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닥, 따가닥,
원세가 한창 운공에 빠져있을 즈음, 일단의 인물들이 아침 햇살을 뒤로하고 장원을 떠나고 있었다. 그들은 제갈왕민 일행이었고 배웅한 인물들은 진충원을 비롯해 쌍노와 호위무사들이었다.
제갈왕민 일행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진충원이 돌아서며 쌍노에게 일갈했다.
“쌍노! 준비를 시켜라!”
“예, 주인님! 너희들은 나를 따라라!”
진충원은 뒷짐을 하곤 천천히 마방 쪽으로 걸어갔고, 천수를 비롯한 호위무사들은 쌍노를 따라 장원으로 들어갔다.
대략 반 시진쯤 흘렀을 것이다. 대청 앞에 천수를 비롯해 호위무사 20여 명이 정렬해 서 있었다. 그들은 작은 봇짐을 메고 있었고, 일견해도 멀리 길을 떠날 차림새였다. 그런데 풍객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았다.”
문이 열리고, 진충원이 밖으로 나와 눈에 불을 켰다.
“에, 쌍노로부터 자세한 얘기는 들었을 것이다. 이번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앞으로 60일간의 말미를 줄 것이다. 중원 천하 방방곡곡을 뒤져서라도 대도였던 묘 신수의 딸을 꼭 찾아서 데려오라! 부득이 도움이 필요할 땐 전서구를 띄워라. 즉시 사람을 보낼 것이다. 명심하라! 임무를 완수한 자에겐 크게 보상할 것이나, 임무를 소홀히 한 자에겐 그만한 벌을 내릴 것이다. 알겠느냐!”
복명! 복명!!!
“넵, 대인!”
“좋다. 그럼 즉시 떠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사들이 분분히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그렇게 장원을 떠나는 무사들 표정은 뭐 밟은 얼굴에 그야말로 배설물을 마신 표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이 60일이지, 중원 전역을 뒤져서라도 대도의 딸을 찾아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중원 전역을 뒤지려면 적어도 1년, 아니 그 상이 걸려도 부족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장원에 무사들이 알아서는 안 될, 그것도 60일간 자리를 비워야 할 무슨 꿍꿍이가 있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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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별당, 봄 햇살이 가득한 뜰에 두 여인이 매화꽃을 바라보며 얘길 나누고 있었다. 매화꽃은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방긋이 웃는다. 두 여인의 근심을 달래려는 듯 활짝 핀 매화꽃이 마치 웃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머니, 아저씨까지 길을 떠나셔서 어떻게 해요.”
“저는 괜찮아요. 고생할 원세가 걱정이지만,”
“원세는 무사할 거예요. 심기를 굳건히 하세요.”
“고마워요. 아가씨, 그런데 아가씨, 그동안은 정말 죄송하고 미안했어요. 괜히 아가씨만 미워했어요.”
“아, 아니에요. 내가 원세에게 너무했지요. 시도 때도 없이 원세를 들들 볶았으니까 말이에요.”
“실은 아가씨가 정말 미웠던 건 아니에요. 아가씨께서 우리 원세에게 얼마나 잘 대해 주셨는데, 하지만 우리 원세가 혼이 나거나 벌을 받을 땐 정말이지 어미로서 속상했거든요. 또 아가씨 때문에 벌을 받는구나 하고...”
“죄송해요. 아주머니, 아버지가 너무 심하셨어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아버지께 꼭 말씀을 드려서 하루라도 빨리 원세를 데려오게 할게요.”
“정말이지요. 아가씨! 고마워요. 주인 어르신께서도 아가씨의 부탁이라면 들어주실 거예요.”
여랑은 마음이 아팠다.
원세를 데려오게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여랑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딸인 자신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결정은 확고부동했다. 딸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었다면 울며불며 매달리는 딸 앞에서, 그것도 백일동안 동굴에 가두라는 명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고 씨 부인은 한 가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별당을 찾았다. 여랑이라면 원세를 구해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아니, 답답한 심정조차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믿고 말할 수 있는 여랑을 찾아온 터였다. 하지만 이내 공연한 짓거리를 했다고 후해(後害)를 했다.
“아가씨, 공연한 소리를 했나 봐요. 죄송해요. 저는 이만 돌아갈게요. 아가씨! 몸조리 잘하세요.”
“아주머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원세도 무사할 거고, 아저씨도 무사히 돌아오실 거예요.”
“고마워요. 아가씨, 우리 원세를 좋아해 주셔서...”
울컥 설움이 복받치자 눈물을 글썽이는 부인이었다.
“아주머니,”
부인의 손을 잡은 여랑도 눈물을 글썽였다.
‘아가씨를 찾아오는 게 아닌데, 내가 어쩌자고 몸도 불편하신 아가씨를 죄송해요. 어미가 되다 보니 으흑흑...’...’
별당을 나서는 고씨 부인의 가슴은 미어졌다.
‘고 씨 댁,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원세는 쉽게 죽을 놈이 아닐세. 그나저나 천수, 그 사람 심적 고통이 클 것이야, 별 탈은 없어야겠는데,’
뒤뜰에 나와 있던 조사의는 진즉부터 두 여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렇다고 나서서 원세가 무사할 거라는 말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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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이었다.
어둠에 휩싸였던 암동이 밝아져 있었다. 암동 바로 입구엔 머리를 풀어헤친 원세가 가부좌를 튼 자세로 가늘게 숨을 내쉬고 있었고, 원세 등 뒤엔 헤엄쳐 건너온 물구덩이와 어둠에 묻힌 칠흑 같은 동굴이 이어져 있었다.
똑,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정적을 깨웠다.
한눈에 드러난 암동 입구는 폭이 1장쯤 되었고, 암동은 폭이 4장이 넘는 원형 암동이었다. 그리고 빛이 들어오는 곳은 암동 천장이었는데 이럴 수가, 천장 높이 2장쯤에서부터 폭 1장으로 까마득한 밖까지 원통으로 뚫려있었다. 지금이 낮이라 빛이 들어오고 있었음이었다.
그런데 놀랄 일은 또 있었다.
세상에 인간 같지도 않은 괴인이 암동 안쪽에서 입구를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보기에도 끔찍한 괴인은 아랫도리만 가린 상태였고, 가부좌를 튼 발목엔 굵은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족쇄와 연결된 쇠사슬은 암벽에 깊게 박혀있었다.
얼마 동안이나 갇혀있었을까, 치렁치렁한 백발은 산발해 무릎 아래까지 덮었고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눈은 굳게 감겨있었다. 원세가 들어왔는데도 모르는 듯 석상처럼 미동도 없었던 괴인이었다.
똑,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괴인이 앉아있는 뒤편에서 들려왔다. 거기엔 폭이 4척쯤 되는 작은 샘이 있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석순에 매달렸던 물방울들이 샘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샘은 수정처럼 맑았으나 얼마나 깊은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다만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샘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추위가 느껴졌고, 물은 넘쳐서 인위적으로 파놓은 홈을 따라 원세가 건너온 동굴 웅덩이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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