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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 18

검투사의 아들 14

으스스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갈 땐 오싹오싹 한기가 들었고 겁이 나기도 했다. 몸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휴- 많이 들어온 것 같은데, 먹을 물이 있기는 할까, 어쨌든 냄새는 안 나서 좋다. 후-후, 후-휴--” 앞쪽을 노려보는 원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마치 먹이를 찾아 나선 들짐승의 눈빛이었다. 몇 번 깊게 심호흡을 해댄 원세가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제법 힘이 들어간 발걸음에 철벙거리는 소리만 크게 동굴을 울려댔다. 들려오던 물방울 소리마저 철벙거리는 소리가 삼켜버렸다. 어어어-- 첨벙- 대략 50장은 들어갔을 것이다. 동굴이 이번엔 좌측으로 꺾였다. 원세가 조심스럽게 돌아서서 몇 걸음 내디딘 순간이었다. 발밑이 푹 꺼지는 바람에 원세의 몸은 그대로 물..

검투사의 아들 2021.10.14

검투사의 아들 13

날이 밝기는 이른 시각이었다. 진 가장 별당 뒤뜰, 청의 노인이 샛별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때 한 사나이가 뒤뜰로 다가왔다. “의원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천수, 왔는가,” 사나이가 다가오자 노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무슨 근심이라도?” “근심은 무슨, 자네야말로 근심이 크겠군.” 노인이 천천히 돌아섰다. “예, 네에, 걱정됩니다.” “자네답지 않군, 그렇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 원세 그놈은 사지(死地)에 갖다가 놔도 살아 나올 놈일세!” “저야 의원님 말씀을 믿지만, 그래도 걱정이 됩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 그런데 말이야, 이 시간에 날 찾아온 걸 보면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네. 그려,” “의원님!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뭘 말..

검투사의 아들 2021.10.10

검투사의 아들 12

지하 바닥에 내려선 순간,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원세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그렇지만 이내 흐릿한 지하 전경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앞으로 쭉 뻗은 통로는 2장 넓이였고, 통로 양쪽으로는 굵은 쇠창살로 가로막힌 감옥이었다. 이미 산 사람은 없을 것이란 말을 들었기에 감옥 안은 사실상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제발...” 감옥에서 눈길을 뗀 원세는 솜방망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횃불은 점점 꺼져 갔다. 겨우 흐릿하게 드러난 1장 반경 내의 사물들만 알아볼 수가 있었다. 앞쪽을 살펴본 원세가 이번엔 조심스럽게 돌아서서 계단 옆쪽과 뒤쪽을 살폈다. 그때 원세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아, 솜방망이,” 감옥에서 우측으로 제법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

검투사의 아들 2021.10.07

검투사의 아들 11

2장, 나는 광마(狂魔)다. 오후가 되자 맑았던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저녁부터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건너다 보이는 량산은 검은 괴물처럼 버티고 서서 봄비를 즐기듯 몸을 내맡겼다. 한 번씩 바람이 지나칠 때면 괴성(怪聲)까지 질러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휘이잉- 휘잉- 휘이잉--- 량산에서도 제일 험하다는 으스스한 계곡의 암벽이 봄비를 묵묵히 맞고 있었다. 계곡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암벽에 부닥칠 때마다 소름 끼치는 괴성을 질러댔다. 마치 죽은 자들의 원혼이 살아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흔들거리는 횃불에 동굴 정경이 드러났다.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있는 인골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울퉁불퉁한 암벽이 답답하다 못해 숨통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하동굴 속에서 한기를 몰고 온 비명 ..

검투사의 아들 2021.10.04

검투사의 아들 5

그 시각이었다. 웅—우웅- 우우웅--- 한 번씩 지하 감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원세는 굳게 닫힌 동굴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적어도 반 시진은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었다. 세상에 아들을 사지에 가두는 아버지도 있을까, 원세의 얼굴이 흔들거리는 횃불에 드러났다. 부릅뜬 두 눈은 충혈이 되었고, 일그러진 얼굴은 보기조차 딱했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한다거나 미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일그러진 얼굴엔 굳은 의지가 어렸고 눈에선 독기까지 흘렀다. “아버지! 아버지의 어깨와 등은 그 누구도 넘지 못할 태산 같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작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 또한 못난 자식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자는 아버지 말씀대로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겁니다. 백일이 아니라 일 년,..

검투사의 아들 2021.09.17

검투사의 아들 4

자정이 지난 시간임에도 은밀한 대화가 흘러나오는 곳이 있었다. 사람 접근을 불허한 곳, 후원의 한 전각 밀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쌍노!?” “회유해도 듣지 않는다면 이참에 죽이는 것이...” “그렇겠지, 면천을 시켜줄 수는 없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주인님! 천수와 계집은 죽이되 원세 그놈은 살려두십시오. 놈이 아비를 닮아 무골(武骨)이라 잘만 가르친다면 크게 쓰일 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쌍노!! 걸리는 것이 있다.” “제갈 세가와. 그리고 아가씨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놈을 귀곡부로 보내 살수 수련(殺手修練)을(殺手修練) 받게 하겠습니다. 제대로 된 살수가 탄생할 겁니다.” “역시 쌍노야,, 헌 데, 놈은 죽은 목숨 아닐까?” “주인님! 원세 그놈은 꼭 살아서 나올 놈입니다..

검투사의 아들 2021.09.16

검투사의 아들 2

소년이 아버지의 손에 끌려간 지, 한 시진이 지났다. 여기저기 등불이 내 걸린 장원은 적막이 감돌았다. 그때 한 허름한 전각인 와가(瓦家) 안에서 여인의 흐느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흑흑, 불쌍한 내 아들, 어쩌겠느냐, 부모 잘못 만난 탓인걸, 하지만 원세야! 너는 종이 아니다. 이점 명심해라. 그리고 아들아! 언젠가는 아버지께서 내력에 대해 다 말씀을 해주실 것이다. 으흑, 흑흑,” 흐릿한 불빛에 드러난 방안은 깨끗하긴 했다. 서책 몇 권이 놓여있는 책상 앞이었다. 한 여인이 흐느끼며 서책을 쓰다듬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상심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여인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뜯어볼수록 인자해 보였고, 비록 남루한 치마저고리를 입고는 있었으나 몸에서..

검투사의 아들 2021.09.11

검투사의 아들 1

연재에 앞서 밝혀둡니다. 본 작품은 1 ~ 2권 분량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매일은 아니고 2~3일에 1편씩 올리겠습니다. 검투사의 아들 – 1권 작가/썬라이즈 서장 나는 노예 검투사의 아들이었다. --- 세상을 향해 포효(咆哮)할 것이다. 무적(無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쟁취(爭取)할 것이다. 1장: 이별은 아프다. 봄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4월 중순, 한 쌍의 남녀가 야생화가 지천인 산등선을 내려오고 있었다. 16세 전후로 보이는 소년과 소녀였다. “원세야! 누가 뭐래도 나는 네 편이다.” 소녀가 걸음을 멈추며 작은 입을 열었다. 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파리하게 보이는 것을 보면 건강에 문제가 있음이었다. “아가씨, 저는 아가씨 종인 노옙니다. 아가씨가 저 때문에 야단맞으시면 전 정말로 속상합니다. 그러..

검투사의 아들 202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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