸음걸이만 봐도 짐작이 갔다.

 

사실 무룡은 소연으로부터 고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산동성 평도라는 작은 읍성에 가면 호산(虎山)이라는 큰 산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 호산에 있는 화전민촌이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라는 것이었다.

 

무룡은 소연이가 집에 오지 않은 것은 자영이와 고향에 갔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가끔이지만 소연이는 고향은 어떤 곳일까, 꼭 가보고 싶다고 말을 했었다. 그랬기에 무룡은 소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어쨌거나 무룡은 그녀들을 찾아 보살필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무룡은 그녀들부터 찾는 것이 먼저였고, 그 후에 숭산으로 가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여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원래 호산은 험준한 산이다. 옛날부터 호랑이가 산다고 하여 호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평도는 호산줄기인 산자락과 강을 끼고 세워진 작은 읍성이다. 그렇지만 도자기를 굽는 유명한 가마터가 대여섯 군데나 있어서 제법 번성한 읍성이다. 이곳 가마터에서 굽는 도자기는 황실의 진상품으로 올라갈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 관계로 고급도자기를 사려는 상인들과 진상품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왕래가 제법 많은 곳이기도 했다.

 

무룡은 천지봉을 떠나온 지 보름 만에 가까스로 이곳 평도에 다다랐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산길을 이용했고 잠도 산에서 잤다. 그렇게 산을 타며 그동안 숙지한 무공수련을 계속했다. 특히 허공답보인 허공만보는 산을 타면서도 계속 연습했다. 지금도 연습 중이다..

 

사실 무룡은 산골에 처박혀 살던 산골 청년이다. 그런 무룡이 별안간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자, 처음엔 강호 생활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사회생활이나 물정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니 두려운 마음이 더 생겼을 것이었다.

 

어쨌거나 무룡이가 아는 것이라면 어머니인 조추월이 상식적으로 가르쳐준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켜야 할 법도 정도였다. 그리고 서책 중에 잡학서를 읽어본 것이 그래도 큰 도움이 되긴 했다.

 

그 잡학서에는 처세술이 왜 중요한지,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어떻게 상대를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구별하고 판단하는 법과 말하는 법, 직업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법 등등... 그리고 도박술(賭博術)까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무룡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충 읽어봤을 뿐이었다. 그때 오늘날을 생각했다면 잡학서를 소홀히 여기진 않았을 것이었다.

 

 

----------계속

 

깊어 가는 가을, 독서의 계절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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