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랑이 아이들 미래입니다.
“흑흑, 믿을 수가 없어, 아버지께서, 잘못 들은 거겠지?”
여랑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정신없이 별당으로 돌아왔다. 유모가 없었다면 제대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여랑은 별당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엎드려 흐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자위를 해보았지만, 분명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에 눈앞이 캄캄했고, 어찌해야 할지 머릿속이 텅 비어 생각조차 떠오르질 않았다. 그냥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 뿐이었다.
“아가씨, 좀 진정하세요. 아가씨!”
“흑흑, 유모는 들어오지 마, 혼자 있고 싶어, 으흑흑--”
“정말 무슨 일이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혹시, 원세가 죽었다는 말이라도 들으셨나, 그래 이럴 땐 의원님이 계셔야 해, 모시러 갈까,”
유모는 문밖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를 뿐, 어찌해야 할지 죽을 맛이었다. 그때 상황을 알고 왔는지 조사의가 나타났다.
“유모, 아가씨께 무슨 일 있었소?”
“마침 잘 오셨어요. 아가씨께서 후원에 갔었는데 무슨 얘길 들으셨는지, 우리 아가씨, 저렇게 우시 다간 큰 병을 얻으실 거예요. 의원님께서 어떻게 좀 해봐 주세요.”
“음, 알겠습니다. 내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참 유모, 얘기하는 동안 밖의 동정을 잘 살펴주시오.”
“예, 의원님.”
조사의는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
여랑은 침대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조사의 눈에는 여랑이 불쌍하기만 했다.
‘세상사(世上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거늘,’
“아가씨, 세상 이치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상심할 말을 들었더라도 그것이 화가 될지 복이 될지는 지나 봐야 압니다. 아가씨야말로 예지능력이 뛰어나신 분입니다. 아가씨가 보려고 한다면 앞일을 예측하실 수도 있을 터, 그만 진정을 하시지요.”
“흑흑, 할아범! 그래도 그렇지요. 흑흑--”
조사의가 침대에 걸터앉아 들먹거리는 여랑의 어깨를 토닥이자, 여랑이 와락 조사의 품에 안기며 흐느꼈다.
사실 여랑은 조사의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친할아버지 같은 할아범의 목소리가 반가워 자신도 모르게 품에 안겼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조사의는 여랑을 가만히 감싸 안은 채 등만 토닥였다.
그렇게 반 각쯤 흘렀을 것이다.
여랑이 고개를 들었다.
“할아범!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을지?”
“아가씨, 무슨 말을 들었는지 말씀을 해보세요. 이 늙은이가 우매하긴 해도 아가씨께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여랑은 한차례 부르르 떨곤 차분히 들은 얘기를 말했다.
얘기를 듣던 조사의 얼굴이 일시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아가씨, 내 얘길 깊이 새겨들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얘길 들었다는 내색은 누구 앞에서도 하지 마십시오. 아셨지요.”
“할아범,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아가씨, 이 늙은이는 아가씨께서 원세를 사랑한다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프실 겁니다. 그렇더라도 원세의 일에는 당분간 나서지 마십시오. 그것이 원세를 돕는 일입니다.”
“할아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원세는 죽었을지도 모르고, 원세 아버지도 죽게 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늙은이가 장담하건대 원세는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다만, 천수 그 사람은 명(命)이 다했다면 죽게 되겠지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원세라도 살리셔야 합니다.”
“저는 그럴 수가 없어요. 원세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제가 어떻게 원세를 볼 수 있어요. 너무 가혹해요. 으 흑흑-”
“아가씨, 진정하시고 내 얘길 깊이 새겨들으세요.”
“예 할아범!”
조사의의 말에 여랑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이 늙은이가 본 바로는, 이 세상에서 아가씨와 원세는 천생배필입니다. 아가씨가 원세를 사랑하듯 그놈 역시 아가씨를 목숨처럼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원세 그놈은 불구덩이 속이라도 들어갈 겁니다. 그런 원세를 위해서라도 들은 얘기는 잊으셔야 합니다. 길흉화복은 지나 봐야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내 말 명심하세요.”
여랑은 원세와 천생배필이라는 말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게다가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원세 그놈은 불구덩이 속에라도 들어갈 정도로 아니,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말에 얼굴이 도화(桃花) 빛으로 물들었다. 그렇다고 얼굴에 어렸던 수심이 가신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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