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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의 아들 102

검투사의 아들 12

지하 바닥에 내려선 순간,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원세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그렇지만 이내 흐릿한 지하 전경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앞으로 쭉 뻗은 통로는 2장 넓이였고, 통로 양쪽으로는 굵은 쇠창살로 가로막힌 감옥이었다. 이미 산 사람은 없을 것이란 말을 들었기에 감옥 안은 사실상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제발...” 감옥에서 눈길을 뗀 원세는 솜방망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횃불은 점점 꺼져 갔다. 겨우 흐릿하게 드러난 1장 반경 내의 사물들만 알아볼 수가 있었다. 앞쪽을 살펴본 원세가 이번엔 조심스럽게 돌아서서 계단 옆쪽과 뒤쪽을 살폈다. 그때 원세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아, 솜방망이,” 감옥에서 우측으로 제법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

검투사의 아들 2021.10.07

검투사의 아들 11

2장, 나는 광마(狂魔)다. 오후가 되자 맑았던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저녁부터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건너다 보이는 량산은 검은 괴물처럼 버티고 서서 봄비를 즐기듯 몸을 내맡겼다. 한 번씩 바람이 지나칠 때면 괴성(怪聲)까지 질러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휘이잉- 휘잉- 휘이잉--- 량산에서도 제일 험하다는 으스스한 계곡의 암벽이 봄비를 묵묵히 맞고 있었다. 계곡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암벽에 부닥칠 때마다 소름 끼치는 괴성을 질러댔다. 마치 죽은 자들의 원혼이 살아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흔들거리는 횃불에 동굴 정경이 드러났다.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있는 인골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울퉁불퉁한 암벽이 답답하다 못해 숨통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하동굴 속에서 한기를 몰고 온 비명 ..

검투사의 아들 2021.10.04

검투사의 아들 10

그 시각이었다. 중식을 먹고 난 제갈 영웅은 어른들이 접견실로 향할 때 탕약 냄새가 나는 별당으로 향했다. 아담한 별당 앞엔 여랑의 거처임을 말해주듯 막 피기 시작한 버들 매화가 하나둘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꽃은 작고 앙증맞았다. 마치 여랑을 닮은 듯 화사하고 예뻤다. 텁석부리 사나이는 신기한 듯 매화꽃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생김새로 보면 매화꽃에 매료될 사나이로 보이진 않았다. 제갈영웅은 별당 앞에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과 얘길 나누고 있었다. 한 번씩 인상을 쓰는 것으로 보아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모! 그러지 말고 아가씨를 한 번만 만나게 해 주게,”,” “공자님! 몇 번을 말씀드려야 돌아가시겠어요. 아가씨는 지금 몸이 불편하십니다. 정말입니다...

검투사의 아들 2021.10.01

검투사의 아들 9

17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그리고 일 년 전이었다. 황궁의 무고를 지키던 왕도칠이란 자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황궁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황궁에서 쫓겨나기 직전에 눈이 번쩍 뜨이는 얘길 들었다. ‘20년 전에 없어진 장보도만 찾는다면 떼부자가 되겠지,’ ‘황제도 부럽지 않을 겁니다’ 황궁 무고의 서기들이 숙덕거린 얘기 중에 일부였다. 20년 전이었다. 황궁 무고에서 엄청난 보물이 숨겨진 장보도(藏寶圖)와 비기가 없어졌었다. 그 당시 비기에 대해선 세간에 회자가 되었지만, 장보도에 대해선 함구 되었다. 사실 황제의 명으로 은밀히 비기는 물론 장보도를 찾아 나섰으나 끝내는 찾지를 못했다.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누군가가 장보도를 찾는다면 황제가 부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황궁 내에선 나돌..

검투사의 아들 2021.09.28

검투사의 아들 8

여기는 귀한 손님들만 모신다는 접견실, 흰색과 붉은색으로 치장된 접견실은 은근히 위압감이 감돌았다. 중앙에 놓인 검붉은 원형 탁자엔 진충원과 제갈 왕민,, 그리고 쌍노와 회색 장포의 두 노인이 배석했다. 어딜 갔는지 제갈 영웅과 텁석부리 사나이는 보이지 않았다. “가주! 장보도(藏寶圖)에 대해선 알아보셨습니까?” 진충원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람을 풀어 다방면으로 수소문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정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긴 했습니다.” “그래요. 그 정보가 뭡니까?” “장주! 대도(大盜) 묘신수(竗神手)에게 딸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뭐요. 그럼 그 딸이, 진짜 비기와 장보도를...” “알고 계시겠지만, 비기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

검투사의 아들 2021.09.24

검투사의 아들 7

두두두— 두두두--- 다음날 정오, 중천에 떠오른 태양은 눈이 부셨다. 멀리서부터 봄바람을 타고 들려오던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언제부터 나와 있었을까, 하나같이 검은색 무복에 검을 든 무사들이 장원 앞에 나와 있었다. 천수를 비롯해 풍객과 열 명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누구를 기다리는지 길게 뻗어있는 길을 주시하고 있었다. 길은 읍내로 이어진 길이었고 폭은 3장쯤 되었다. 길가엔 수령이 100년쯤 되었을 소나무 몇 그루와 은행나무가 띄엄띄엄 심겨있었다. 따가닥, 따가닥, 두두두-- 다섯 필의 흑마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앞선 두 필의 흑마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 새끼들이...” “추객!!” “풍객! 너야말로 입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추객! 아니 천수..

검투사의 아들 2021.09.23

검투사의 아들 6

꼬끼오-- 수탉의 긴 울음소리가 장원에 드리운 정적을 깨웠다. 여기저기 등불이 밝혀지고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일해야 하는 일꾼들이 서둘러 일어나는 소리였다. 한 허름한 전각인 와가(瓦家), 몇 개의 방이 있기는 했으나 불이 켜진 방은 하나뿐이었다. 그때 방 안에서 중년 남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번씩 사나이의 격한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방안, 천수와 원세의 어머니인 고 씨 부인이 책상을 마주해 앉아있었다. 천수는 돌아오자마자 부인에게 추궁을 당했다. 그렇다고 부인이 여염집 아낙처럼 울고불고 난리를 친 것은 아니었다. 부인은 자식을 사지에 가두고 온 지아비를 먼저 위로했다. 그리곤 자식을 위해 그동안 뭘 해줬냐고 이것저것 따져가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천수로서는 대답이 궁해 때를 기다..

검투사의 아들 2021.09.19

검투사의 아들 5

그 시각이었다. 웅—우웅- 우우웅--- 한 번씩 지하 감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원세는 굳게 닫힌 동굴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적어도 반 시진은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었다. 세상에 아들을 사지에 가두는 아버지도 있을까, 원세의 얼굴이 흔들거리는 횃불에 드러났다. 부릅뜬 두 눈은 충혈이 되었고, 일그러진 얼굴은 보기조차 딱했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한다거나 미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일그러진 얼굴엔 굳은 의지가 어렸고 눈에선 독기까지 흘렀다. “아버지! 아버지의 어깨와 등은 그 누구도 넘지 못할 태산 같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작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 또한 못난 자식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자는 아버지 말씀대로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겁니다. 백일이 아니라 일 년,..

검투사의 아들 2021.09.17

검투사의 아들 4

자정이 지난 시간임에도 은밀한 대화가 흘러나오는 곳이 있었다. 사람 접근을 불허한 곳, 후원의 한 전각 밀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쌍노!?” “회유해도 듣지 않는다면 이참에 죽이는 것이...” “그렇겠지, 면천을 시켜줄 수는 없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주인님! 천수와 계집은 죽이되 원세 그놈은 살려두십시오. 놈이 아비를 닮아 무골(武骨)이라 잘만 가르친다면 크게 쓰일 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쌍노!! 걸리는 것이 있다.” “제갈 세가와. 그리고 아가씨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놈을 귀곡부로 보내 살수 수련(殺手修練)을(殺手修練) 받게 하겠습니다. 제대로 된 살수가 탄생할 겁니다.” “역시 쌍노야,, 헌 데, 놈은 죽은 목숨 아닐까?” “주인님! 원세 그놈은 꼭 살아서 나올 놈입니다..

검투사의 아들 2021.09.16

검투사의 아들 3

휘리링-- 휘이이힝--- 계곡을 훑고 올라온 바람이 절벽에 부닥쳐 음산한 귀곡성을 질러댔다. 그리곤 부자의 옷자락과 머리칼을 흩날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마주 보지 않았다. 그들은 어둠에 잠식당한 계곡을 응시한 채, 할 말만 하곤 입을 굳게 닫았다. 사실 천수는 아들이 동굴에 갇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아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평생을 쫓기는 신세로 산다는 것 자체를 천수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니 머지않아 면천이 될 것이기에 천수는 때를 기다리고 있음이었다. 천수는 기한이 되면 면천을 시켜주겠다는 장주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오랜 세월 동안 간과 쓸개까지 빼놓고 목숨을 걸고 충성을 바쳤다. 대략 일각 정도 흘렀을 것이다. 천수는 들고 있던 ..

검투사의 아들 20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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