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여랑아, 울지 마!
별당 뜰,
여랑이 슬픈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여랑의 슬픔처럼 하늘도 잔뜩 흐렸다.
“아가씨! 날씨가 흐리니 마음이 울적하시죠.”
유모가 걸어오며 말을 걸었다.
“유모, 원세가 동굴에 간 지 며칠 됐지?”
“오늘이 축일(丑日)이니 열흘 되었습니다.”
유모가 손가락을 꼽아보며 대답했다.
“.......”
여랑은 원세가 산으로 올라간 날부터 날마다 밤잠을 설쳤다. 그랬던 여랑이 날짜를 모를 리가 없었다. 여랑은 하루하루가 몇 날씩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졌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죽을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원세의 어머니가 다녀간 이후론 자신이 미웠고 심적 고통도 더 심해졌다.
“유모, 벌써 열흘, 우리 원세 어떻게 됐을까, 아무 탈 없겠지, 무사하겠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려야지, 말씀은 들어줄까?? 어떻게 하지,”
여랑은 아버지를 만나 통사정이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응가 마려운 강아지처럼 종종거리는 여랑의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에도 딱했다.
“아가씨, 참으세요. 공연히 역정만 내실 거예요.”
“백일, 나날이 미칠 것 같은데 백일을 어떻게 기다려...”
“그래도 참으세요. 아가씨! 아가씨!”
“......”
여랑은 단단히 결심한 듯 유모의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본 전각으로 향했다. 유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리나케 여랑을 쫓아갔다.
‘그러고 보면 아가씨도 한 고집한다니까,, 이러다가 우리 아가씨, 상사병(相思病), 이를 어쩌지---’
유모는 그 누구보다도 여랑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바로 유모가 여랑의 친어머니 같은 존재였으니 당연했다. 비록 몸은 아팠어도 항상 밝게 웃었던 여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유모는 문득 여랑이 상사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했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전각을 지키던 무사가 여랑이 다가오자 굽실거렸다.
“아버지, 안에 계신가요?”
“대인께선 서재에 계신데...”
“알았어요.”
오늘따라 여랑의 목소리가 쌀쌀맞게 들렸다.
‘아가씨께서 화가 나셨나?’
후원으로 향하는 여랑을 보며 무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상냥하게 말하던 여랑이었다.
그랬던 여랑이 쌀쌀맞게 말했으니 이상할 만도 했다.
후원은 조용했다.
서재 겸 접견실 부근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특히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된 금지구역이었다.
여랑은 귀한 손님들만 모시는 접견실 앞에 와 있었다.
유모는 접근도 못 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봤다.
그런데 있어야 할 호위무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님,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일단, 결과를 보고 결정하세!”
“결과야 뻔한 것 아닙니까. 놈들이 무슨 재주로 묘 신수의 딸을 찾아옵니까. 천수 그놈이 돌아오면 이참에 결정을 보십시오. 면천을 시켜주는 대신 충성맹세를 하라고 말입니다.”
“놈의 성정으로 보아 쉽지가 않을 텐데...”
“회유가 통하지 않는다면 죽여야 합니다.”
으흑!
“누구냐?”
수상한 기척을 느낀 진충원이 싸늘히 일갈했다.
여랑은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원세 아버지에 관한 얘기가 또렷이 들렸다.
여랑은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기척을 내고 말았다.
“여 여랑입니다. 아버지,”
“...네가 예까진 어쩐 일이냐?”
일시 살기를 피워 올렸던 진충원이 딸의 목소리에 살기를 풀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허허, 우리 여랑이가 예까지 온 걸 보면, 이 아비에게 특별히 할 얘기가 있을 터, 알았느니, 내 얘기가 끝나는 대로 별당으로 갈 것이다. 가서 기다려라!”
“예, 아버지!”
돌아서는 여랑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가요.”
유모가 비틀거리는 여랑을 부축해 후원을 빠져나갔다.
“두 놈은 썩 나서라!”
그들이 후원을 벗어나자 쌍 노가 밖으로 나서며 일갈했다.
“찾으셨습니까?”
문 앞에서 3장쯤 떨어진 정원수 옆이었다. 땅에서 솟듯 느닷없이 나타난 자들이 싸온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접견실을 지키던 바로 그 무사들이었다.
“네놈들이 지금 죽으려고 환장을 했느냐?”
“무슨 말씀인지...”
“누가 오면 제지를 했어야지 쳐 죽일--”
“우린, 여랑 아가씨라...”
“불쑥 나타나면 놀라실...”
“됐다. 쳐 죽일 놈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죽은 목숨임을 명심하라!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제기랄, 괜히 우리만 잡는다니까,’
‘누가 아니라나,’
안으로 들어가는 쌍노를 쳐다보며 무사들이 투덜거렸다.
두 사나이는 장주인 진충원의 그림자 무사들이었다.
나이는 50대로 보였고, 항시 그림자처럼 진충원을 따라다니며 호위했다. 그들 중 마른 자는 염영무(廉影武)라 불렀으며, 좀 뚱뚱한 자는 강영무(康影武)라 불렀다. 절정 고수반열에 들 정도로 무공에도 일가견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변복(變服)에 귀재라 일반 호위무사들은 그들이 영무(影武)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들을 철저히 숨길 줄 아는 자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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