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귀 아파요.”
얼마나 웃음소리가 컸던지, 원세는 귀를 틀어막았다.
“흐흐... 이리 가까이 앉거라!”
“왜요?”
“이놈이 겁을 다 내네.”
“겁내긴 누가 겁냈다고 그래요. 자요. 왜요?”
원세는 주춤거리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괴인 맞은편에 앉았다.
“손을 내거라!”
“자요.”
원세는 퉁명스럽게 말하곤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겁이 났는지 내미는 손이 잔잔하게 떨었다.
“으음, 제법 탄탄히 다져졌군. 어느 놈인지 제자 하나는 잘 뒀어, 그런데 이 기운은 뭐지? 아니야, 기혈 따라 흐르는 기운 때문인가? 허허, 이젠 늙었음이야, 됐다. 이놈아!”
한참 동안 진맥을 짚어본 괴인은 냅다 손을 뿌리쳤다.
“그런데 할아버지! 역정은 왜 내세요?”
약간 짜증 섞인 원세의 목소린 제법 당당했다.
“이놈아! 맘에 들지 않아서 그랬다. 알겠냐?”
“그렇게 멋대로 하시니까, 이런 곳에 갇히시지,”
“뭐라! 이놈이 못하는 말이 없네. 볼기 좀 맞아볼래,”
꼬르륵, 꼬륵, 꼬르륵,
그때 원세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히히- 됐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배가 고픈데요.”
“뭐! 배가 고파!”
화가 났는지 괴인의 눈에서 안광이 뿜어졌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괴인의 입은 재미있다는 듯 헤벌쭉 벌어져 있었다.
“제길, 나가서 건량이라도 가져올까,”
원세는 괴인의 눈을 피하곤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아무 말이 없지, 그럼 그렇지 이런 곳에 무슨 먹을 게 있겠어, 물이라도 먹었으면, 샘물은 깨끗할 것 같기는 한데, 먹어도 되겠지, 정말 깨끗하네.’
괴인의 등 뒤를 슬쩍 건너다본 원세는 눈치를 살폈다.
“이놈아! 눈치 볼 것 없다. 물이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된다. 배가 고프면 만빙어(萬氷魚)를 잡아먹어도 되고,”
괴인의 두 눈은 지긋이 감겨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했다.
원세가 흠칫했다.
‘내가 물 먹고 싶다는 건 어떻게 알았대, 도사 할아버진가? 이런 곳에 갇힌 걸 보면 무서운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에이 모르겠다.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났겠지, 우선 물부터 먹고,’
원세는 슬금슬금 샘으로 다가갔다. 샘에 가까이 갈수록 으스스 한기가 느껴졌다. 그동안 단련이 됐는지 그리 춥지는 않았다. 샘물을 바라보던 원세의 눈에 이채가 발해졌다.
“아니, 저건 물고기네. 아! 만빙어가 저건가?”
원세는 샘 앞에 바짝 다가앉아 물속을 들여다봤다. 정말이지 작은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푸른빛을 띠고는 있었으나 투명해 뼈와 내장까지 다 보였다. 그런 물고기들은 물 위로 떠 올라서 신나게 헤엄을 치다가도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앗, 차가워! 무슨 물이 이렇게 차갑지?”
물속에 양손을 넣었던 원세가 질겁하며 손을 꺼냈다.
“할아버지! 무슨 그릇 같은 것은 없어요?”
원세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스럽게 말했다.
못 들었을 리가 없는 괴인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이놈아! 귀찮다. 그나저나 저놈의 신세 내력을 알아야, 으음, 무슨 조치를 해도 취할 텐데 여간내기가 아니니, 순순히 말을 들어줄까?’
괴인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원세를 생각하고 있었다.
“제기랄,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랬다고, 물인데 손이 얼기야 하겠어,”
용기를 낸 원세는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물에 담갔다. 정말이지 얼어버릴 것처럼 물은 차가웠다. 등줄기가 서늘했고, 손은 마비가 된 듯 감각마저 둔해졌다. 하지만 원세는 양손을 오므려 물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목은 물론이고 창자까지 냉동이 된 듯 감각 없이 얼얼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별안간 찬물을 마셨더니 머리까지 어질어질했다.
원세는 별안간 어지럼증이 나자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에 들어갔다.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해주는 운공이라 운공이 끝나면 어지럼증도 사라질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밖은 이미 밤이었다.
암동을 밝히던 빛도 점점 사라지더니 희미한 사물의 형체만 보일 정도로 어두워졌다. 까마득한 암동 천장엔 하나둘 별들이 걸렸다. 그래도 하늘을 볼 수 있으니, 원세에겐 이 같은 행운이 따로 없을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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