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그 시각이었다.
서울 여의도에 자리한 77층의 대국 그룹 본사,
건물 입구 광장에서부터 음산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듯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활발하게 움직였다. 분명한 것은 건물 내부에 이승에는 있어서는 아니 될 그 뭔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음산한 기운의 출처를 찾아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기운의 강도가 점점 높아졌다.
음산한 기운의 출처는 건물 13층 한 사무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13층엔 대국로펌과 대국 그룹 건설부문 사장실로 나뉘어 있었고, 음산한 기운은 건설부문 사장실에서 강도 높게 흘러나왔다. 사무실은 대략 30평쯤 되었고, 여느 건설 CEO사무실과 별반 차이는 없었다. 문제의 음산한 기운이 생성될 만한 그 무엇도 사무실 내에는 없었는데,
그렇다면 비밀 공간,
그랬다.
사무실엔 비밀 공간이 있었다.
건설부문 사장 마 설 훈,
커다란 책상 위에는 분명 건설부문 사장 마 설훈이란 명패가 놓여 있었다. 건물 구조상으로 보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바로 사장 책상과 마주한다. 그런데 창문이 있어야 할 뒷벽에는 창문이 없다. 그렇다면 사장이 앉은 의자 뒤의 책장이 비밀 문일 가능성이 컸다. 역시 책장 밑으로 스물스물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딘 가에 비밀 문을 열 장치가 있을 것이었다.
똑, 똑, 똑,
그때였다.
노크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노크 소리는 아랑곳없이 비밀의 방 전경이 드러났다.
별다른 장치는 없었지만 무슨 의식을 치르기 위해 만들어 놨는지, 북쪽엔 제단이 있었고, 제단 앞에는 골동품으로 보이는 커다란 향로가 놓여 있었다. 향로엔 용광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군상이 양각되어 있었다.
그런데 향로에서는 야릇한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제단 앞엔 한 사나이가 부복해 있었다.
“염마왕이시여! 소인에게 암흑기(暗黑期)를 주도할 힘을 주소서! 이렇게 간청하나이다. 염마왕이시여! 암흑기를 주도할 힘을 주소서! 힘을 주소서! 염마왕이시여! 힘을...”
멍청한 놈!
별안간 고함이 들렸다 싶은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향로에서 솟아오르듯 괴인이 나타났다.
괴인은 바로 적발 노인인 염마 왕이었다..
“멍청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했지, 않았느냐!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찾는다면 네놈에게 나눠줬던 능력마저도 회수해 갈 것이다. 내 말 명심하고 기다려라!, 멍청이 무조건 기다려라!”
“하지만...”
“멍청아, 밖에 누가 찾는다. 난 가봐야겠다.”
슈우욱 슉--
연기처럼 적발 노인이 사라지자 고개도 못 들고 있던 사나이가 천천히 일어나 비밀 문을 나섰다. 어디를 어떻게 작동했는지 책장으로 되어있던 비밀 문이 자연스럽게 열렸다가 닫혔다.
“동창이가 왔었나? 부산 일은 잘 진행이 되고 있겠지,”
사나이는 마 설훈이란 명패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았다.
앉는 품새가 세상을 다 가졌다는 듯,
거만함이 하늘을 찔렀다.
그 시각이었다.
때는 10시 30분경 부산 시민공원,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이 공원을 찾았다.
대박이는 3년 만에 김민우라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중학교 동창에다가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에 입학한 절친이었다. 대박이가 사고로 입원을 하자 제일 슬퍼한 친구도 민우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도 못 알아보는 식물인간이었으니, 민우가 얼마나 슬퍼했을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민우는 한 달에 한 번은 병문안을 왔다가 갔다는 얘길 간병인이었던 아줌마에게 들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학생은 공부에 열중해야 한다.’
할아버지가 못 오게 말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2년이 지났다.
민우는 대박이의 전화에 정말 대박인지 의심부터 했다.
항간에 이미 죽었다고 소문이 났었기 때문이었다.
대박이는 분수대 옆에 앉아서 민우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변했을까,
못 알아볼까 봐 걱정이 앞서는 대박이었다.
“야 대박아! 이 짜식 많이 컸네.”
“어어, 네가 정말 민우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둥켜안았다.
두 사람은 성장기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것이 되었지만 대박이는 식물인간처럼 누워서 3년을 보냈다. 그런 대박이가 이렇듯 멋지게 성장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암튼 민우는 키 180이 넘었고, 대박이의 키와 비슷했다. 다만 대박이보다 뚱뚱해서 몸무게가 90kg 이상은 될 것 같았다. 미남은 아니지만 남자답게는 생겼다.
“야, 우리 무슨 말부터, 우선 네 얘기부터 들어보자, 아 참, 할아버지는 건강하시지,”
민우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는 지난달에 돌아가셨다.”
“뭐, 할아버지가, 나한테 참 잘 대해 주셨는데,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냐? 어디에 모셨고...”
마음이 아픈지 민우는 눈물을 글썽였다.
“할아버지는 시립공원묘원에 모셨다. 암튼 말이다. 할아버지도 기구하게 운명을 하셨다. 제길, 할아버지까지 열차와 박치 길 하실 게 뭐냐?”
대박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말이지 가정사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졌다.
“뭐라! 할아버지께서도 사고로,”
민우는 할 말을 잃었다.
세상에 대박이처럼 기구한 운명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대박이가 깨어났다. 이것만으로도 친구로서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대박이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민우였다.
“민우야, 우울한 얘긴 그만하고, 좀 걷자,”
대박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한참을 걸었지만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대략 20분쯤 걸었을까, 민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박아, 나는 부영대 경영학과다. 내가 공부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게, 너희 할아버지 때문이었어, 그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거든, 병문안 오는 시간에 공부에 열중하라고 말이야, 그래야 네가 깨어나면 기뻐할 거라고, 대박아 미안하다. 할아버지가 어떤 말씀을 하셨어도 병문안은 계속 갔어야 했는데, 할아버지가 얼마나 적적 하셨겠냐?”?”
민우는 대박이의 손을 은근히 잡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무튼 민우야,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만나자, 나도 할 일이 생길 거고, 너도 공부에 열중해야지,”
“넌 밀린 공부를 포기할 거냐?”
“때가 되면 고등학교도 마치고 대학교도 다녀야지,”
대박이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어라, 손아귀 힘이 센데, 그래도 나한테는 안 될걸,”
“아야, 그만해라! 우리 밥 먹으러 가자,”
“좋지, 자장면,”
대박이와 민우는 중학교 시절 자장면 킬러들이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었음에도 자장면을 시켜 먹었었다.
학생들이 자장면 킬러라는 별명을 그래서 붙였다.
대박이는 민우와 자장면을 곱빼기로 먹었다.
옛날 얘기를 해가면서 웃다가 울었다가 난리를 쳤다.
손님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관여치 않았다.
12시 30분,
민우는 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친구와 보낸 3년 만의 외출은 나름 즐거웠다.
친구와 헤어진 대박이는 딱히 갈 데가 없었다.
괜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헤어지고도 한참을 걸었다.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반겨줄 곳은 집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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