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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2

검투사의 아들 26

자연사랑이 아이들 희망입니다. “아가씨!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문밖에서 유모가 신호를 보냈다. “유모, 알았어요.” “아가씨, 내 말 명심하세요. 아무 일 없었던 겁니다.” “할아범, 걱정하지 마세요.” 조사의는 태연히 방을 나섰고, 여랑은 얼굴을 매만졌다. “대인, 오셨습니까?” “의원께서 와 계셨습니다. 그려,” “요즘, 아가씨께서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진맥을 짚어 봤습니다.” “그래, 어떻소! 여랑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요.” 말은 걱정스럽게 했지만, 진충원의 눈빛은 문제가 있다면 용서치 않겠다는 듯 살기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아가씨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는지 식사가 시원치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몸에 이상이 있다는 얘긴 아닙니다. 암튼 대인, 앞으로 육 개월에서 일 년 내에 대인이 고대..

검투사의 아들 2021.11.23

검투사의 아들 23

잠시 후, 심하게 흔들거렸던 물결이 잔잔해지자, 이번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주기적으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그때 사라졌던 만 빙어가 다시 나타났다. 물방울은 1장 높이의 석순에 맺혔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만빙어는 물방울이 일으키는 파장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원세는 잔뜩 벼르고 있다가 빠르게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만 빙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물결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또 허탕이었다. 그렇게 하길 백여 번, 역시 만빙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몇 번 물 위에 가만히 손을 대고 있다가 쳐올리기도 했지만, 그 역시 실패였다. 원세가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한기가 뿜어지는 샘 앞에서도 원세의 이마엔 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그물이라도 있다면 건져 올릴 텐데, 어떻게 잡지,” 특별한 ..

검투사의 아들 2021.11.11

검투사의 아들 22

원세가 잠에서 깬 시각은 다음날 정오쯤이었다. 원세의 잠자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던 노인이 원세가 눈을 뜨자마자 호통을 치듯 말했다. “어린놈이 늦잠은, 그렇게 게을러서 뭘 찾겠다는 게냐! 한심한 놈 같으니, 이놈아! 자고로 부지런한 자만이 뜻한 바를 얻을 수 있다고 했느니라! 네놈처럼 게을러터져선 끼니는커녕 굶어 죽기 딱이지, 알겠느냐! 이놈아!” “아 함, 훤히 날이 밝은 걸 보니, 정오쯤 된 것 같군요.” 하품하며 부스스 일어난 원세는 못 들은 척 하품을 해댔다. 그리곤 하늘을 올려다보며 동문서답(東問西答)식으로 말했다.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킬킬, 좋다. 이놈아, 어디 굶어봐라! 얼마나 견디는지,” “할아버지, 가르쳐주지 않을 거면 가만히 계세요. 다 제 문젭니다.” “이놈아!..

검투사의 아들 2021.11.08

검투사의 아들 20

날이 밝았다. 두 필의 흑마가 객점 앞에 세워져 있었다. 객점에서 나온 천수와 국환이 굳게 손을 잡았다 놓으며 말에 올라탔다. 헤어지기가 섭섭했을까, 그들은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철인, 내 부탁 잊지 말게,” “추객, 제수씨까지 내가 책임지지,” “떽, 아무튼 몸조심하시게,” “내 걱정은 말고 자네나, 아무튼 우리 두 달 후에 보세!” “두 달 후에--- 이랴!” “이랴!” 히히힝- 히히힝- 두 사람의 채찍질에 말이 앞발을 높이 들어다 놓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동서로 갈린 길을 말들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배웅하러 나왔던 점소이가 양쪽을 향해 번갈아 손을 흔들어댔다. ----- 그 시각이었다. 계곡의 암동, 정적과 어우러진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청아하게 암동을 울렸다. 언제 머리를 손질해..

검투사의 아들 2021.11.02

검투사의 아들 19

큰 구경거리가 객점 밖에서 벌어졌다. 객점에 있던 손님들은 먹던 음식도 제쳐놓고 우르르 몰려나갔고, 고개를 갸웃거린 점소이는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자마자 뛰쳐나갔다. 점소이의 눈엔 동료가 싸움하러 나갔는데도 태연하게 앉아있는 천수의 행동이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어이쿠! 쓰벌, 배때기에 철판을 깔았나,” 한 청년이 슬며시 주먹을 굳게 말아 쥐더니 떡 버티고 선 국환의 복부를 기습적으로 가격했다. 그러나 신음을 흘린 건 청년이었다. “어쭈, 이번에도 버티나 보자, 이얍! 얏!” 퍽! 이를 지켜본 다른 청년이 눈에 불을 켜곤 순간적으로 몸을 날렸다. 제법 날렵한 발차기가 국환의 귓가를 스쳤다. 이어서 몸을 회전한 청년은 날렵하게 국환 앞으로 다가서며 주먹을 날렸다. 주먹은 휙. 휙,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빨..

검투사의 아들 2021.10.29

검투사의 아들 16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원세와 괴인은 2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앉은 상태로 꿈쩍 않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갔을까, 원세의 산발한 머리칼 사이로 살짝 드러난 눈꺼풀이 파르르 떨었다. 운공도 운공이지만 정신력의 한계에 달했는지, 원세는 주화입마와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이놈! 뭘 꾸물거리느냐? 냉큼 일어서거라!” 별안간 암동이 들썩거렸다. “윽, 누구지?” 원세가 답답한 신음을 흐리곤 눈을 번쩍 뜸과 동시 벌떡 일어섰다.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꿈에 볼까 무서운 괴인의 모습이었다. 원세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원세가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누구?” “킬킬킬- 이놈!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왔느냐?” 괴인의 머리칼 사이로 형형..

검투사의 아들 2021.10.20

검투사의 아들 15

따가닥, 따가닥, 원세가 한창 운공에 빠져있을 즈음, 일단의 인물들이 아침 햇살을 뒤로하고 장원을 떠나고 있었다. 그들은 제갈왕민 일행이었고 배웅한 인물들은 진충원을 비롯해 쌍노와 호위무사들이었다. 제갈왕민 일행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진충원이 돌아서며 쌍노에게 일갈했다. “쌍노! 준비를 시켜라!” “예, 주인님! 너희들은 나를 따라라!” 진충원은 뒷짐을 하곤 천천히 마방 쪽으로 걸어갔고, 천수를 비롯한 호위무사들은 쌍노를 따라 장원으로 들어갔다. 대략 반 시진쯤 흘렀을 것이다. 대청 앞에 천수를 비롯해 호위무사 20여 명이 정렬해 서 있었다. 그들은 작은 봇짐을 메고 있었고, 일견해도 멀리 길을 떠날 차림새였다. 그런데 풍객은 보이지..

검투사의 아들 2021.10.17

검투사의 아들 14

으스스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갈 땐 오싹오싹 한기가 들었고 겁이 나기도 했다. 몸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휴- 많이 들어온 것 같은데, 먹을 물이 있기는 할까, 어쨌든 냄새는 안 나서 좋다. 후-후, 후-휴--” 앞쪽을 노려보는 원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마치 먹이를 찾아 나선 들짐승의 눈빛이었다. 몇 번 깊게 심호흡을 해댄 원세가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제법 힘이 들어간 발걸음에 철벙거리는 소리만 크게 동굴을 울려댔다. 들려오던 물방울 소리마저 철벙거리는 소리가 삼켜버렸다. 어어어-- 첨벙- 대략 50장은 들어갔을 것이다. 동굴이 이번엔 좌측으로 꺾였다. 원세가 조심스럽게 돌아서서 몇 걸음 내디딘 순간이었다. 발밑이 푹 꺼지는 바람에 원세의 몸은 그대로 물..

검투사의 아들 2021.10.14

검투사의 아들 13

날이 밝기는 이른 시각이었다. 진 가장 별당 뒤뜰, 청의 노인이 샛별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때 한 사나이가 뒤뜰로 다가왔다. “의원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천수, 왔는가,” 사나이가 다가오자 노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무슨 근심이라도?” “근심은 무슨, 자네야말로 근심이 크겠군.” 노인이 천천히 돌아섰다. “예, 네에, 걱정됩니다.” “자네답지 않군, 그렇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 원세 그놈은 사지(死地)에 갖다가 놔도 살아 나올 놈일세!” “저야 의원님 말씀을 믿지만, 그래도 걱정이 됩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 그런데 말이야, 이 시간에 날 찾아온 걸 보면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네. 그려,” “의원님!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뭘 말..

검투사의 아들 2021.10.10

검투사의 아들 11

2장, 나는 광마(狂魔)다. 오후가 되자 맑았던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저녁부터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건너다 보이는 량산은 검은 괴물처럼 버티고 서서 봄비를 즐기듯 몸을 내맡겼다. 한 번씩 바람이 지나칠 때면 괴성(怪聲)까지 질러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휘이잉- 휘잉- 휘이잉--- 량산에서도 제일 험하다는 으스스한 계곡의 암벽이 봄비를 묵묵히 맞고 있었다. 계곡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암벽에 부닥칠 때마다 소름 끼치는 괴성을 질러댔다. 마치 죽은 자들의 원혼이 살아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흔들거리는 횃불에 동굴 정경이 드러났다.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있는 인골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울퉁불퉁한 암벽이 답답하다 못해 숨통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하동굴 속에서 한기를 몰고 온 비명 ..

검투사의 아들 202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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