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와 대박이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밑으로 갔다. 붙박이 긴 나무의자가 있어서 점심 정도 먹기는 딱 좋은 장소였다. 자리를 갖고 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너무 좋아서 깔개를 챙기는 걸 깜박했어요.”
“이렇게 마주 앉아서 먹으면 되지, 그런데 아줌마가 뭘 싸줬을까, 김밥은 기본이고, 불고기 냄새가 폴폴 나던데...”
“엄마가 등심을 찜으로 만들...”
“야 맛있겠다. 빨리 꺼내,”
“오빠는 으이그...”
“아 미안, 별안간 등심이 땅겨서 말이야,”
둘의 말싸움은 누가 들어도 정감이 있었다.
“오빠가 이렇게 서두르는 모습, 처음인 거 아시지요. 매사에 신중하고 배려가 깊었는데...”
살짝 눈을 흘긴 소라가 미소를 지었다.
“아 그랬구나, 요즘 내가 조급증이 생겼다. 그래도 우리 소라 공주님이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고맙다. 오케이,”
눈을 찡긋거리곤 엄지와 검지로 원을 그려 보이는 센스쟁이 대박이었다.
“오빠가 그러니까, 징그럽다. 그래도 오케이 접수!”
소라도 원을 그려 보였다.
“......”
안 여사의 음식 솜씨는 일품이다.
등심을 약간 도톰하게 저며서 미리 준비한 양념장에 담가 두어 시간쯤 숙성시킨다. 숙성시킨 등심을 꺼내 찜통에 깔고 그 위에 안 여사만의 양념장을 덧발라 약한 불에 찌면 등심 찜은 완성된다. 그 맛이 일품이었다.
사실 안 여사는 딸과 대박이가 어린이대공원에 놀러 간다는 말을 듣고 정말로 기뻤다. 꼭 남매가 놀러가는 것 같아서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자식들을 위해 맛나게 도시락을 준비할 때 흥이 절로 났다. 정말이지 날마다 오늘 아침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대박이는 소라가 챙겨주는 등심과 김밥을 맛나게 먹었다. 특히 등심은 소라가 먹여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었다. 소라는 엄마가 많이 먹이라고 했다면서 등심을 막무가내로 먹였고 대박이는 받아먹기만 했다. 아니 소라가 먹여주는 게 좋아서 제비 새끼가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듯 그렇게 받아먹었다. 등심 찜은 대박이가 먹어본 고기 맛 중에 최고였다.
점심을 끝낸 소라와 대박은 저수지를 끼고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길옆으로 매화와 벚꽃, 탐스럽게 핀 목련을 감상하며 걷는 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야릇한 기분이었다. 특히 탐스럽게 핀 흰 목련은 어머니 젖무덤을 떠 올리게 했다. 대박은 탐스럽고 뽀얀 어머니의 젖무덤이 생각나자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 너무 억울해하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대박이 걱정도 마시고요. 참 할아버지는 만나셨어요. 그런데 어머니, 할아버지가 저 때문에 으흑,’
“오빠 뭐해, 빨리 와! 우리 여기서 사진 찍자.”
“그 그래 소라야, 사진 찍어야지...”
대박이는 소라가 일깨우지 않았다면, 어머니를 생각하며 엉엉 울었을 것이었다.
“......”
소라는 스마트폰으로 쎌카를 찍기 시작했다.
사진 찍기에 시동이 걸린 소라는 멋진 배경을 찾아다니며 대박이의 독사진에 함께 찍기, 손잡고 찍기, 얼굴 맞대고 찍기, 업혀서 찍기, 등등 수 십장의 사진을 찍어댔다. 그동안 못 찍은 사진을 오늘 다 찍을 모양이다. 그래도 대박이는 소라가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했다. 사실 두 사람은 누가 봐도 한 쌍의 멋진 커플이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던 두 사람은 어느새 어린이대공원 입구까지 내려왔다. 시간도 많이 지난 오후 3시경이었다.
‘오늘 오빠 기분이 많이 풀린 것 같은데, 그동안 어떻게 견뎠을까, 나 같았으면 하루도 못 살았을 거야,’
소라는 대박이 오빠가 악몽을 꾸며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버텼다는 것을 잘 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몸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목숨을 부지했던 박 대 박,, 그 사실만으로도 대박이 오빠는 죽고 싶었을 것이라고 소라는 생각했다.
‘나는 오빠가 꼭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어,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겠지만, 오빠야, 앞으로는 너무 아파하지 마라, 오빠 곁에는 소라가 있을 거야, 그러고 보니까, 오빠하고는 천생연분인 것 같아, 우리가 한집에서 그것도 오빠 동생으로 살게 될 줄을 어떻게 알았겠어, 오빠, 이런 것만 봐도 우린 꼭 만나게 될 운명이었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오빠’
오늘따라 생각이 많은 소라였다.
아무튼 소라는 대박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부터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 마음이 측은지심인지, 동정심인지, 그런 것은 알바가 아니었다. 그냥 대박이 오빠가 좋았다. 그리고 몸살을 털고 일어나듯 꼭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소라야, 33번 타러 가자, 이리와,”
“응 오빠...”
빠방, 빠방,
휘휙,
소라는 셀카로 찍은 사진에 정신이 팔렸는지 신호등이 바뀐 줄도 모른 채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그때 외제 승용차가 달려오며 경적을 울렸다. 위기의 순간, 바람처럼 움직인 대박이가 소라의 허리를 껴안고는 건너편으로 피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상황이라 대박이를 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들이 뭘 봤는지 눈을 의심했다.
“소라야, 차 조심해야지...”
“어어 오빠 미안, 사진을 본다고...”
소라는 자신도 모르게 대박이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오빠 이젠 괜찮은데...”
소라는 안겨 있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사람들 눈을 의식해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풀었다.
“휴, 우리 소라 어디 다친 데는 없지...?”
대박이도 안았던 팔을 풀며 소라를 살폈다.
정말로 놀란 표정이다.
그런 때에 승용차 운전자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쌩하고 가버렸다. 그 승용차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대박이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가 사라졌다.
휴일엔 어린이대공원 앞은 인파와 차들로 들끓었다.
특히 승용차를 끌고 온 운전자들이 문제였다.
가족들과 함께 여럿이 타고 왔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젊었든 나이를 먹었든 애인인지 부인인지, 달랑 한 사람만 태우고 와서는 되레 주차 난리를 친다는 것이 문제였다. 또한 막말에 예의가 없기로도 홀로 운전자들이 더 많을 것이었다.
충!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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