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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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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거래했다. 31 식당은 점심때라 그런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다행히 물이나 반찬은 셀프라 손이 부족하진 않았다. 대박이와 소라는 국수를 주문하곤 손님들처럼 물과 반찬을 먹을 만큼만 담아다가 탁자에 놓았다. “오빠, 아침도 안 먹고 국수로 되겠어요.” “다이어트 중이야,” “네 에! 오빠는 거울도 안 보세요.” 소라는 다이어트란 말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냥 해본 소리야, 그리고 국수가 맛있어서 먹는 거야, 내가 너무 말라 보이긴 하지만 강단은 세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대박이가 깨어났을 때는 마른 장작처럼 앙상한 몸이었다. 특히 키만 훌쩍 커버린 몸이라 장작개비라고 말할 정도로 야위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먹성은 좋아서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그래도 지금은 장작개비는 면한 상태였다. “자 국수 나왔습..
악마와 거래했다. 30 2020년 1월 7일 새해를 맞이한 지 7일째다. 오늘도 나는 고당봉에 올라가 경자년(庚子年)에는 꼭 손자가 벌떡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천지신명께 빌고 있을 때였다. 괴상하게 생긴 적발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신선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놀라긴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당당한 척 내 소개를 했다. 그리고 물었다. 내게 뭔 볼일이냐고? 사실 신선이라면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모부터가 청수하고 위엄이 있으며 백염을 멋지게 기른 편안한 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인은 치렁치렁한 적발에 먹빛 장포를 입었고 마주치기조차 싫은 눈빛에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도 최악이었다. 꿈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노인이었다. 나는 적발 노인이 청수한 외모의..
악마와 거래했다. 28 대박이가 집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6시경이었다. 그때는 식구들이 기상하여 일과를 준비할 시간이다. 소라는 우유를 마시며 철학에 관한 책을 볼 테고, 아줌마는 아침을 준비하며 하루의 일과를 점검할 것이고, 할머니는 옥상에 올라가 옥상 텃밭을 가꾸실 것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단 한 사람, 대박이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생활했다. 밤이고 낮이고 예고 없이 벌어질 일 때문이었다. 대박에겐 마성을 제어할 힘이 부족하다. 별안간 감당 못 할 문제라도 생긴다면 대박이는 이성을 잃고 마성이 이끄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음이었다. 대박이는 이를 걱정하는 것이다. “할머니, 뭐 하세요.” “대박이 왔구나, 나는 부추하고 얘기하고 있었지,” 옥상 텃밭에는 할머니가 부추와 얘길 나누..
악마와 거래했다. 27 5장, 밝혀진 밀약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하다. 봄철 감기는월 초순에 유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금 년은 4월 초까지 봄철 감기가 유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보도처럼 감기가 기승을 부렸다. 사실 독감은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알면 봄철 감기도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먼저 손부터 씻는 것이 예방 좋다. 금정산 고당봉엔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렷다. 해가 뜨기엔 이른 시각이었다. 한 사나이가 자욱한 안개를 뚫고 거침없이 고당봉을 오르고 있었다. 사나이가 고당봉에 당도할 때까지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고당봉은 제법 쌀쌀했다. “눈이 밝아졌나, 올라오는데 숨도 가쁘지 않고,” 일반 사람들 같았으면 10m 앞도 못 볼 안갯속을 대박이는 흐린 날 길을 걷..
악마와 거래했다. 26 ‘그래 범선에겐 충격이었겠지,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심정이었을 거야, 그랬을 거야, 아마 아버지에 대한 원망, 아니 반항심이 생겼을 테지, 우상이던 아버지가 지켜만 봐도 힘이 났을 테니까, 그래 바로 그거 반항심, 범선이는 지금 자신을 학대하듯 반항을 하는 거야,’ 대박은 하루라도 빨리 범선의 마음을 잡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인생을 망치니까, “종인아, 얘기 다 끝났으면 이만 가자,”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범선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남이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임 범선, 소원은 들어주고 가야지, 앉아라.” 대박은 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옆 의자를 가리켰다. “소원은 무슨, 그럼 빨리 말해요.” 범선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 범선이..
악마와 거래했다. 24 범선이란 학생이 대박이를 흘끔거리며 큰 소리로 말했고 아줌마도 짜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박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많이 먹으라는 뜻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다른 손님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현 상황을 주시했다. “......” “여기 리필...” “배가 부르면 맞짱 뜰 때 불리할 텐데,” 두 학생이 두 그릇을 비우고 리필 추가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대박이의 싸늘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제길, 알았습니다. 알았어,” 범선 학생이 인상을 써댔다. “야, 인상 펴라, 그리고 너희들, 맞짱 뜨러 가기 전에 통성명은 해야겠지, 그래야 내가 어떤 놈을 아작을 냈는지 알 거 아니냐, 난 박 대박이라고 한다. 아직은 백수건달이다.” “통성명 못 할 것도 없지요. 저는 대상상고 2학년 김 종인입니다. 현재 ..
악마와 거래했다. 22 대박은 사부인 염마 왕과 실랑이를 벌이고 돌아온 후부터는 자연스럽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기는 때가 많았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심기가 불편할 때에 평정심을 찾기 위한 명상법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특히 대박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무협 소설의 심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지금 대박이는 무협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림사 항마 심법(降魔心法)을 운용 중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108108 번뇌가 바로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잡생각이고, 그 잡생각들을 잊게 해 주는 것이 항마 심법이라고 대박이는 생각한 것이다. 암튼 틀린 말은 아니다. 마음을 닦기 위해 염불을 외우는 것처럼 외울 생각인 것이다. 사실 항마 심법은 소림사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심법으로서 마음의 마기(魔氣)를 제압하는 데 활용했다. 항마심..
악마와 거래했다. 21 잠시 휴식을 취한 대박은 책상에 앉았다. 그리곤 일기장을 펼쳤다. 2017년 11월 8일 아침에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7년 전 교통사고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는 자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사고 후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을 여러 차례 걸었었다. 전화는 많이 왔지만 나가보면 사례금을 노린 거짓 정보뿐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기대치가 있어서 목격자를 만났다. 목소리와 눈매로 보아 40세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내가 인사를 건네자 반겼다. 하지만 모자에 마스크까지 쓴 것이 수상쩍긴 했다. 내가 아는 사람처럼, 남자는 스마트 폰으로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사람을 치고 그대로 도망가는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은 분명 아들 내외가 교통사고를 당한 장소였고, 흐릿했지만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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