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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거래했다. 58

악마와 거래했다. 28

대박이가 집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6시경이었다. 그때는 식구들이 기상하여 일과를 준비할 시간이다. 소라는 우유를 마시며 철학에 관한 책을 볼 테고, 아줌마는 아침을 준비하며 하루의 일과를 점검할 것이고, 할머니는 옥상에 올라가 옥상 텃밭을 가꾸실 것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단 한 사람, 대박이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생활했다. 밤이고 낮이고 예고 없이 벌어질 일 때문이었다. 대박에겐 마성을 제어할 힘이 부족하다. 별안간 감당 못 할 문제라도 생긴다면 대박이는 이성을 잃고 마성이 이끄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음이었다. 대박이는 이를 걱정하는 것이다. “할머니, 뭐 하세요.” “대박이 왔구나, 나는 부추하고 얘기하고 있었지,” 옥상 텃밭에는 할머니가 부추와 얘길 나누..

악마와 거래했다. 27

5장, 밝혀진 밀약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하다. 봄철 감기는월 초순에 유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금 년은 4월 초까지 봄철 감기가 유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보도처럼 감기가 기승을 부렸다. 사실 독감은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알면 봄철 감기도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먼저 손부터 씻는 것이 예방 좋다. 금정산 고당봉엔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렷다. 해가 뜨기엔 이른 시각이었다. 한 사나이가 자욱한 안개를 뚫고 거침없이 고당봉을 오르고 있었다. 사나이가 고당봉에 당도할 때까지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고당봉은 제법 쌀쌀했다. “눈이 밝아졌나, 올라오는데 숨도 가쁘지 않고,” 일반 사람들 같았으면 10m 앞도 못 볼 안갯속을 대박이는 흐린 날 길을 걷..

악마와 거래했다. 26

‘그래 범선에겐 충격이었겠지,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심정이었을 거야, 그랬을 거야, 아마 아버지에 대한 원망, 아니 반항심이 생겼을 테지, 우상이던 아버지가 지켜만 봐도 힘이 났을 테니까, 그래 바로 그거 반항심, 범선이는 지금 자신을 학대하듯 반항을 하는 거야,’ 대박은 하루라도 빨리 범선의 마음을 잡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인생을 망치니까, “종인아, 얘기 다 끝났으면 이만 가자,”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범선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남이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임 범선, 소원은 들어주고 가야지, 앉아라.” 대박은 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옆 의자를 가리켰다. “소원은 무슨, 그럼 빨리 말해요.” 범선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 범선이..

악마와 거래했다. 25

사실 범선은 대박의 주먹 한 방에 숨이 멎는 고통을 맛봤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창피를 당한 꼴이 되었다. 다행히 주위에 사람들이 없어 쪽팔리는 것은 면했다. 그렇더라도 변명의 여지없이 진 것은 진 것이었다. “형씨, 아니 형, 남자답게 말하지요. 졌습니다.” “이렇게 싱겁게 끝난 거냐, 벌점도 계산을 안 했는데, 아무튼 남자답게 인정을 해서 이번만은 봐준다. 하지만 내 소원을 들어줘야 끝난다는 거. 알았냐?” “제길, 소원이 뭡니까?” “짜식, 얼굴이 창백하다. 숨 좀 돌려라,” “......” 너무도 차분하게 말하니까, 오히려 주눅이 드는 범선이었다. 특히 종인이는 일련의 상황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믿지 못할 정도로 대박이의 실력에 놀랐고, 또한 범선이가 이렇게 순순히 졌다고..

악마와 거래했다. 24

범선이란 학생이 대박이를 흘끔거리며 큰 소리로 말했고 아줌마도 짜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박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많이 먹으라는 뜻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다른 손님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현 상황을 주시했다. “......” “여기 리필...” “배가 부르면 맞짱 뜰 때 불리할 텐데,” 두 학생이 두 그릇을 비우고 리필 추가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대박이의 싸늘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제길, 알았습니다. 알았어,” 범선 학생이 인상을 써댔다. “야, 인상 펴라, 그리고 너희들, 맞짱 뜨러 가기 전에 통성명은 해야겠지, 그래야 내가 어떤 놈을 아작을 냈는지 알 거 아니냐, 난 박 대박이라고 한다. 아직은 백수건달이다.” “통성명 못 할 것도 없지요. 저는 대상상고 2학년 김 종인입니다. 현재 ..

악마와 거래했다. 23화

다음날 정오가 지난 시각이었다. 대박이가 길 건너편에서 식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희망이네 분식집 건물은 서면로터리에서 양정동 방향 대로변에 있었다. 그러니까 대박이 할아버지가 땅을 살 때 대지의 평수는 77평이었다. 하지만 77평이란 평수에 비해 폭이 좁아서 처음엔 망설였었다고 한다. 도로를 접한 폭이 좁으면 상가로서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땅을 산 것은 시세보다 싸기도 했거니와 위치상으로 어떤 장사를 하던 잘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매입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허름했던 건물을 헐어버리고 평생 살집으로 지금의 2층 건물을 튼튼하게 지었다. 1층에는 식당을 하고 2층엔 가정집으로 사용하면 대대로 밥은 굶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먹는장사는 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셨..

악마와 거래했다. 22

대박은 사부인 염마 왕과 실랑이를 벌이고 돌아온 후부터는 자연스럽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기는 때가 많았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심기가 불편할 때에 평정심을 찾기 위한 명상법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특히 대박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무협 소설의 심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지금 대박이는 무협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림사 항마 심법(降魔心法)을 운용 중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108108 번뇌가 바로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잡생각이고, 그 잡생각들을 잊게 해 주는 것이 항마 심법이라고 대박이는 생각한 것이다. 암튼 틀린 말은 아니다. 마음을 닦기 위해 염불을 외우는 것처럼 외울 생각인 것이다. 사실 항마 심법은 소림사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심법으로서 마음의 마기(魔氣)를 제압하는 데 활용했다. 항마심..

악마와 거래했다. 21

잠시 휴식을 취한 대박은 책상에 앉았다. 그리곤 일기장을 펼쳤다. 2017년 11월 8일 아침에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7년 전 교통사고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는 자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사고 후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을 여러 차례 걸었었다. 전화는 많이 왔지만 나가보면 사례금을 노린 거짓 정보뿐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기대치가 있어서 목격자를 만났다. 목소리와 눈매로 보아 40세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내가 인사를 건네자 반겼다. 하지만 모자에 마스크까지 쓴 것이 수상쩍긴 했다. 내가 아는 사람처럼, 남자는 스마트 폰으로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사람을 치고 그대로 도망가는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은 분명 아들 내외가 교통사고를 당한 장소였고, 흐릿했지만 차..

악마와 거래했다. 20

여기는 희망이네 분식집, 언제 내려왔는지 대박은 수제비를 먹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손님은 적었다. “더 줄까,” “배불러요, 그런데 수제비가 더 맛있어졌습니다. 소스를 새로 개발한다고 하셨는데, 소스를 만드셨군요.” “그래, 정말 맛있니,” “예 정말 맛있습니다.” “호호 대박이가 맛있다니까 정말 좋네, 고마워...” 안 여사는 진심이었다. “아줌마, 제가 더 고맙지요. 동생까지 데려오셨잖아요. 할머니도요. 그래서 저는 너무너무 행복하고 좋습니다.” 대박이도 진심이었다. “야, 임 범선, 너 너무 그러지 마라, 어머님이 전화했다. 못난 네놈 좀 잘 부탁한다고 말이다.” “새끼는 밥 다 먹었으면 이만 가자, 아줌마 얼맙니꺼,” 제법 몸집이 당당한 두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짜식, 저기 ..

악마와 거래했다. 19

4장, 반항의 끝 4월 첫째 금요일 아침, 대박이는 할아버지가 기도를 드리러 다녔다는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에 올라와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금정산 고당봉에 올라서자 감회가 새로웠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소풍을 왔었다. 그러니까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 정상에 올라온 것이 오늘로 두 번째라는 얘기다. 금정산은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護國)의 산으로 불렸다. 금정산엔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으로 불리는 호국사찰인 범어사와 국내 최대의 금정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은 해발 801m의 주봉인 고당봉을 중심으로 북으로 장군봉(727m)과 남으로 상계봉(638m)을 거쳐 성지곡 뒷산인 백양산(642m)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대륙봉, 파류봉, 동제봉 등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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