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심하게 흔들거렸던 물결이 잔잔해지자, 이번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주기적으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그때 사라졌던 만 빙어가 다시 나타났다. 물방울은 1장 높이의 석순에 맺혔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만빙어는 물방울이 일으키는 파장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원세는 잔뜩 벼르고 있다가 빠르게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만 빙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물결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또 허탕이었다. 그렇게 하길 백여 번, 역시 만빙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몇 번 물 위에 가만히 손을 대고 있다가 쳐올리기도 했지만, 그 역시 실패였다. 원세가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한기가 뿜어지는 샘 앞에서도 원세의 이마엔 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그물이라도 있다면 건져 올릴 텐데, 어떻게 잡지,”
특별한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봤으나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렇다고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달라고 말하긴 정말이지 싫었다. 할아버지가 찾기만 하면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으니, 가르쳐 달라고 말 만하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물고기도 못 잡는 못난 놈은 되고 싶지도 않았고, 꼭 잡아야겠다는 오기까지 생겼다.
암동이 서서히 어둠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원세는 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 위를 유영하는 만 빙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노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마도 노소는 누가 이기나 신경전을 벌이는 중일 것이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원세가 천천히 물속에 손을 넣었다. 뼛속까지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움이 손에 전해졌다. 그래도 원세는 손을 꺼내지 않았다. 파문이 일었던 물결이 잠잠해졌다. 그러자 잔잔한 물결이 일었고, 만빙어가 손바닥을 간질이며 유영을 했다. 그 순간, 만빙어를 채 올렸다. 그러나 손은 빈손이었다. 분명 만빙어가 손바닥을 간질일 때 잡아채 올렸었다. 그렇지만 만빙어는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조금만 더 빠르게 잡아챘어도, 제길 손만 얼얼하네. 그래도 만빙어를 건들긴 했잖아, 더 빠르게 잡아채면 틀림없이 잡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고원세다.”
원세는 얼얼한 손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긴장을 풀자 피곤도 했고, 심란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운공에 들어갔다.
‘그놈 참, 오기(傲氣)까지, 그래 스스로 뭔가 터득하는 것도 나쁠 건 없지, 하지만 이놈아, 만 빙어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아니란 말이다. 암튼 저놈을 만난 건 내겐 행운인 게야, 암, 행운이지,’
노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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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원세는 샘 앞에 앉아있었다.
푸르스름한 손을 주무르고 있는 것을 보니 벌써 여러 차례 만 빙어를 잡기 위해 시도를 했던 모양이었다. 한참 동안 손을 주무르던 원세가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빨을 깨물었다. 그리곤 손을 천천히 움직여 물속에 집어넣었다. 아니 집어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이놈! 그만두지 못할까!”
노인의 호통에 원세는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으- 대단한 할아버질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날, 떨게 만드시다니, 진정한 할아버지의 정체는 뭘까?’
원세는 진정한 할아버지의 정체가 궁금했다.
“원세야, 오기도 좋고, 불굴의 투지도 좋다. 하지만 지나침은 심신을 해치느니라! 네놈 손은 동상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다. 동상에 걸리면 손을 잘라내야 할 것이다. 암튼 내 약속을 한 것이니, 만빙어를 어떻게 잡는지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이쪽으로 와 앉아라!”
노인의 목소린 의외로 부드러웠다.
마치 친할아버지가 손자를 타이르듯이,
원세는 대꾸도 없이 노인 앞에 공손히 앉았다.
“방법을 가르쳐 주기 전에 내 이름부터 밝히겠다. 원세야, 나는 드넓은 광야(廣野)를 질주하는 말(馬)을 뜻하여 광마(廣馬)라 한다. 그러나 세간에선 광마(狂魔), 미친 마왕(魔王)이라 불렸다. 암튼 나는 결코 미친 것도 마왕도 아니니라! 강한 자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자들이 시기하여 그렇게 불렀느니라!”
“저는 할아버지 말씀을 믿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을 건다면 그 어떤 것도 배우고 싶지가 않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조건 없이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면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알겠다. 이놈아! 조건 없이 가르쳐 줄 것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배워야 할 것이다. 적어도 칠성의 성취는 이루거라. 그래야만 만빙어를 잡게 될 것이다. 이점 명심하거라!”
“예 할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천장 위 푸른 하늘로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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