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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랑 9

검투사의 아들 43화

다음 날 아침이었다. 진가장은 겉으론 조용한 듯 보였으나 어수선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풍겼다. 마당엔 휘장이 쳐진 마차 한 대와 짐마차 두 대가 세워져 있었고, 장주의 애마인 백마와 다섯 필의 말들을 일꾼들이 잡고 있었다. “아가씨께서 요양을 떠나시다니, 이를 어쩌지,” “다 나으신 것 같았는데---” “그러게 말일세! 한 일 년 걸린다면서?” “대인께서 나오신다.” 풍객이 소리치자 짐을 날랐던 일꾼들이 하던 말을 끊곤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때 진충원을 비롯해 쌍노와 일단의 무사들, 그리고 여랑과 유모, 조사의가 장원을 나섰다. 그 뒤로는 함께 따라갈 식솔들인지 남녀 이십여 명이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보기에도 딱하게 여랑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 꼭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쌍노..

검투사의 아들 2022.03.13

검투사의 아들 29

다음 날 아침, 먹구름이 하늘을 가린 탓에 암동도 어두컴컴했다. 희미하게 드러난 암동은 특별한 일은 없었다. 노인은 여전히 족쇄를 찬 채 앉아 있었고, 원세는 샘 앞에 앉아 운공 중이었다. ‘음, 할아버지가 이번엔 제대로 가르쳐 준 것 같은데--’ 원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원세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운공에 임했다. 내공은 거부반응 없이 순순히 혈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내공이 골고루 퍼졌다고 느껴진 순간, 흩어졌던 내공을 천천히 중 단전에 끌어모았다. 그리고 한차례 심호흡을 한 뒤, 내공을 서서히 끌어내려 하 단전에 갈무리했다. ‘정기신(精氣神) 후에 내공을 마음으로 움직여라! 내공과 양기를 융화시켜라! 새로 생성된 음기도 제자리에 잘 갈무리를 시키거라. 때가 되면 양기와 음기를 자유자재..

검투사의 아들 2021.12.17

검투사의 아들 27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장원의 한 허름한 전각이 은은한 별빛 아래 드러났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정원수들만 속살거릴 뿐, 전각 주위는 고요했다. 창마다 불이 꺼진 지 오래되었고, 오직 불이 밝혀진 방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그 방에서 흘러나오는 여인의 목소린 애절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天地神明)께 비나이다. 부디 지아비를 무사 귀환케 도와주소서! 이 한목숨 거둬 가시고, 우리 원세를 살펴주소서! 빌고 또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부디 지아비를, 원세를, 빌고 또 비나이다.” 방안이었다. 고씨 부인이 동쪽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빌고 있었다. 얼굴은 몰라보게 수척했고 소복을 입었다. 고씨 부인은 아들 원세가 산으로 올라간 그날부터 천지신명께 빌었다. 오늘도 허드렛일을 하느라 ..

검투사의 아들 2021.12.10

검투사의 아들 26

자연사랑이 아이들 희망입니다. “아가씨!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문밖에서 유모가 신호를 보냈다. “유모, 알았어요.” “아가씨, 내 말 명심하세요. 아무 일 없었던 겁니다.” “할아범, 걱정하지 마세요.” 조사의는 태연히 방을 나섰고, 여랑은 얼굴을 매만졌다. “대인, 오셨습니까?” “의원께서 와 계셨습니다. 그려,” “요즘, 아가씨께서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진맥을 짚어 봤습니다.” “그래, 어떻소! 여랑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요.” 말은 걱정스럽게 했지만, 진충원의 눈빛은 문제가 있다면 용서치 않겠다는 듯 살기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아가씨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는지 식사가 시원치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몸에 이상이 있다는 얘긴 아닙니다. 암튼 대인, 앞으로 육 개월에서 일 년 내에 대인이 고대..

검투사의 아들 2021.11.23

검투사의 아들 25

자연사랑이 아이들 미래입니다. “흑흑, 믿을 수가 없어, 아버지께서, 잘못 들은 거겠지?” 여랑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정신없이 별당으로 돌아왔다. 유모가 없었다면 제대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여랑은 별당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엎드려 흐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자위를 해보았지만, 분명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에 눈앞이 캄캄했고, 어찌해야 할지 머릿속이 텅 비어 생각조차 떠오르질 않았다. 그냥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 뿐이었다. “아가씨, 좀 진정하세요. 아가씨!” “흑흑, 유모는 들어오지 마, 혼자 있고 싶어, 으흑흑--” “정말 무슨 일이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혹시, 원세가 죽었다는 말이라도 들으셨나, 그래 이..

검투사의 아들 2021.11.18

검투사의 아들 24

3장, 여랑아, 울지 마! 별당 뜰, 여랑이 슬픈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여랑의 슬픔처럼 하늘도 잔뜩 흐렸다. “아가씨! 날씨가 흐리니 마음이 울적하시죠.” 유모가 걸어오며 말을 걸었다. “유모, 원세가 동굴에 간 지 며칠 됐지?” “오늘이 축일(丑日)이니 열흘 되었습니다.” 유모가 손가락을 꼽아보며 대답했다. “.......” 여랑은 원세가 산으로 올라간 날부터 날마다 밤잠을 설쳤다. 그랬던 여랑이 날짜를 모를 리가 없었다. 여랑은 하루하루가 몇 날씩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졌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죽을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원세의 어머니가 다녀간 이후론 자신이 미웠고 심적 고통도 더 심해졌다. “유모, 벌써 열흘, 우리 원세 어떻게 됐을까, 아무 탈 없겠지, 무사하겠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검투사의 아들 2021.11.14

검투사의 아들 15

따가닥, 따가닥, 원세가 한창 운공에 빠져있을 즈음, 일단의 인물들이 아침 햇살을 뒤로하고 장원을 떠나고 있었다. 그들은 제갈왕민 일행이었고 배웅한 인물들은 진충원을 비롯해 쌍노와 호위무사들이었다. 제갈왕민 일행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진충원이 돌아서며 쌍노에게 일갈했다. “쌍노! 준비를 시켜라!” “예, 주인님! 너희들은 나를 따라라!” 진충원은 뒷짐을 하곤 천천히 마방 쪽으로 걸어갔고, 천수를 비롯한 호위무사들은 쌍노를 따라 장원으로 들어갔다. 대략 반 시진쯤 흘렀을 것이다. 대청 앞에 천수를 비롯해 호위무사 20여 명이 정렬해 서 있었다. 그들은 작은 봇짐을 메고 있었고, 일견해도 멀리 길을 떠날 차림새였다. 그런데 풍객은 보이지..

검투사의 아들 2021.10.17

검투사의 아들 11

2장, 나는 광마(狂魔)다. 오후가 되자 맑았던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저녁부터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건너다 보이는 량산은 검은 괴물처럼 버티고 서서 봄비를 즐기듯 몸을 내맡겼다. 한 번씩 바람이 지나칠 때면 괴성(怪聲)까지 질러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휘이잉- 휘잉- 휘이잉--- 량산에서도 제일 험하다는 으스스한 계곡의 암벽이 봄비를 묵묵히 맞고 있었다. 계곡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암벽에 부닥칠 때마다 소름 끼치는 괴성을 질러댔다. 마치 죽은 자들의 원혼이 살아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흔들거리는 횃불에 동굴 정경이 드러났다.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있는 인골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울퉁불퉁한 암벽이 답답하다 못해 숨통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하동굴 속에서 한기를 몰고 온 비명 ..

검투사의 아들 2021.10.04

검투사의 아들 1

연재에 앞서 밝혀둡니다. 본 작품은 1 ~ 2권 분량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매일은 아니고 2~3일에 1편씩 올리겠습니다. 검투사의 아들 – 1권 작가/썬라이즈 서장 나는 노예 검투사의 아들이었다. --- 세상을 향해 포효(咆哮)할 것이다. 무적(無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쟁취(爭取)할 것이다. 1장: 이별은 아프다. 봄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4월 중순, 한 쌍의 남녀가 야생화가 지천인 산등선을 내려오고 있었다. 16세 전후로 보이는 소년과 소녀였다. “원세야! 누가 뭐래도 나는 네 편이다.” 소녀가 걸음을 멈추며 작은 입을 열었다. 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파리하게 보이는 것을 보면 건강에 문제가 있음이었다. “아가씨, 저는 아가씨 종인 노옙니다. 아가씨가 저 때문에 야단맞으시면 전 정말로 속상합니다. 그러..

검투사의 아들 202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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