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의 아들

검투사의 아들 12

썬라이즈 2021. 10. 7. 07:15
728x90
반응형

지하 바닥에 내려선 순간,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원세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그렇지만 이내 흐릿한 지하 전경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앞으로 쭉 뻗은 통로는 2장 넓이였고, 통로 양쪽으로는 굵은 쇠창살로 가로막힌 감옥이었다. 이미 산 사람은 없을 것이란 말을 들었기에 감옥 안은 사실상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제발...”

감옥에서 눈길을 뗀 원세는 솜방망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횃불은 점점 꺼져 갔다. 겨우 흐릿하게 드러난 1장 반경 내의 사물들만 알아볼 수가 있었다. 앞쪽을 살펴본 원세가 이번엔 조심스럽게 돌아서서 계단 옆쪽과 뒤쪽을 살폈다. 그때 원세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 솜방망이,”

감옥에서 우측으로 제법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엔 비록 부서지긴 했지만, 책상과 나무 의자가 놓여있었다. 기둥엔 두 개의 솜방망이가 꽂혀있었고 그 옆으론 채찍과 밧줄이 걸려있었다. 긴 쇠몽둥이도 두 개나 세워져 있었다. 하나같이 죄인을 다룰 때 사용했을 물건들이었다.

원세는 볼 것도 없이 하나의 솜방망이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이미 기름이 다해 꺼진 솜방망이였다. 원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른 솜방망이에 꺼져 가는 횃불을 갖다 댔다. 다행스럽게 몇 번 부지직거리더니 솜방망이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불꽃이 시들한 것이 한 식경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를 어쩌지, 앞으로 한 식경이면 정말이지 암흑이 될 텐데, 저쪽 동굴엔 뭐가 있을까, 물소리도 나는 것 같고, 제기랄, 어쩔 수 없지 불이 있을 때 한번 살펴보자.”

감옥과 연결된 통로인지 동굴이 뚫려있었다.

원세는 살펴볼 요량으로 다가갔다.

휘이잉, 휘리링, 휘이이잉---

동굴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오싹한 한기가 들었다. 마음으론 무섭지 않다고 다짐했지만 이미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머리칼은 쭈뼛쭈뼛 곤두섰다.

원세는 횃불로 바닥을 살폈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동굴에서 흘러들어온 것 같았다.

멈칫멈칫 바닥으로 내려섰다.

철벅, 철벅,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썩은 물에서 심한 악취가 후각을 자극했다. 얼마나 심한지 구역질이 났다. 원세는 억지로 구역질을 참으며 앞으로만 걸어갔다. 그렇게 10장쯤 걸어가자 지하 감옥의 끝처럼 암벽이 나타났다. 그러나 거기엔 음산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좁아진 동굴이 우측으로 꺾여있었다. 고개를 숙이면 들어갈 수 있는 높이였다.

, , ...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입을 쩍 벌린 동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음산한 바람도 동굴에서 불어온 바람이었다. 원세는 귀를 쫑긋거리며 동굴 속을 응시했다.

안엔 뭐가 있을까, 혹시? 아니야 나가는 통로는 아닐 거야, 그래도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먹을 물이,”

잠시 망설였던 원세가 결심을 한 듯 동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몽둥이를 든 오른손엔 힘이 잔뜩 들어갔다.

동굴로 들어서자 밖에서 느끼지 못했던 한기가 엄습했다. 동굴은 구불구불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한기가 춥게 느껴졌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점점 크게 들렸다. 그리고 머리칼이 날릴 정도로 바람이 불어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횃불도 심하게 흔들거렸다.

우웅—휘잉--

푸시시식-

꺼지면 안~~ 제기랄, -”

대략 7장쯤 들어갔을 때였다. 난데없이 바람이 세게 불어왔고, 원세가 소리쳤을 땐 횃불은 이미 꺼진 뒤였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칠흑의 어둠이 몰려왔다.

이젠 어떻게 하지, 괜히 동굴엔 들어와선, 아니지, 어차피 횃불은 한 식경이면 꺼질 불이었어,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자,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극복해야 살아나갈--”

다소 거칠어진 숨소리가 어둠 속을 맴돌았다.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다. 내가 누구냐! 난 원세다. 으, 정신부터 똑바로 차리자. 아버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자포자기는 절대로 안 되겠지요. 압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따위 일에 겁먹을 원세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아버지!”

원세는 엄습하는 두려움에 심하게 진저리를 쳐댔다. 아무리 무섭지 않다고 자신을 독려해도 몰려드는 공포는 어쩔 수가 없었다. 원세의 혼잣말 소리가 뚝 끊기자 정적이 몰려왔다. 아니, 정적을 뚫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그렇게 시간은 정지한 듯 흘러갔다.

아무래도 물 떨어지는 곳까진 가봐야겠지, 먹을 물이라도 있다면 걱정이 없겠는데, , 그런데 무슨 물이 이렇게 차갑지, 발이 다 얼겠네.”

잠시 가만히 서 있던 원세가 씨부렁거렸다.

발목까지 차오른 물은 시리다 못해 다리의 감각마저 잃을 정도로 차가웠다.

이런 다리가 이얏, 이야야얏! 으으---”

원세는 마비가 된 다리를 움직이려고 기를 썼다.

그러나 마비된 다리는 맘처럼 움직여 주질 않았다.

오히려 통증만 몰려왔다.

철퍼덕-

아아, , 더럽게 아프군. 으 으

원세는 이빨을 꽉 깨물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리곤 다리를 주물러댔다. 쥐가 났는지 딱딱해진 종아리가 땅기고 허리까지 끊어질 듯 아팠다.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얼마 동안이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팔이 아플 때까지 주무르고 또 주물렀으니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갔을 것이다. 그렇게 다리를 주무르고 있자니 공포감도 사라졌다.

, , 이제야 살 것 같다. 괜히 겁부터 먹었잖아, 물소리가 나는 걸 보면 먹을 물은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배 채울 것만 있다면 이따위 어둠쯤이야,”

원세의 입에서 안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철벙철벙, 철벙철벙, 철벙,

몽둥이를 집어 든 원세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곤 동굴 벽을 의지해 물 떨어지는 곳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 속, 철벙거리는 소리만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계속

728x90
반응형

'검투사의 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투사의 아들 14  (2) 2021.10.14
검투사의 아들 13  (6) 2021.10.10
검투사의 아들 11  (2) 2021.10.04
검투사의 아들 10  (2) 2021.10.01
검투사의 아들 9  (2) 2021.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