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의 아들

검투사의 아들 5

썬라이즈 2021. 9. 1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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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이었다.

우웅- 우우웅---

한 번씩 지하 감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원세는 굳게 닫힌 동굴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적어도 반 시진은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었다.

세상에 아들을 사지에 가두는 아버지도 있을까,

원세의 얼굴이 흔들거리는 횃불에 드러났다.

부릅뜬 두 눈은 충혈이 되었고, 일그러진 얼굴은 보기조차 딱했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한다거나 미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일그러진 얼굴엔 굳은 의지가 어렸고 눈에선 독기까지 흘렀다.

아버지! 아버지의 어깨와 등은 그 누구도 넘지 못할 태산 같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작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 또한 못난 자식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자는 아버지 말씀대로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겁니다. 백일이 아니라 일 년, 아니 십 년이라도 버틸 수 있습니다. 꼭 건강한 몸으로 살아서 나가겠습니다. 부디 강녕(康寧)하십시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님께도 걱정하지 마시라고 꼭 전해 주십시오.”

원세는 굳게 닫힌 입구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두 눈에선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실 원세는 어려서부터 좋은 일보다는 험하고 사나운 꼴들만 보면서 자랐다. 특히 또래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까지도 놀림과 멸시를 당했다. 그렇다고 그들과 대적하거나 말싸움을 벌인 적은 없었다. 가능한 한 피해 다녔고, 바보처럼 묵묵히 당하고만 살았다.

어떤 일을 당하든 참아라!’

원세는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었지만, 이를 지켜봤을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도 부모님은 자책감에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가슴은 아들이 당할 때마다 갈가리 찢어졌을 것이다. 지금도 부모님의 아물지 않은 상처에선 피가 흘러넘치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종놈이란 딱지를 붙이고 살던 원세에게도 희망이란 것이 생겼다. 상전인 여랑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랑은 비록 상전이긴 했지만, 원세에게는 좋은 친구가 돼줬고 없던 용기와 꿈을 갖게 했다.

 

진여랑, 장주인 진충원의 무남독녀로서 원세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던 날 새벽에 태어났다. 그날은 여느 날보다도 샛별이 유독 반짝거렸던 날이었다.

여랑의 어머니는 딸인 여랑을 낳고 칠일 만에 죽었다.

여랑은 천형(天刑)의 몸으로 태어나 얼마 못 살고 죽을 것이라 했다. 아들일 것이라 기대했던 장주인 진충원은 크게 낙심한 나머지 핏덩일 내다 버릴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부인의 간곡한 유언대로 딸을 살리기로 했다. 진충원은 유명하다는 의원들을 불러들여 아기를 고칠 수 있는지 물었다.

아기씨는 원음 지체(元陰肢體)입니다.’(元陰肢體)입니다.’

초빙된 의원 중에 화타 버금간다는 조사의란 의원이 진충원에게 한 말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진충원은 너무 놀란 나머지 허튼소릴 한다고 의원인 조사의를 죽이려고까지 했었다.

아기씨의 병은 고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힌 진충원은 조사의의 설명을 듣고서야 안심을 했다. 그리곤 딸의 건강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의에게 맡겼다. 그때부터 진충원은 조사의 말에 따라 몸에 좋다는 약초를 구해 딸에게 먹이게 했다. 딸이 건강하게 자랄 수만 있다면 진충원은 못할 일이 없었다.

원세가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원세는 장주의 명에 의해 여랑의 종이 되었고, 그때부터 여랑을 상전으로 모셨다. 아니 동생처럼 아끼며 최선을 다해 돌봤다. 엄마도 없는 여랑이가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원세의 나이 10살 때였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장마가 길었고 무더웠다. 장마가 끝나자 집안에만 갇혀있던 여랑이 갑갑하다며 산으로 놀러 가자고 했었다. 원세는 여랑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

우린 정말 좋은 친구다.’

~, 그럼 좋은 친구지,’

우린 앞으로도 변치 않는 좋은 친구다. 그렇지,’

~ , 변치 않는 좋은 친구지, 여~~ 랑,’

여랑은 별안간 정색하곤 친구란 말을 반복했다. 원세는 여랑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랬는지 가슴은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었다. 너무 기뻐서 펄쩍펄쩍 뛰고도 싶었다. 하지만 대답은 좋다고 했어도 기쁜 표정도 내색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종의 본분이었으니까, 아마도 그때는 여랑도 진심이었을 것이었다. 지금도 친구지만---

 

, 무섭긴 무섭네. 그래 한 달 치 건량이지만 아껴 먹으면 된다. 어떻게든 백일은 버텨야 한다. 제길, 물도 없이 백일을 어떻게 견뎌, 그런데 왜 이렇게 졸리지,”

동굴 입구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원세가 비틀거리며 돌아서선 안쪽을 쳐다봤다.

~ 우웅~ ~~~

안쪽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으스스, 두려움과 공포감이 엄습했다.

, 고원세다. 이따위 일에 겁을 먹다니,”

원세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아버지가 내려놓고 간 보퉁이를 집어 들곤 안쪽을 노려봤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켠 원세는 동굴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닥은 울퉁불퉁했고, 인골로 추정되는 뼈들이 널려있었다. 그 어디에도 잠잘만한 곳은 없었다.

우웅- 우우웅---

음산한 바람 소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원세는 눈에 힘을 주곤 재차 안쪽을 노려봤다.

저건 또 뭐지...”

대략 6장쯤 떨어진 곳이었다. 흐릿했지만 커다란 나무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원세는 볼 것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이었다. 원래부터 없었는지 뚜껑이 없는 상자가 평평한 바위 위에 놓여있었다.

비틀거리며 다가간 원세는 상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평평한 바위로 올라갔다. 그리곤 될 대로 되라는 듯 상자 옆에 대자로 누웠다. 아무리 강심장인 무인이라도 감옥인 동굴에 홀로 갇힌다면 공포감에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세는 녹초가 된 심신을 이기지 못하고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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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랑이 나라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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