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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 8

검투사의 아들 24

3장, 여랑아, 울지 마! 별당 뜰, 여랑이 슬픈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여랑의 슬픔처럼 하늘도 잔뜩 흐렸다. “아가씨! 날씨가 흐리니 마음이 울적하시죠.” 유모가 걸어오며 말을 걸었다. “유모, 원세가 동굴에 간 지 며칠 됐지?” “오늘이 축일(丑日)이니 열흘 되었습니다.” 유모가 손가락을 꼽아보며 대답했다. “.......” 여랑은 원세가 산으로 올라간 날부터 날마다 밤잠을 설쳤다. 그랬던 여랑이 날짜를 모를 리가 없었다. 여랑은 하루하루가 몇 날씩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졌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죽을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원세의 어머니가 다녀간 이후론 자신이 미웠고 심적 고통도 더 심해졌다. “유모, 벌써 열흘, 우리 원세 어떻게 됐을까, 아무 탈 없겠지, 무사하겠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검투사의 아들 2021.11.14

검투사의 아들 23

잠시 후, 심하게 흔들거렸던 물결이 잔잔해지자, 이번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주기적으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그때 사라졌던 만 빙어가 다시 나타났다. 물방울은 1장 높이의 석순에 맺혔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만빙어는 물방울이 일으키는 파장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원세는 잔뜩 벼르고 있다가 빠르게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만 빙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물결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또 허탕이었다. 그렇게 하길 백여 번, 역시 만빙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몇 번 물 위에 가만히 손을 대고 있다가 쳐올리기도 했지만, 그 역시 실패였다. 원세가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한기가 뿜어지는 샘 앞에서도 원세의 이마엔 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그물이라도 있다면 건져 올릴 텐데, 어떻게 잡지,” 특별한 ..

검투사의 아들 2021.11.11

검투사의 아들 21

꼬르륵, 꼬르륵, 꼬륵, 물배만 채워서인지 꼬르륵 소리가 심하게 났다. “제길, 전량을 가지러 가긴 정말 싫은데...” “내 말만 듣는다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먹을 것을 주지,” 노인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됐습니다. 내 굶어 죽고 말지 사람은 안 죽입니다.” “그래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썩을...” “......” ‘저놈을 어떻게 해서든 제자로 삼아야 한다. 제자가 아니더라도 무공을 가르쳐 그놈만은 꼭 죽이게 해야 하는데, 음, 내 손으로 죽일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련주님, 보고 계십니까? 제 신세를 보십시오. 련주님의 엄명이 아니었다면 벌써,’ 노인의 입에서 회한에 사무친 자조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에게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참, 불쌍한 할아버지네. 그런데 그동안 먹..

검투사의 아들 2021.11.05

악마와 거래했다. 19

4장, 반항의 끝 4월 첫째 금요일 아침, 대박이는 할아버지가 기도를 드리러 다녔다는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에 올라와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금정산 고당봉에 올라서자 감회가 새로웠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소풍을 왔었다. 그러니까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 정상에 올라온 것이 오늘로 두 번째라는 얘기다. 금정산은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護國)의 산으로 불렸다. 금정산엔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으로 불리는 호국사찰인 범어사와 국내 최대의 금정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은 해발 801m의 주봉인 고당봉을 중심으로 북으로 장군봉(727m)과 남으로 상계봉(638m)을 거쳐 성지곡 뒷산인 백양산(642m)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대륙봉, 파류봉, 동제봉 등의 ..

검투사의 아들 16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원세와 괴인은 2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앉은 상태로 꿈쩍 않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갔을까, 원세의 산발한 머리칼 사이로 살짝 드러난 눈꺼풀이 파르르 떨었다. 운공도 운공이지만 정신력의 한계에 달했는지, 원세는 주화입마와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이놈! 뭘 꾸물거리느냐? 냉큼 일어서거라!” 별안간 암동이 들썩거렸다. “윽, 누구지?” 원세가 답답한 신음을 흐리곤 눈을 번쩍 뜸과 동시 벌떡 일어섰다.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꿈에 볼까 무서운 괴인의 모습이었다. 원세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원세가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누구?” “킬킬킬- 이놈!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왔느냐?” 괴인의 머리칼 사이로 형형..

검투사의 아들 2021.10.20

악마와 거래했다. 13

으 아아아, 별안간 적발 노인이 고속열차의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대박이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괴인 할아버지 앞에서는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대박이었다. 그런데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대박이는 이빨만 으드득 갈았다. “네놈은 앉아있을 자격도 없다. 그대로 서 있거라!”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주위는 고요했다. 바람도 멎었다. 두 사람은 예의 칼바위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박이는 서 있었고, 적발 노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인간이 적발 노인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나이는 대박이를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대박은 보지도 못했다. 사실 칼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

악마와 거래했다. 12

3장, 후유증 휘리링, 휘잉, 휘리리링, 언제부터 있었을까, 적발 노인과 대박이가 칼바위 위에 마주 서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척박한 땅에는 어떤 태풍이 몰려올까, 몰아치는 바람이 심상치가 않았다. 주위 상황으로 봐서는 토네이도 같은 소용돌이 바람이 불어올 것도 같다. 점점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은 대박이의 몸을 날려버릴 것처럼 거세졌다. “저번에는 용케도 빠져나갔다만 이번엔 어림도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놈을 내 제자, 아니 수하로 만들 것이다. 각오를 단단히 하거라!”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오싹 소름이 돋았다. 대박이는 움찔거리곤 입을 열었다. “그런데 괴인 할아버지, 이런 곳에 있는 게 힘들지도 않으세요. 그리고 괴인 할아버지 말씀 중에요, 저희 할아버지와 잘 아시는 것처럼 말씀도..

악마와 거래했다. 10

3월 15일, 안 여사네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리고 집들이는 1층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그동안 힘이 되어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홍 씨 아저씨의 말에 따른 것이었다. 대박이는 모두에게 감사했다. 특히 홍 씨 아저씨와 간병한다고 고생하신 아줌마가 정말이지 고맙고 감사했다. 저녁이 되자 손님들이 식당으로 몰려왔다. 손님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었고, 식탁에는 미리 준비한 고기와 떡, 술, 음료수가 차려졌다. 손님들은 집들이하면 빠지지 않는 화장지와 세제 등을 들고 왔다. 시장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나 씨 아저씨는 통도 크게 주방세제를 박스 채 들고 오셨다. 함께 온 나씨 부인은 뭐가 못마땅한지 도끼눈으로 남편을 흘겨봤다. 아마도 세제를 박스 채 들고 와서 화가 난 모양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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