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꼬르륵, 꼬륵,
물배만 채워서인지 꼬르륵 소리가 심하게 났다.
“제길, 전량을 가지러 가긴 정말 싫은데...”
“내 말만 듣는다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먹을 것을 주지,”
노인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됐습니다. 내 굶어 죽고 말지 사람은 안 죽입니다.”
“그래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썩을...”
“......”
‘저놈을 어떻게 해서든 제자로 삼아야 한다. 제자가 아니더라도 무공을 가르쳐 그놈만은 꼭 죽이게 해야 하는데, 음, 내 손으로 죽일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련주님, 보고 계십니까? 제 신세를 보십시오. 련주님의 엄명이 아니었다면 벌써,’
노인의 입에서 회한에 사무친 자조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에게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참, 불쌍한 할아버지네. 그런데 그동안 먹지도 않고 어떻게 버텼을까?’
노인을 생각하던 원세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할아버지가 그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은 분명히 근처에 먹을 것이 있다는 얘기였다. 원세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먹을 것을 주겠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근처에 먹을 것이 있을 텐데...”
“이놈! 지금 뭐라고 했느냐?”
노인이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아이고 깜짝이야, 소리는 왜 질러요. 귀청 떨어지겠네.”
“썩을 놈, 됐다 이놈아!”
노인은 호통치곤 눈을 꾸~욱~ 내리감았다.
‘흐흐... 먹을 것이 근처에 있을 거라고, 그놈 볼수록 맘에 든단 말이야, 어떻게 해서든 제자, 그래 어디 한번 찾아보아라! 먹을 것을 찾는다면 잡는 법을 가르쳐 주마, 킬킬...’
노인은 정말이지 원세가 대견해 죽을 지경이다.
어떻게 해서든 제자로 삼고는 싶지만, 그것이 만만치 않으니 다른 방법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핑핑 돌아가던 머리가 이젠 녹이 슬었는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아 답답할 뿐이었다.
‘히히- 분명 먹을 것이 있는데?’
원세는 노인이 놀라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이젠 먹을 것을 찾는 길만 남았다.
원세는 먼저 노인이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을 가늠해 봤다. 족쇄가 채워져 있기는 했으나 쇠사슬의 길이를 감안하면 충분히 서너 발짝씩은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먹을 것은 암동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원세는 눈에 불을 켜곤 암동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암동을 살피고 살폈지만 먹을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다른 동굴이 있나 암벽까지 샅샅이 더듬어가며 찾아봤다. 하지만 그 또한 헛수고였다. 천장에 별이 걸릴 때까지 찾았으니, 원세의 끈기는 알아줘야 했다. 적어도 암동을 수십 번은 돌았을 것이었다.
‘히히히, 으히히, 히히’
노인은 원세의 행동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미련한 놈, 멍청한 놈, 바보 같은 행동에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 내색도 못 하고 속으로만 히히거리다가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씨- 정말 있기는 한 건가?”
원세는 씩씩대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샘물로 다가갔다.
꿀꺽꿀꺽, 푸푸-
손이 얼거나 말거나 물을 떠서 꿀꺽꿀꺽 마시곤 얼굴까지 씻었다. 그제야 피곤이 급격히 몰려왔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한쪽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꺼풀은 자꾸만 내리 감겼다. 그런데도 까마득한 하늘엔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래도 근엄해 보였으나 어머니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억지로 웃어 보이는 어머니 얼굴을 대하자 가슴이 울컥거렸다.
여랑 아가씨의 슬퍼 보이는 얼굴도 떠올랐다. 언제나 친구 같은 상전, 알게 모르게 마음을 설레게 만든 여랑이었다. 운명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며 용기를 주었던 여랑이 오늘따라 슬퍼 보였다.
‘슬퍼하지 마세요.’
원세의 눈이 스스로 감겼다.
“이거 어쩌지, 보면 볼수록 놈이 탐나니 말이야, 깨어나거든 그냥 가르쳐 줄까, 아니지 그냥 가르쳐 줬다간 트집을 잡겠지, 뭐, 조건만 내세우지 않으면, 그래도 그냥 가르쳐 줄 순 없지, 놈이 찾는다면 그때는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지, 그래 암,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유도를 해야겠지,”
잠시 중얼거린 노인이 양손을 자연스럽게 편 상태로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이럴 수가, 노인의 몸이 한 자쯤 떠오르더니 천천히 돌아서 멈췄다. 그렇게 샘물과 마주한 노인이 이번엔 샘물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다가 끌어당겼다. 무형의 기운이 샘물에 닿았다가 끌어당겨진 순간이었다. 피라미 아니 만빙어 한 마리가 날아오듯 끌려와선 노인의 벌린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노인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앉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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