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인은 대박이가 사고를 당한 직후부터 간병을 했다. 그때부터 여인은 대박이의 소변과 대변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한 번씩 몸을 구석구석 씻겨 주었다. 여인은 간병인으로서 보다도 대박이를 자식처럼 여기고 간병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삼 년 동안 식물인간이,’
대박이는 지금 그것도 3년 동안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을 3년 동안 챙기고 씻겨 준 사람이 낯선 아줌마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남자로서 부끄러움도 느꼈다. 그렇다고 자신을 자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정말 내가 삼 년 동안 죽은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었다는 얘기잖아, 그 사고는 고등학교 일 학년 때였어, 그렇다면 지금은 대학 신입생이겠네, 뭐야, 뭐야, 이게 뭐야, 그래도 깨어난 걸 감사해야겠지, 삼 년 동안이나 식물인간이었다니,’
대박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을 꾹 내리감았다가 떴다.
‘그동안 할아버지는 어떻게 사셨을까? 아직도 뺑소니 범인을 잡겠다고 다니시겠지, 제길 나까지 할아버지 짐이 됐네.’
소년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몸이 회복되고 있다는 좋은 징조였다.
대박이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유추해 봤다.
별안간 생각하려니 머리가 아팠지만 계속 생각했다.
그러니까 10년 전이었다.
부모님이 뺑소니교통사고로 끔찍하게 돌아가셨다.
그때 할아버지는 의도적인 교통사고라고 말씀하셨고,
뺑소니 범인이 살인범이라고 확신하셨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살인범을 잡겠다고 나서셨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그런데 사랑하는 손자까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할아버지는 너무 놀라 기절하셨다가 깨어나셨다.
암튼 할아버지는 손자의 사건도 의도적인 뺑소니 교통사고가 아닌가, 의혹을 품으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손자를 살리겠다고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하셨다.
할아버지는 자식 내외를 교통사고로 잃고 7년, 손자마저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지, 3년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동안 할아버지가 겪으셨을 심적 고통을 그 누가 알겠는가, 그 누구도 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줌마, 왜 그래요.”
여인이 뭔가에 놀랐는지 별안간 씻기던 손을 멈췄다.
대박이도 의아하게 느꼈던지 따져 물었다.
“잠깐만, 어디 다시 보고...”
여인은 대박이의 왼쪽 가슴을 손으로 만지고 문질러가며 뭔가를 유심히 살폈다.
“어떻게 된 거지, 번개문양이 새겨졌잖아, 세상에 누가? 홍씨가 그랬을 리도 없고, 저절로 생겼나?”
“아줌마, 번개문양이라니요. 그게 왜요.”
“대박이 학생, 그게 잠깐만 손거울이 어디 있을 텐데...”
여인은 방을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대박이가 잘 볼 수 있도록 손거울을 가슴에 비춰줬다. 거울에 비친 것은 분명 번개 문양이었다.. 아주 선명하게 그것도 금색으로 직인이 찍히듯 대박이의 왼쪽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아줌마, 내가 잠잘 때 문신을 새긴 건 아니겠죠.”
“아니야, 어제 아침에도 아무런 문양이 없었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지워지지도 않던데,”
“괜찮아요. 일부러 문신도 새기는데 번개 문양이면 정말 멋지잖아요. 그러니 아줌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난 내가 몸에 상처를 낸 건가 싶어서,”
여인은 멋쩍은 표정으로 말하곤 몸을 씻기기 위해 수건을 다시 빨았다.
“참 이상하네, 누가 문신을 새긴 게 아니라면 저절로 생겼다는 건데, 이렇게 선명하고 멋지게 새길 수가 있냐는 말이야, 혹여 어떤 징표 같은 거 아닐까?”
대박은 깨어나서 처음으로 당한 일이 의문의 번개 문양이었다.. 분명한 것은 문득 든 생각이 어떤 징표 같다는 것이었다.
사실 번개는 천문기상의 중요한 현상의 하나로 하늘이 인간에게 내리는 계시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파괴성과 공포의 상징이며 하늘의 징벌을 의미하기도 하며, 특히 시작도 끝도 없다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인 우주의 근원과 힘의 상징을 의미하기도 했었다.
그 시각이었다.
홍 씨는 시신을 인계받고 있었다.
시신이라고 해봐야 흩어졌던 살점과 뼈를 맞춘 거지만,
그렇게 인계가 끝난 홍 씨는 장례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현 상황을 전했다.
사실 경찰에선 이번 사건을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상황으로 볼 때 불가사의한 사건임을 피력했다. 어떻게 시신이 부서지듯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국과수의 부검의들도 이런 사건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
불빛에 방안의 정경이 드러났다.
침대에 누워있는 대박이의 얼굴은 아직도 창백하다.
비몽사몽, 아니 악몽을 수시로 꾼 대박이는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간병 아줌마가 끓여준 미음도 더 달라고 말할 정도로 잘 받아먹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배고픔을 느끼게 되었음이었다. 그리고 팔다리에 힘도 느껴졌다. 뼈만 앙상하던 몸에 피가 도는지 힘줄이 꿈틀거리는 것도 느꼈다. 그야말로 교통사고 후, 3년 만에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계속
아이들 사랑이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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