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룡이 읍성 입구에 당도할 즈음엔 어둠이 잔잔히 깔리고 있었다. 그때는 읍성 초입에 있는 호산객점이 등불을 환하게 밝힌 때였다. 무룡은 객점 앞에 서서 문 옆에 걸려있는 두 개의 등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객점 안을 기웃거렸다.
“냄새 한번 좋다. 누구 없나? 길을 물어봐야 하는데, 오늘도 산에 올라가서 자야겠지, 킁킁,”
무룡은 중얼거리며 객점 안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냄새를 맡아댔다. 꼭 개가 냄새를 맡으며 킁킁거리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구걸하러 온 자 같았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하는 행동은 약간 모자란 듯이 보이기도 했다.
“이보게 젊은이! 게서 무얼 하는 겐가, 들어가지 않고,”
언제 다가왔는지 50대로 보이는 사나이가 말을 걸었다. 별안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나자 무룡이 급히 돌아섰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이곳이 객점인 줄은 알겠는데, 처음이라 아는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
“뭐라! 아는바가 없다. 내 보아하니 글깨나 읽은 것 같은데 음... 한 번도 객점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단 얘기이신가, 허허! 이곳 태생도 아닌 것 같고, 어디서 오셨는가?”
사나이는 무룡을 훑어보며 질문을 해댔다.
무룡도 사나이를 찬찬히 뜯어보며 대답했다.
“저는 산서성 천지봉 골짜기에 사는 무룡이라 합니다.”
“산서성 천지봉이라면 오대산에 있는 그 천지봉을 말하는 것이겠군. 먼데서 왔구먼, 그런데 이곳까지는 어쩐 일이신가? 아니지, 예서 이럴 것이 아니라 들어감세!”
사나이는 말을 마치며 객점 안으로 쑥 들어갔다.
“......”
‘이를 어쩌지...’
무룡은 어찌할까 망설였다.
그때 굵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젊은이! 뭐하는 겐가 들어오라니까!”
“예, 들어갑니다.”
무룡은 주춤거리며 객점 안으로 들어갔다. 객점은 이층으로 되어 있었고 일층은 식당이었다. 이층은 긴 복도 옆으로 여러 개의 문들이 나있는 것으로 보아 객방인 것 같았다.
호산객점은 객점을 겸한 객관이었다. 객점 안은 조용했다. 일층인 식당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여섯 개의 탁자가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한 탁자에선 세 사나이가 음식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엉거주춤 들어서는 무룡을 쳐다보기는 했으나 관심 없다는 듯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때 20세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다가와 무룡의 아래위를 훑어봤다. 키는 무룡보다 작았지만 아주 단단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청년은 팔소매가 없는 목이 푹 파인 옷을 입고 있어서 팔의 근육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울퉁불퉁 거리는 것이 힘깨나 쓸 것 같았다. 그리고 얼굴은 약간 각진 얼굴인데 눈썹이 짙고 입술이 두툼한 것이 강인한 인상을 주었고, 입이 무거울 것 같은 젊은이였다.
“이봐! 주인아저씨가 부르잖아!”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가 객점 주인이었구나.’
무룡은 젊은이의 굵직한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손짓을 해대는 사나이 앞으로 다가갔다. 사나이의 얼굴을 보니 우측 눈썹 위에 제법 큰 검은 사마귀가 있었다. 어디를 가든 얼굴을 잊어버릴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리엔 황건을 썼다.
“아저씨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나, 그냥 팽 아저씨라고 부르게, 원래는 팽구소라 하네!”
“예, 팽 아저씨이셨군요. 저는 만 무룡이라고 합니다.”
“그리 앉게, 우리 이야기나 나눔세!”
“......”
무룡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초면인 사람이 이렇듯 호의적으로 대해 주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음이었다. 아직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이유가 되겠지만,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 틀린 무룡으로선 누구에게든 도움을 받는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무룡의 기본 생각이었다.
사실 무룡의 입장에선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초면인 사람에게 도움은 받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무룡은 일단 궁금한 것을 여쭤보고, 그동안 지내온 것처럼 산으로 올라갈 생각이다.
“팽 아저씨! 하나만 여쭈어 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 온 이유를 묻고 싶었는데 말해보게, 내가 아는 거라면 다 말해 줌세!”
“저, 호산에 화전민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화전민촌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초행이니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화전민촌이라? 아 있었지,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이년 전쯤 뿔뿔이 흩어진 것으로 아는데...”
“네에! 아저씨, 자세하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무룡의 얼굴에 그늘이 어렸다.
“허허, 얼굴색을 보아하니, 그곳에 친척이라도 살고 있었던 게로 군!! 내 말이 맞는 모양일세 그려,”
“예, 아저씨! 찾을 사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가, 암튼 동쪽기슭에 다섯 가구가 살았었지, 하지만 이년 전에 어디론가 떠났다는 말을 들었네.”
“그게 정말입니까?”
무룡은 일시 눈앞이 캄캄했다.
“......”
“아저씨! 화전민이 살던 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는 것이 빠릅니까?”
“왜? 이 밤에 가려고...”
“그건 아니지만, 내일이라도 가봐야 될 것 같아서요.”
“어허! 이 젊은이 보게, 그곳엔 아예 갈 생각을 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무룡이라고 했던가? 젊은이! 예전엔 여기서도 올라가는 소로(小路)가 있었다네. 하지만 지금은 길이 없어졌네.”
“길이 없어지다니요?”
“사람들이 다니지 않으니 자연적으로 없어졌지, 게다가 길이 험하고 맹수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혼자서는 다닐 수가 없는 길이었다네.”
“그럼 어떻게...”
“원래 화전민촌은 산 건너편인 동쪽기슭에 있었네. 그래서 이쪽에서는 왕래가 거의 없었지,. 한 50리쯤 돌아가면 감숙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화전민 사람들은 감숙 뒷길을 이용했다고 하더군. 그렇지만 지금은 그 길도 없어졌을 것이네.”
“그렇더라도 저는 찾아가서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무룡은 두 눈으로 어떤 곳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좋네. 하지만 젊은이 어차피 오늘은 늦었으니 이곳에서 쉬고, 내일 올라가던지... 일단 저녁이나 드시게, 아셨는가?”
“하지만 아저씨!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허허! 그런가, 강호엔 처음 나온 것이라고, 걱정 말게 돈이 없으면 어떤가, 내가 손님으로 대접을 하는 것일세!”
“그래도...?”
“젊은이가 소심하기는 이층에 방도 있네. 나중에 충걸이와 함께 쓰시게, 충걸아! 이리 좀 오너라!”
팽구소는 넉넉한 웃음을 흘리며 무룡에게 하루 묶어 가도 좋다고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아저씨!”
좀 전의 젊은이가 빠르게 달려왔다.
“식사를 준비해 다오, 소면과 고기만두 두 접시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이 젊은이와 방을 함께 쓰도록 해라!”
“예, 아저씨!”
충걸은 무룡에게 씽끗 웃어 보이며 걱정 말라는 표정을 짓고는 곧바로 주방으로 달려갔다.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가는 청년이었다. 팽구소는 잠시 무룡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보게! 내가 말을 놓아도 되겠는가?”
“예, 팽 아저씨!”
“좋네! 일단 식사부터 해라!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
“예, 그러겠습니다.”
팽구소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팽구소가 뒤쪽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뒤채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릴 때 언뜻 보니, 뒤뜰엔 꽃이 지기 시작한 목련이 심어져 있었다.
‘본의 아니게 저녁과 하룻밤 신세를 지게 생겼군. 신세를 지면 보답을 하는 것이 도린데...? 내일 아침엔 화전민촌엘 찾아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그나저나 어떻게 신세를 갚는다. 보기엔 팽 아저씨는 나쁜 사람 같지는 않고...’
무룡은 이런저런 생각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봐!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냐? 많이 먹어라! 부족하면 더 달라고 말만 해!!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고...”
충걸이 탁자에 소면 한 그릇과 만두 두 접시를 내려놓으며 무룡의 상념을 깨웠다.
“아 네, 잘 먹겠습니다.”
“이봐! 나 같은 사람한테 공대까지 쓸건 없다. 보아하니 나이도 나와 비슷할 것 같은데, 그냥 쉽게 생각하자. 난 말이다. 골치 아픈 건 딱 질색이거든, 우리 얘기는 나중에 하자! 그럼 많이 먹어라!”
“그렇게 하지요. 나중에 뵙지요.”
무룡은 그동안 생식위주로 배를 채웠다. 그것은 천지봉 암동에 있을 때부터 습관을 들인 것이지만 모처럼 화식을 하게 되니, 그야 말로 음식이 꿀맛이었다. 특히 만두는 무룡이 좋아하던 음식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소면 한 그릇과 만두 두 접시를 다 먹고 나니, 포만감에 몸이 나른해졌다. 무룡은 이젠 어떻게 하나 그것이 걱정이었다.
“다 먹었느냐? 뭐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지...”
주인 팽구소가 언제 왔는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아저씨! 아주 잘 먹었습니다. 헌데 어떻게 해야 할지...?”
“뭘 어떻게 해, 밥값을 해야지...”
“예, 그럼요. 밥값을 해야지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만 주십시오. 몸으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자신 있습니다.”
“이런 사람하고는... 무룡아! 너는 우리 집 손님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다른 건 신경 쓸게 없다. 내, 괜한 소리를 해 가지고...”
“그래도 아저씨! 제 마음이 편치를 않아서, 무엇이든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해 주십시오.”
“허허, 고집하고는 내 생각을 해보마! 그건 그렇고, 그래 화전민촌엔 누가 살았기에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왔느냐? 아니지, 친척이었다면 그들이 너희 집으로 찾아갔을 텐데...?”
“아저씨! 그런 것이 아니라..”
“......”
무룡은 대충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팽구소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이야기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기막힌 일을 당했구나! 그래 앞으론 어쩔 생각이냐?”
“우선 소연이와 자영이를 찾아야지요. 내일 화전민촌엘 가봐야겠습니다. 아직 그녀들이 오지 않았다면 당분간은 이곳에서 기다려 볼 참입니다. 하지만 분명 와 있을 겁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화전민들은 이곳을 떠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네 생각이 정히 그렇다면 한번 다녀오너라! 그래야 마음이라도 편할 테니,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아침에... 그렇지 충걸이가 화전민촌에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 한 번 물어보거라!”!”
팽구소는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자리를 떴다.
“예, 아저씨!”
무룡은 공손히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래 우선 화전민 촌엘 가보자, 꼭 와 있어야 하는데, 만약 오지 않았다면 올 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어쨌든 그녀들이 갈 곳이라고는 이곳밖에 없다. 일단은 가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무룡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중얼거렸다.
이미 날은 어두웠고 남아있던 손님들도 돌아갔다.
객점은 조용했다.
충걸은 마지막 손님이 나가자, 주인의 허락 하에 평일보다 일찍 객점 문을 닫았다. 이상하게 이 날따라 투숙객도 없었다.
무룡은 밖에 나가보고 싶었으나, 주인이나 충걸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멍청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남에 눈치를 본다는 것이 이렇듯 불편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래 사람은 모름지기, 어떤 경우에든 당당해야 한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았어, 문 앞에서 음식 냄새나 킁킁거렸으니, 팽 아저씨가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했겠어, 정말이지 허우대는 멀쩡해 가지고 모르면 떳떳이 물어봤으면 됐을 텐데... 앞으론 떳떳하게 아주 당당하자. 암튼 뜻을 펴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 그 이외는 두려울 것이 없다. 소연이와 자영만 찾으면...”
탁!
그때~
충걸이 맞은편에 앉으며 탁자를 탁 쳤다.
“뭐 해,.”
“예, 그랬습니까?”
무룡은 놀랐는지 얼른 말을 받았다.
“......”
“아까 언뜻 들으니까, 이곳이 초행길이라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이렇게 밖에 나오기는 처음입니다. 그래서 도통 아는 것이 없습니다. 형께서 많이 좀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아는 것이 있어야지, 겨우 글자나 깨우친걸...”
“그러니까, 일반적인 생활방식 같은 거...? 그리고 돈의 값어치와 돈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런 것 말입니다.”
“아하, 난 또 뭐라고, 그런 건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야, 남들 하는 대로 그냥 따라 해 봐!! 그러면 자연히 알게 된다. 그리고 뭐야! 형이라니, 난 스무 살이다. 이름은 그냥 충걸이라고 부르면 된다. 너는?”
“나는 열아홉 살이고 이름은 만무룡! 내가 나이가 어리니까 형이라고 불러야지요. 안 그래요.”
“형은 무슨, 우리 그냥 친구처럼 이름 부르자. 격식 같은 것은 개나 주고 하루라도 편하게 지내자. 됐냐!”
“.......”
무룡은 충걸이 남자답다고 생각했다. 난생처음 또래의 친구를 만나니, 소연과 자영을 만났을 때 하고는 사뭇 다른 감정이 들었다. 믿음직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냥 아무 얘기나 막 해도 될 것 같은 그런 친구처럼 느껴졌고, 하루를 지내더라도 격식 없이 편하게 지내자는 충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무룡은 충걸의 제의대로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다. 그들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굳게 손을 마주 잡았다. 젊은이들이라 그런지 잡은 손에 힘이 넘쳤다.
^(^,
날씨가 춥습니다.
모두 건강 챙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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