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거래했다.

악마와 거래했다. 30

썬라이즈 2021. 12. 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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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7

새해를 맞이한 지 7일째다.

오늘도 나는 고당봉에 올라가 경자년(庚子年)에는 꼭 손자가 벌떡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천지신명께 빌고 있을 때였다. 괴상하게 생긴 적발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신선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놀라긴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당당한 척 내 소개를 했다. 그리고 물었다. 내게 뭔 볼일이냐고?

사실 신선이라면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모부터가 청수하고 위엄이 있으며 백염을 멋지게 기른 편안한 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인은 치렁치렁한 적발에 먹빛 장포를 입었고 마주치기조차 싫은 눈빛에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도 최악이었다. 꿈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노인이었다.

나는 적발 노인이 청수한 외모의 노인이었다면 신선이란 말을 믿었을 것이다. 아니 신선이 손자를 살리겠다는 내 기도를 듣고 찾아온 것이라 여겼을 것이었다. 정말이지 납작 엎드려 손자를 살려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을 것이다.

손자를 살리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자칭 신선이란 적발 노인이 다짜고짜 한 말이었다.

나는 손자를 살리는 일이란 말에 놀랐다.

그럼 신선께서 제 기도를...’

그때 사람들이 올라오는 인기척이 말을 끊었다. 그 순간 신선이란 적발 노인도 인기척에 놀랐는지 홀연히 사라졌다.

잠시 멍했다.

눈을 씻고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이었다면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었을 터, 그렇다면 자칭 신선이란 노인은 누구란 말인가? 나는 강한 의혹을 품은 채 산에서 내려왔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대박이의 얼굴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일기장을 넘기는 손이 떨렸다.

 

202018

가끔 날짜보다는 요일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달력을 봤다.

분명 18(214)은 일요일이었다.

달력을 보지 않았다면 오늘 약속을 어길 뻔했다.

새벽 530분경, 집을 나와 금정산으로 향했다.

문득 어제의 자칭 신선이라는 적발 노인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신선을 외모로만 판단하여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지 따져도 봤다. 하지만 결론은 적발 노인은 신선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늘도 나타날까 생각했다.

금정산 고당봉에 올라섰다.

날씨도 춥고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몇 명 없었다.

날마다 하는 의식대로 동서남북 사방을 향해 절을 했다.

그리고 동쪽을 향해 108배를 드리며 기도했다.

천지신명이시여! 굽어살피셔서 우리 손자 대박이를 살려주십시오. 천지신명이시여! 굽어살피셔서 우리 손자 대박이를 살려주십시오. 천지신명이시여! 굽어살피셔서 우리 손자 대박이를 살려 주십시오. 빌고 또 빕니다.’

처음에는 108배를 하면서 기도드리기가 힘이 들었다.

이제는 이골이 났는지 힘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자칭 신선이란 적발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도 큰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일기를 읽던 대박이가 별안간 명치를 쓸어내렸다.

마치 체한 사람이 명치를 쓸어내리듯,

기대했더니, , 왜 이러지,”

대박은 별안간 아랫배로부터 묵직한 것이 치밀어 오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낌새가 이상했던지 한차례 인상을 쓴 대박은 일기장을 덮었다.

“.......”

방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대박이는 항마 심법을 운기 하기 시작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항마심법을 운기 할 때는 불순한 기운이나 심란한 마음이 평정심을 찾았다.

항마심법 구결, 고요히 눈을 감고 단전에 힘을 실어 숨을 고르게 내 쉰다. 날숨은 몸 안의 탁하고 불순한 기운을 내보내는 마음으로 가늘고 길게 입으로 내쉰다. 들숨은 우주의 기를 빨아들인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코로 들이쉰다. 마음은 평정심이다. 항마심법, 마음은 평정심이다. 항마심법, 마음은 평정심이다. 마음은 평정심이다. 항마심법항마 심법, 항마심법,”

항마 심법은 외우기만 해도 108 번뇌를 잊게 함은 물론이고 마성(魔性)이나 사기(邪氣)를 소멸(消滅) 시킨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생명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도 원초적인 기운(氣運)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을 선천적 기운, ()라고도 말한다..

대박이는 이미 염마 왕의 기운인 마력을 흡수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염마왕의 기운이 마성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 기운은 섭리에 따른 원초적인 기운이기에 물들지 않는다. 오직 사용자만이 기운을 선악으로 구분하여 활용하는 것뿐이다. 마성에 길이 들여진 자들은 기운마저도 마성의 마기로 알고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였다.

, 심란한 게 더욱 불안을 자초하네, 안 되겠다. 산엘 갈까, 신나게 달리기라도, 제길 이얍! 이얍!”

별안간 대박이의 입에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빠, 무슨 일이야,”

운동 좀 한다고, 시끄러웠다면 미안,”

놀랬잖아, 그러지 말고 오빠, 우리 시민공원에라도 갈까,”

소라야 나중에...”

소라는 대박이의 방문을 함부로 열지 않는다.

좀 쑥스러운 일이 있었던 관계로,

거참, 싹 가셨네, 그렇다면 기합 소리가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도 있다는 건가, 그건 아니겠지, 그래 내재된 내 힘, 정명한 힘, 그것이 심란함을 제어한 걸 거야, 그런데 요즘은 번개가 반응을 보이지 않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대박이는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사실 대박은 번개에 대해 검색한 후, 신화 쪽에 무게를 두고 뇌신이 자신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었다. 해서 내공의 하나인 뇌공에 대해 공부할 생각이었다.

오빠, 점심 먹으러 가요.”

벌써 시간이 알았다. 기다려,”

대박이를 깨운 것은 낭랑한 소라의 목소리였다.

소라야, 너 오늘 학교는...”

빨리도 물어보네, 오늘 학교 개교기념일이야,”

대박이가 방에서 나오며 말을 건네자 소라가 입을 삐죽이며 말을 잘랐다.

, 그랬구나, 일찍 얘기했으면 오빠가 영화든 시민공원에라도 데리고 가는 건데 미안,”

미안해할 것 없어요. 난 오빠가 맘고생 끝내는 날, 그때 오빠 손 잡고 영화 보러 갈 거니까, 그러니까 오빠는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기나 하세요.”

소라 공주님, 잘 알았습니다. 그만 내려갑시다.”

“......”

대박이와 가족들은 한날 가족회의를 열었었다.

대박이는 자신의 증상을 솔직히 말하고, 별안간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본심이 아니니 이해를 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날마다 지켜봤던 안 여사가 보충 설명을 했다. 그 후부터 가족들은 대박이에 대해 이렇다 할 간섭을 하지 않았다.

------계속

 

모두 힘내세요.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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