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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2권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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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엔 빛들의 잔칫날인 양 무수한 별들이 불꽃놀이에 푹 빠졌다. 달무리도 살판났다는 듯이 은은한 빛을 뿌리며 천지봉으로 놀러 왔다.. 그때 빛 무리를 반기듯 바람들이 천지봉을 휘돌고 휘돌았다.

 

천지봉 북쪽,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들이 별빛들에 의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서쪽 끝에 위치한 암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 여인이 암벽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여인이 움직일 때마다 치마가 나비가 날 듯 너풀거린다.

 

여인은 신들린 여인처럼 신명이 나있었다. 발동작 하나하나가 유연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손놀림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번의 손동작이 버들가지 휘어지듯 늘어졌다가 곧게 뻗어나가니, 그 춤사위가 일품이었다. 그리고 몸을 가볍게 회전시키는 몸놀림은 가히 선녀가 하강하여 춤을 추는 듯 보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춤을 추고 있었는지, 여인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검은 머리는 뒤로 묶었으나 몸을 움직일 때마다 좌우상하로 말꼬리 춤추듯 했다. 신명 난다 신명 나,, 얼쑤얼쑤, 보기만 해도 어깨춤이 절로 나는 그런 춤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래도 여인은 춤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동굴 입구를 가리고 있던 거적이 살며시 들춰졌다.

봉두난발(蓬頭亂髮)한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저러다간 몸 상하지, 몸 상해, 이거 내가 잘못 생각한 것 아냐? 입에 가시가 돋던 벙어리가 되던 그냥 참을 걸, 제기랄, 제자는 무슨 놈에 제자, 오히려 굽실거리는 종복(從僕)이 될 판이니, 어쨌든 열심히 수련하는 것을 보면 수년 안에 대성을 이룰 것도 같고, 그러나 저러나 밥은 먹여야겠지,’

동굴 밖으로 나오려던 한철은 그만 포기를 하고 말았다. 열심히 수련에 임하는 소연이 안쓰럽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도로 기어들어간 한철은 화덕 앞으로 다가가 불을 지폈다.. 화덕 위엔 검게 그을린 쇠바가지가 올려져 있었다..

 

한철은 옆에 놓인 항아리 뚜껑을 열더니 멧돼진지, 노루 뒷다린지 꺼내 들었다. 그리곤 보기에도 끔찍해 보이는 식칼로 살점만 발라 달궈진 쇠바가지 속에 툭툭 던져 넣었다.

 

치지직, 치직, 치지직--

달궈진 쇠바가지에 생고기가 들어가자 고기 익어가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한철은 코를 벌름거리며 옆에 놓인 작은 단지에서 굵고 누런 소금을 꺼내 고기에다 술술 뿌렸다.

타다닥, 타다닥,

소금 튀는 소리가 콩 볶듯 요란했다.

 

거 냄새 좋다. 에이 아까워, 두고두고 먹을 건데, 쩝쩝!”

한철은 입맛을 다셔가며 부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고깃점이 뒤집어질 때마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사부님! 나 몰래 잡수려고...”

언제 들어왔는지,, 소연이 한철을 째려봤다.

애구, 귀청이야! 못된 것, 너 줄려고...”

거짓말하지 마세요, 나 몰래 혼자 잡수시겠다 그거겠죠!”

정말 그게 아닌데, 에라 모르겠다. 다 쳐 먹어라!”

한철은 정말로 화가 났는지 부젓가락을 획, 던지려다가 내려놓고는 멀찍이 물러났다. 소연은 쪼르르 화덕 앞으로 달려가 부젓가락을 집어 들고는 고기를 콕콕 찔러봤다. 고기는 아주 적당히 익었는지 젓가락이 폭폭 잘도 들어갔다.

 

소연은 쩝쩝 소리를 내가며 고기를 집어먹었다. 그런 소연을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던 한철이 배를 쓱 문질렀다. 꼬르륵 소리가 소연의 귀에까지 크게 들렸다. 그래도 소연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앉은 소연의 입가엔 살포시 미소가 어렸다.

 

쌤통이에요, 사부님! 진작 잘해보자고 사과를 하시지, 끝내 고집을 부리시더니, 이젠 제가 이긴 거예요. 그러니 무공수련에 협조해 주세요.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사부님이 가르쳐 줘야 제대로 배울 수가 있다고요. 킥킥, 어쩔까...? 그만 같이 먹자고 해...’

소연은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다 킥킥거렸다.

 

사실 소연은 한철 노인이 좋았다.

생명을 구해줬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딱히 무엇 때문에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연의 눈에는 한철 노인이 진실해 보였다. 그리고 그냥 마음이 끌렸다. 손녀를 귀여워만 해주는 할아버지처럼, 아무리 잘못해도 어리광으로 받아주는 그런 할아버지처럼 좋았던 것이다.

 

한철은 지금 소연의 행동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한철에게는 사람 냄새가 그리웠었다. 특히 말동무가 필요했고, 싸움을 하던 지지고 볶던 그런 상대가 절실히 필요했었기 때문에 소연과의 동거가 행복일 수도 있었다.

 

한철은 속세를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픈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런 한철에게 소연은 그야말로 금지옥엽을 얻은 것처럼 기쁜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수염을 잡아 뜯든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한철은 소연을 손녀처럼 귀히 여길 것이었다.

 

싹수가 밤톨만큼도 없는 계집애 같으니, 사부가 배가 고파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얼른 고기 몇 첨이라도 갖다 주지 않고, 태궁인지 하는 늙은이가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저렇게 천방지축이야! 못된 늙은이, 그러니까 비명횡사를 당한 게지, 그나저나 기(氣) 싸움에서는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데, 제기랄, 벌써 한 수 뒤지고 있으니...’

 

, 그렇게 중얼거려요, 빨리 이쪽으로 못 와요.”

지가 다 먹고...”

정말이지, 내가 다 먹을...”

알았다, 간다. ,”

한철은 입을 헤벌쭉 벌리곤, 기듯이 엉금엉금 화덕 앞으로 다가갔다.

호호호, 호호호,”

사부의 웃긴 모습에 소연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못된 것, 에그, 고기가 다 타네.”

한철은 눈을 부라리긴 했으나, 역정도 못 내고 화덕의 불부터 껐다.

사부님! 제자가 사부님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아세요, 아주 많이 존경해요. 그러니 많이 드세요. 제자는 조금 먹었어요.”

“......”

존경 좋아하네, 존경하는 계집애가 사부를 오라 가라 해!’!’

한차례 눈을 부라린 한철은 뜨거울 텐데도 커다란 고깃점을 입에 털어 넣고는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사부님! 많이 드세요. 이젠 몸이나 씻고 잠이나 자야지...”

소연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암동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낄낄, 키키킥,

암동 안에서 소연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한다. 그래 존경하는 사부는 먹다 남은 찌꺼기나 청소하듯 먹고, 못된 계집애는 목욕하고, 게다가 사부를 비웃어, 그럼 천벌 받지, 클클클, 이런 내가 왜 웃어, 킬킬킬,’

한철은 실실 자꾸 웃음이 났다.

 

소연은 한철을 의식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몸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동안 소연은 적어도 두 시진은 신무(神舞)를 추었을 것이다. 허니 땀으로 목욕한 듯 온몸이 번들거릴 밖에...

 

소연의 벗은 몸매는 가히 눈이 부셨다. 흰 목덜미를 타고 등 뒤로 늘어진 머릿결 하며,, 유연한 곡선을 타고 내려가다 불룩 솟은 두 개의 탱탱한 봉우리, 그 밑으로 앙증맞아 보이는 배꼽도, 특히 잘록한 허리와 만월 같은 허연 엉덩이가 너무도 탐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쭉 뻗은 다리...

 

소연은 아예 물속으로 들어가 앉았다. 다행히 깊이는 얕아서 소연이 앉자 얼굴만 드러났다. 따끈따끈한 물속에 몸을 담그자 피로가 금방 풀리는 것 같았다. 소연은 물속에 몸을 맡기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한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년의 이름은 만무룡이었다.

“......”

그때는 특별한 놀이가 없던 때라 소연과 자영, 그리고 무룡은 자주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었다.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화원은 온통 국화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무룡은 덥다고 웃통을 벗었고 자영과 소연도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항시 술래는 무룡이 도맡아 했었다. 그날도 무룡은 술래였고, 자영과 소연은 나비처럼 국화꽃사이에 숨었다. 무룡은 그들을 찾아 화원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한참 동안 화원을 헤매고 돌아다닌 무룡은 잔디밭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덥기도 했고, 그들을 찾는데 은근히 짜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무룡이 막 잔디밭에 누었을 때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소연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무룡은 쏜살같이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소연이 사색이 되어 쓰러져있었다. 바들바들 떨며 쓰러져있는 소연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인가 살피던 무룡은 소연의 허연 허벅지에 뱀에게 물린 이빨자국을 찾아냈다. 물린 자국에선 피가 점점이 배어 나왔다. 무룡은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상처에 입을 대고 피를 빨아냈다. 그래도 소연은 실신 상태로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얼마나 피를 빨아냈는지 모른다, 그러나 소연은 쉽사리 깨어나질 않았다. 무룡은 소연을 억지로 업고 초막으로 달려갔다. 마침 외출했다 돌아오던 태궁이 이를 보고 달려왔다. 천만다행이었다.

 

할아버지는 소연의 상처를 자세히 살핀 후 치료를 했다. 그러자 소연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할아버지는 응급조치로 피를 빨아내지 않았다면 소연은 죽었을 것이라며 무룡을 칭찬했다. 정신을 차린 소연은 숙인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뱀에게 물린 곳이 여인의 심처에 인접해 있었기에 소연은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때부터 소연은 무룡을 예사로 처다 볼 수 없게 되었고, 첫사랑이 싹트게 된 게기가 되었던 것이다.

 

소연은 물속에서 허벅지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때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룡아, 잘 지내고 있지, 절대 만화곡엔 가지 마라,, 나는 네가 잘못된다면 살고 싶지가 않을 거야, 그리고 무룡아, 내가 찾아갈 때까지 건강해야 돼, 너는 내가 보살펴 줄게...’

소연의 눈에 이슬이 맺힌 것은 슬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움이 사무친 눈물일 것이었다.

 

소년소녀였던 무룡과 소연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마음이 끌렸었다.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오늘날 사랑으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가깝고도 먼 이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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