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았다.
두 필의 흑마가 객점 앞에 세워져 있었다. 객점에서 나온 천수와 국환이 굳게 손을 잡았다 놓으며 말에 올라탔다. 헤어지기가 섭섭했을까, 그들은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철인, 내 부탁 잊지 말게,”
“추객, 제수씨까지 내가 책임지지,”
“떽, 아무튼 몸조심하시게,”
“내 걱정은 말고 자네나, 아무튼 우리 두 달 후에 보세!”
“두 달 후에--- 이랴!”
“이랴!”
히히힝- 히히힝-
두 사람의 채찍질에 말이 앞발을 높이 들어다 놓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동서로 갈린 길을 말들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배웅하러 나왔던 점소이가 양쪽을 향해 번갈아 손을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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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이었다.
계곡의 암동, 정적과 어우러진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청아하게 암동을 울렸다. 언제 머리를 손질해 넘겼을까,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노소의 드러난 얼굴엔 진지함이 배어 있었다. 괴인이었던 노인의 얼굴은 주름살 하나 없는 동안(童顔)이었고, 옷은 벗은 거나 마찬가지였으나 마치 신선처럼 고고함이 배여 있었다.
“원세야, 정말 네게 사부가 없단 말이냐?”
“할아버진 속아만 살았어요. 사람 말을 못 믿게...”
“허허 사부가 없단 말이지 사부가, 사부가 있거나 말거나 뭔 상관인가, 제자를 두는 건 내 맘이지,”
“누구 맘대로 제자를 둬요.”
“이런 쥐방울만 한 놈이...”
“할아버지! 저는 말이에요. 사부 같은 건 필요 없거든요. 이곳에 있는 동안 그냥 할아버지로 모시긴 할게요.”
“이놈아! 할아버지니까, 네게 힘을 키워 준다는 것이 아니냐! 이 할아비에게 무공을 배우면 천하제일인이 될 게다. 알겠느냐!”
“저는 말이에요. 마음이 약해서 사람을 죽일 수도 없지만,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그 얘기는 더 하지 마세요.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원세는 정말이지 또박또박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사실이지 원세는 괴인 할아버지가 무섭기도 했었다. 그러나 무슨 죄를 지었는지 족쇄를 한 채 수십 년을 갇혀있었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움은 싹 가시고 되레 할아버지가 불쌍하기만 했다. 무슨 수가 있다면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가고 싶은 것이 원세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괴인은 원세가 운공을 마치자마자 붙들어 앉혀놓고는 신세 내력과 감옥에 갇히게 된 동기를 물었다. 원세는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이름과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말했다. 그렇지만 노예의 아들이며 한 소녀의 종이라는 것과 감옥에 갇히게 된 동기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냐는 질문엔 그것이 무공인지는 얼마 전에 알았지만, 아버지가 가르쳐 줬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때 노인은 천하제일 무공을 가르쳐 줄 테니, 딱 한 사람만 죽여 달라고 말했다. 원세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라서 대답했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얼마나 버티나...”
“참는 데는 이골이 났거든요. 할아버지가 아무리 애를 쓰셔도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얘기는 왜, 안 해주세요?”
“이놈아! 나도 얘기 못 한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어른이,”
“내 맘이다. 이놈아!”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고원세,
원세는 어려서부터 특출하긴 했었다.
태어난 지 백일 만에 엉금엉금 기어 다녔고,
돌 때는 걷는 것은 물론 말까지 했다.
그러나 주위로부터는
‘그놈 유별난 걸 보니 일찍 죽겠군.’
손가락질을 당했고, 심한 자들은 부모 잡아먹을 놈이라는 황당한 얘기까지 만들어냈었다.
고천수가 노예 신분이 아니었다면,
그들로부터 신동(神童)이라고 축하를 받았을 것이었다.
그때 진충원은 원세가 신동이란 소식을 듣고 크게 진노했었다. 자신의 딸은 죽은 목숨처럼 탕약으로 연명하는데 노예 자식인 원세는 튼튼할 뿐만 아니라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라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어린 원세를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을 철저히 숨겨야 했으니 속으로만 끙끙거릴밖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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