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반항의 끝
4월 첫째 금요일 아침,
대박이는 할아버지가 기도를 드리러 다녔다는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에 올라와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금정산 고당봉에 올라서자 감회가 새로웠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소풍을 왔었다. 그러니까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 정상에 올라온 것이 오늘로 두 번째라는 얘기다.
금정산은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護國)의 산으로 불렸다. 금정산엔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으로 불리는 호국사찰인 범어사와 국내 최대의 금정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은 해발 801m의 주봉인 고당봉을 중심으로 북으로 장군봉(727m)과 남으로 상계봉(638m)을 거쳐 성지곡 뒷산인 백양산(642m)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대륙봉, 파류봉, 동제봉 등의 준봉이 늘어섰다. 산세는 험하지 않았으나 울창한 숲과 골마다 맑은 물이 항상 샘솟고 화강암의 풍화가 일구어낸 기암절벽이 절묘하여 그야말로 부산이 자랑하는 명산이다. 요즘엔 개발이 심해 많이 훼손된 부분이 있기는 했다.
그리고 금정산에는 등산객들의 갈증을 푸는 약수터가 20여 군데나 있으며 2000여 종류의 나무와 날짐승 들짐승들이 서식하는 낙원이다. 또한, 금강공원, 동래온천, 범어사, 국청사, 금정산성, 산성마을 등 명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관광명소이기도 한 금정산이다.
그렇지만 산행을 할 땐 조심해야 한다.
특히 개체 수가 늘어난 멧돼지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주 출몰하기 때문이다. 금정산 일대에도 멧돼지가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피해 상황도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할아버지가 새벽마다 올라오셔서 기도하셨단 말이지, 내가 뭐라고,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자세히 모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 말씀대로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꼭 갚을 겁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사고도 문제가 있다면 용서치 않을 겁니다.”
대박이의 눈에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가 사라졌다.
대박이는 한적한 곳에 서서 시내를 내려다봤다.
다른 등산객들은 코스를 따라 걷거나 한창 꽃 몽우리를 터트리는 개나리와 진달래를 구경했다. 꽃 몽우리들은 무슨 얘기들이 그리 많은지 바람에 하늘거리듯 쉬지 않고 재잘거린다. 꽃 몽우리가 정말로 재잘거리는 듯 앙증맞게 예쁘다. 정말 귀엽다. 정말이지 꽃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대박이는 정상까지 올라오면서 주위 경관엔 무관심했다. 길옆으로 늘어선 개나리꽃들을 보고도 봄이 왔구나, 정도였다. 세상에 말이 되는가, 대박이의 정서에 문제가 생기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봄이네.”
무심코 눈길을 준 능선, 개나리가 몽우리를 터트렸다.
노랗게 몽우리를 터트린 개나리꽃과 눈이 마주쳤다.
“참 예쁘다. 병아리 같네, 삐약, 삐약,”
대박이의 무심한 눈빛이 생기가 돌듯 반짝였다.
모처럼 만에 생기가 도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대박이가 심하게 인상을 썼다.
“제길, 시도 때도 없이, 아직 능력과 힘이 덜 생성되었다는 증거라면, 무협 소설에서 말하는 공력이든 무공이든 대성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과 같을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대박이는 별안간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마음이 심란해지자 불안했다. 참지 못할 만큼 불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략 10분 정도 정신을 집중하고서야 심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괴인 할아버지가 말한 능력과 힘이란 것은 게임 세계에서 얻는 레벨 같은 것일 거야, 그런데 괴인 할아버지는 이승인 현 세계에서도 인간인 내가 그 능력과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 뭐든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어, 그래 난 능력과 힘이 필요해, 까짓 거 무협 소설의 무공을 익혔다고 생각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능력과 힘을 내 것으로 만든 후, 그 능력과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지, 그것이 문제일 것 같은데,”
대박이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상한 능력이 별안간 나타나기도 하고, 팔다리에 힘이 넘쳐 무엇이든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그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던 번개 문양에서 미약하지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잘못되는 것은 아니겠지, 원한을 갚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되지, 그래 번개 문양이 화끈거리기 시작했잖아, 그렇다면 마성인지 뭔지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면,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맞아 번개문양이 왜 새겨졌는지 연유가 있을 거야, 그것만 알면 마성이고 뭐고 제압해 활용할 수가 있을 거야, 번개문양은 나에게 좋은 의미의 번개일 거야,”
대박이는 외쪽 가슴을 탁탁 치며 중얼댔다.
“......”
사실 대박이는 몸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날 징조가 보이면 미리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특히 별안간 나타나는 증상 때문에 아줌마와 할머니 그리고 소라에게 들킬까 봐 그동안 노심초사했었다. 어떻게 해서든 증상을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란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음이 급해졌다.
오전 10시경,
아침에 올라왔던 사람들은 다 내려갔다.
그러고 보니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았다.
“이제야 한산해졌어, 저쪽 숲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위를 둘러본 대박이가 길도 없는 능선 아래 솔밭을 바라봤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서 사람이 있어도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대박이가 몸을 날렸다.
겁도 없이 능선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제법 날렵한 몸놀림이었고 가볍게 착지해 숲 속으로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본 사람은 없었다. 아니 삿갓에 백연을 늘어뜨린 노인이 처음부터 대박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으으얏! 이얍! 퍽 콰직!!
숲으로 뛰어든 대박이는 이성을 잃은 듯 행동했다.
“어어 어, 세상에 이럴 수가,”
대박이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눈을 의심했다.
숲 속으로 뛰어들자마자 그것도 팔다리에서 마구 솟구치는 힘을 어쩌지 못하고 발길질에 주먹질을 해 댔다. 그러다 제법 굵은 소나무를 정권으로 격파하듯 내 질렀다. 그런데 맨주먹인 정권은 이상이 없는데 소나무가 꽈직 부러지듯 격파가 되어 넘어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주먹을 쥔 손은 아프지도 않았고 작은 상처 하나 입지를 않았다.
“이건 무슨 현상이지, 손이 아프질 않다니, 상처도 없고,”
대박은 손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 그런데 마음이 심란해지는 원인은 뭐지?”
그러고 보니 대박이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바로 적발 노인의 눈빛처럼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되지, 나는 내 의지대로 행동한다. 누구도 나를 어쩌지 못해, 이래서 괴인 할아버지가 큰소리를 쳤던 건가, 으음, 괴인, 아니 사부님, 제자는 청출어람이란 말이 뭔 뜻인지 사부님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는 것 정도는 저도 잘 알거든요.”
대박이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을 인용하면서까지 사부인 괴인 할아버지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 되었다. 대박은 스스로 정의의 사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껐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청출어람은 무협 소설에서 사부가 제자를 칭찬할 때 자주 쓰는 용어다. 대박이는 청출어람이란 말의 뜻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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