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의 아들

검투사의 아들 3

썬라이즈 2021. 9. 1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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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리링-- 휘이이힝---

계곡을 훑고 올라온 바람이 절벽에 부닥쳐 음산한 귀곡성을 질러댔다. 그리곤 부자의 옷자락과 머리칼을 흩날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마주 보지 않았다. 그들은 어둠에 잠식당한 계곡을 응시한 채, 할 말만 하곤 입을 굳게 닫았다.

사실 천수는 아들이 동굴에 갇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아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평생을 쫓기는 신세로 산다는 것 자체를 천수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니 머지않아 면천이 될 것이기에 천수는 때를 기다리고 있음이었다.

천수는 기한이 되면 면천을 시켜주겠다는 장주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오랜 세월 동안 간과 쓸개까지 빼놓고 목숨을 걸고 충성을 바쳤다.

대략 일각 정도 흘렀을 것이다.

천수는 들고 있던 검병을 굳게 잡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5장쯤 떨어진 절벽 중앙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10장쯤 떨어진 우측 절벽 위, 어둠에 동화된 검은 인영(人影)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번뜩이는 눈빛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클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그래 명을 어길 놈은 아니지, 암튼 놈은 짐승 같은 놈이다. 놈이 냄새를 맡으면 좋을 게 없지, 이만 돌아가자!’

순간,

날카롭게 눈을 번뜩였던 인영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흐흐, 장주가 미행을 시킨 걸 보면 무슨 꿍꿍이가?’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는 듯, 천수는 인영이 사라진 곳을 날카롭게 훑어봤다. 그만큼 천수의 무위가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차례 눈에 힘을 주었던 천수는 잠시 아들을 직시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원세야! 이곳이 감옥 입 구니라!! 잘 봐 두거라!”

크르릉크릉- 크르릉-

컹컹, 컹컹- 후다닥-

푸드덕,-

천수는 아들 키만큼 높이에 불룩 튀어나온 물체를 꾹 눌렀다. 그러자 밤의 정적을 깨우는 기음(奇音)이 고막을 때렸다. 단잠을 깬 들짐승들이 놀라 울었고 산새들이 밤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한발 물러서거라!”

, 으왝-”

절벽이 아가리를 벌리듯 열린 순간이었다.

비린내와 악취가 몰려나왔다.

숨이 턱 막혔고 구역질이 났다.

이런 곳에서 백일이라니, 장주! 장주의 여식이 귀하듯 내 아들도 귀합니다. 이번 처사는 심하셨음을 아셔야 하오. 흐흐, 은혜를 입었고 약속을 했으니 대장부로서 참는 것이오. 장주께서도 약속을 꼭 지키시길 빌겠소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는 동굴,

그 속을 직시한 천수의 눈에서 번갯불처럼 강렬한 빛이 쏘아졌다가 사라졌다.

아버지의 심기가---’

원세는 별안간 아버지의 몸에서 뿜어진 살기(殺氣)에 오싹함을 느꼈다. 지금처럼 아버지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거나 살기를 느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원세는 자신도 모르게 더럭 겁났다. 그렇더라도 동굴 앞에 태산처럼 버티고 선 아버지는 원세의 든든한 후원자요, 자상한 아버지였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동굴,

천수는 거침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갔고 원세는 그 뒤를 조심조심 따라 들어갔다. 대략 3장쯤 들어갔을 때였다. 부싯돌 소리에 이어 횃불이 밝혀졌다.

아버지, 여기가 지하 감옥입니까?”

아니다. 더 들어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을 것이다. 그 아래가 감옥이다. 너는 이곳에서 머물 거라! 절대 지하 감옥은 내려가지 마라, 알겠느냐? 그리고 명심해라! 이곳엔 먹을 물도 식량도 없다. 가져온 칠일 치 물과 건량으로 백일을 버텨야 한다.”

천수는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차갑게 말했다.

아버지, 백일 간이라면,”

큰소리칠 땐 언제고 겁이 나느냐? 대장부는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고로 어떤 경우든 말을 할 땐, 한마디라도 허튼소리를 내뱉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말씀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고 있습니다.”

좋다. 아버진 네가 백일이 아니라 그 이상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심법 요결(心法要結)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수련을 게을리 말거라! 그럼, 난 가겠다.”

천수는 암벽에 횃불을 꽂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을 나섰다. 원세는 무슨 말이던 하고 싶었지만, 입이 얼어붙은 듯 떨어지질 않았다. 단지 아버지가 사라져 간 입구를 노려볼 뿐이었다.

크르릉- 크릉- 크르릉---

동굴이 닫히는 음산한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렇게 입구를 닫고 돌아서는 천수가 눈시울을 훔쳤다. 자식을 사지에 가두고 나온 아버지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었다.

우우- 우우우--

천수의 마음을 아는 듯 늑대가 구슬피 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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