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의 아들

검투사의 아들 10

썬라이즈 2021. 10. 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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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국군의 날

그 시각이었다.

중식을 먹고 난 제갈 영웅은 어른들이 접견실로 향할 때 탕약 냄새가 나는 별당으로 향했다. 아담한 별당 앞엔 여랑의 거처임을 말해주듯 막 피기 시작한 버들 매화가 하나둘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꽃은 작고 앙증맞았다. 마치 여랑을 닮은 듯 화사하고 예뻤다.

텁석부리 사나이는 신기한 듯 매화꽃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생김새로 보면 매화꽃에 매료될 사나이로 보이진 않았다.

제갈영웅은 별당 앞에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과 얘길 나누고 있었다. 한 번씩 인상을 쓰는 것으로 보아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모! 그러지 말고 아가씨를 한 번만 만나게 해 주게,”,”

공자님! 몇 번을 말씀드려야 돌아가시겠어요. 아가씨는 지금 몸이 불편하십니다. 정말입니다.”

유모! 정말 이러기야, 나와 아가씨는 정혼할 사이야!”

공자님!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그러니 아가씨께서 몸을 추스른 다음에 찾아오세요. 그러시는 것이 아가씨 마음을 편케 해 드리는 거예요.”

그럼 좋아, 한 가지만 묻지, 원세 그놈이 동굴 감옥에 갇혔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대인께서 잘못도 없는 원세에게, 암튼 몰라요. 우리 원세만 불쌍하게 됐지요. 말이 백일이지 대인께서 아예 굶겨 죽일 작정을 하셨나 봐요.”

여인은 속으로만 끙끙거렸던 속상한 마음을 털어놨다.

뭐라! 그게 정말인가?”

영웅의 얼굴은 놀람보다는 아주 잘 됐다는 표정이었다.

저도 잘 몰라요. 그러니 그만 돌아가세요.”

낄낄- 그랬단 말이지, 유모! 오늘은 일단 돌아가지, 하지만 유모! 다음엔 아가씨를 꼭 만나게 해줘야 하네. 알겠나?”

만면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영웅은 음흉한 눈빛으로 유모를 직시했다가 돌아섰다.

흑표! 돌아가자!”

예 공자님!”

두 사나이가 돌아가자, 못마땅한 표정의 유모는 주둥이를 탁탁 치며 별당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고급스러운 가구와 문갑이 놓여있는 방이었다.

방안, 분홍색 휘장이 쳐진 침대엔 여랑이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유모가 들어가자 여랑이 창백해 보이는 얼굴을 휘장 밖으로 쏙 내밀었다. 울고 있었는지 촉촉이 젖은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다.

유모! 공자는 돌아갔나요?”

예 아가씨!”

원세 소식은?”

아가씨, 이제 하룬데 무슨 소식이 있겠어요.”

그렇지만, 그 덩치에 건량으로 무슨 끼니가 되겠어요. 정말 속상해 죽겠어요. 이게 다 내 잘못이에요. 이젠 어떻게 하지 유모! 원세가 잘못되면 난 못살아,”

침대에 걸터앉은 여랑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여랑에겐 어려서부터 친구가 없었다. 말을 배울 때부터 말동무라면 유모가 유일한 말동무였다. 그러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원세가 종이 되었다. 그때 꼬마 아가씨였던 여랑은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었다. 방안에만 갇혀 살다시피 한 꼬마 아가씨였으니 마음이 어땠을지 이해가 되었다.

여랑은 원세를 종이 아닌 동무처럼 오빠처럼 좋아했다. 그렇게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갔고 이성에 눈을 뜨면서부터는 야릇한 감정까지 싹텄다. 그리고 오늘날엔 얼굴만 못 봐도 걱정이 앞섰고 마음도 아팠다.

그랬던 여랑이었다.

그런데 원세가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오르는 걸 지켜봤다. 가슴이 미어졌고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 자신이 왜 이렇게 슬픈지, 어떤 감정인지, 그것이 사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자책감이 들었고 마음이 아팠고 슬퍼서 울었었다.

여랑은 밤새도록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흐느꼈고 아직도 원세 생각뿐이었다. 여랑은 태어날 때부터 미숙아처럼 허약했으므로 의원 조사의 손에 맡겨졌고, 오늘날까지 탕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진충원은 부인이 고대하던 아들이 아닌 딸을 낳자 실망이 컸었다. 게다가 칠일 만에 어미를 잡아먹은 딸이라 성질대로 했다면 딸을 내다 버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부덕한 탓이라며 눈물로 당부한 부인의 간절한 유언을 저버릴 수는 없었음이었다.

부디, 우리 불쌍한 딸을 잘 보살펴 주세요.’

진충원은 부인의 유언에 따라 딸을 살리기 위해 유명하다는 의원들을 불러들였고, 조사의에게 여랑을 맡겼다.

천형이라는 원음 지체로 태어난 여랑,

진충원은 조사의로부터

아기씨는 원음 지체로 태어났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었다.

게다가

건강을 회복하게 되면 무공은 물론이고, 머리까지 비상하여 일세를 풍미할 여장부가 될 것입니다.’

라는 말에도 화를 냈었다.

하지만 조사의의

자신이 한 말에 목을 내놓겠습니다.’

라는 말에 딸에 대한 냉랭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그때 진충원은 결심했다.

아들 대신 여랑에게 학문과 무공을 가르쳐 대를 잇게 하겠다고, 그 모든 책임을 조사의에게 맡겼다. 여랑이 말을 배우기 시작한 세 살 때부터는 학자인 훈장을 초빙해 글을 가르치게 했다. 여랑은 조사의 말대로 학문이 날로 일취월장했다. 여랑이 13세가 되었을 땐 학자인 훈장을 능가할 정도로 학문을 깨우치게 되었다. 몸도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어험, 유모! 탕약을 들여가겠소!”

약탕기를 받쳐 든 노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나이는 60세쯤으로 보였고 반백에 보기 좋게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할아범, 오늘은 먹고 싶지 않은데---”

아니에요. 어서 들이세요.”

여랑의 힘없는 목소리에 이어 유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의원 조사의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가씨! 내일부터는 저녁에만 드시면 됩니다. 하루에 한 번 잡수시는 것도 못 한다면 안 됩니다.”

정말이에요. 할아범!”

예 아가씨!”

그동안 세끼 먹는 게 정말이지 고역이었어요.”

소인이라도 아가씨처럼은 못 먹었을 겁니다. 장하십니다. 아가씨!”

이게 다 할아범 정성 때문이에요. 이렇게 건강해졌고요. 그런데 할아범! 원세 소식은... 원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랑의 다소 밝았던 표정이 다시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가씨! 원세 그놈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이 늙은이가 장담하는데 원세는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정말이지요. 할아범!”

언제 허언(虛言)을 한 적이 있습니까. 아가씨!”

알았어요. 할아범 말이라면 다 믿어요.”

그러니 아가씨! 앞으로 이 년만 참으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숙녀가 되실 겁니다. 그뿐입니까, 남들이 다 우러러보는 여장부가 되실 거고, 그렇게 되면 원세가 제일 좋아할 겁니다.”

할아범, 원세가 좋아하는 건 좋지만, 난 여장부가 되는 건 싫어요. 그래도 아름다운 숙녀가 된다니 기분은 좋아요.”

호호호- 아가씨도 참...”

허허허-”

내가, 호호--”

우울해 보였던 방안이 웃음소리로 한결 밝아졌고 입을 가리고 웃는 여랑의 도화(桃花) 빛(桃花) 얼굴도 무척이나 예뻐 보였다. 그러나 여랑의 눈빛은 어미를 잃은 노루 새끼의 처연(悽然)한 눈빛이었고, 웃음 뒤엔 이별의 아픔이 감춰져 있었다.

이렇듯 여랑은 이별 연습 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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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국군의 날입니다.

안보가 무너지면 아이들 미래도 없습니다.

국방력이 튼튼해야 나라의 미래가 있습니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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