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원세와 괴인은 2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앉은 상태로 꿈쩍 않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갔을까, 원세의 산발한 머리칼 사이로 살짝 드러난 눈꺼풀이 파르르 떨었다. 운공도 운공이지만 정신력의 한계에 달했는지, 원세는 주화입마와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이놈! 뭘 꾸물거리느냐? 냉큼 일어서거라!”
별안간 암동이 들썩거렸다.
“윽, 누구지?”
원세가 답답한 신음을 흐리곤 눈을 번쩍 뜸과 동시 벌떡 일어섰다.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꿈에 볼까 무서운 괴인의 모습이었다. 원세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원세가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누구?”
“킬킬킬- 이놈!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왔느냐?”
괴인의 머리칼 사이로 형형한 눈빛이 쏘아져 나왔다.
“저~ 그게---”
한차례 진저리 치듯 몸을 떤 원세는 겁먹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으나 말을 잇지는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주화입마에 빠지듯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 순간에 자신을 일깨운 장본인이 괴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흐흐, 몇 년 만에 말동무를 만난 겐가, 어린놈답지 않게 강단이 있는 놈이로군. 정순한 기운도 제법 갈무리가 되었고, 으음, 어허, 알 수 없는 기운까지, 그놈 참 별종이군 그래, 흐흐 잘하면 한을 풀 수도---’
사실 괴인은 원세가 동굴에 들어섰을 때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어느 놈이든 들어오기만 해라 당장에 죽여 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점점 다가오는 인물이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그리고 비록 나이는 어리더라도 이런 곳에 갇힐 놈이라면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 괴인은 생각했고, 의혹과 궁금증에 몸이 달았었다. 그런 때에 나타난 놈이 원세였다.
생각대로 뭔가 특출한 아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그리고 원세가 운공하는 동안에도 계속 지켜만 봤다.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도움을 주었겠지만, 일단 탈이 없음을 인지하곤 운공을 마치길 기다렸다. 그런데 주화입마는 아니지만 깊은 잠에 빠진다면 위험할 수 있기에 깨운 것이었다.
“킬킬- 아직 솜털도 벗지 못한 놈이 이곳까지 들어온 걸 보니, 분명 사연이 있을 터, 이놈아! 솔직하게 이실직고를 한다면 살길을 일러 줄 것이다. 무슨 사연인지 이실직고해라!”
괴인의 목소린 엄하기가 그지없었다.
‘으으, 분명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곳에 갇히게 된 거지, 제길 살아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래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정신 바짝 차리자.’
원세는 지그시 이빨을 깨물었다.
그리곤 괴인을 찬찬히 훑어봤다.
산발한 백발로 인해 괴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볼 수도 없었고, 머리칼 사이로 뿜어지는 두 개의 형형한 눈빛은 감히 마주 발라볼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무릎 아래까지 덮인 백발 사이로 괴인의 발목이 드러났다. 드러난 발목엔 굵은 족쇄가 탄탄하게 채워져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채워져 있었는지 발목이 어린애 팔목처럼 가늘었다. 누군가 힘을 조금만 줘도 툭 하고 부러질 것처럼 보였다.
‘쇠사슬에 묶여 있잖아, 발목이- 불쌍한 할아버지네.’
원세는 쇠사슬에 묶여있는 괴인이 이젠 무섭지 않았다.
그냥 할아버지가 불쌍하게만 보였고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 발목은 안 아프세요.”
원세는 괴인의 물음엔 답하지 않고 천천히 괴인 앞으로 다가가며 잔뜩 겁먹었던 인상을 폈다.
“이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이곳에 갇히게 된 사연을 이실직고하라고 했거늘,”
“할아버지, 제 얘기는 천천히 해도 됩니다. 앞으로 백일, 아니 구십구일 동안 이곳에 남아있을 겁니다. 그러니 할아버지, 그 족쇄부터 풀어야...”
“허허 그놈 참, 이놈아! 이 족쇄를 풀 수 있었다면 벌써 풀었을 것이다. 아니지, 풀 수 있었다 해도 풀 수가 없느니라!”
엄엄(嚴嚴)하던 괴인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풀 수 있으면 그냥 풀면 되지,”
“이놈이, 그럴 수 없다면 그러려니 해야지, 말대꾸는,”
“그러면 할아버지, 할아버지 사연부터 이실직고, 아닙니다. 할아버지 사연부터 들어봐야겠습니다.”
“이런 쳐 죽일 놈이, 늙은일, 허허허---”
괴인의 입에서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 만에 웃어보는 웃음인가,
아마도 20년은 넘었을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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