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아아아,
별안간 적발 노인이 고속열차의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대박이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괴인 할아버지 앞에서는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대박이었다. 그런데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대박이는 이빨만 으드득 갈았다.
“네놈은 앉아있을 자격도 없다. 그대로 서 있거라!”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주위는 고요했다.
바람도 멎었다.
두 사람은 예의 칼바위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박이는 서 있었고, 적발 노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인간이 적발 노인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나이는 대박이를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대박은 보지도 못했다.
사실 칼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고통이 수반될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나이는 잘 참아내고 있었다.
어쨌든 대박이는 오히려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적발 노인과 인간으로 보이는 남자를 쳐다봤다.
“괴인 할아버지, 저는 이만 보내주세요. 분명히 말씀을 드렸듯이 저는 괴인 할아버지의 제자나 수하가 되고 싶지가 않습니다. 제발 보내주세요. 할 일이 많습니다.”
“그놈 말 한번 잘했다. 나도 시간이 많지가 않다. 네놈은 무조건 이놈처럼 내 수하가 되어야 한다. 알겠느냐?”
적발 노인은 옆의 남자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말했다.
“자 잠깐만요. 그런데 괴인 할아버지, 저 아저씨가 수하면 저는 그냥 보내주시면,”
“이놈! 내 네놈을 좋게 생각했거늘 치도곤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에잇, 이래도 말을 안 듣나 두고 보자.”
적발 노인은 손을 들었다 내리기만 했다.
그런데도 한 줄기 푸른 빛살이 대박이의 가슴에 적중했다.
“으웩, 으 괴 괴인 할아버지, 저 저요, 정말 많이 힘듭니다. 이러다간 정신 줄을 놓을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그만 말씀하시고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로 힘이 들었는지 대박이가 헛구역질까지 해댔다.
“좋다. 네놈이 어떻게 할지 확실한 답을 주겠다면 일단 이승으로 돌려보내주마,, 알겠느냐?”
적발 노인의 눈빛이 푸른 안광으로 바뀐 것을 보면 어느 정도 화가 풀어졌음이었다.
“예,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보내, 끄응”
말을 마치려는 순간, 대박이는 정신을 잃었다.
***
똑똑똑
“오빠, 일어나, 친구 만나기로 했다며...”
노크 소리에 이어 소라 목소리가 들렸다.
“으으, 머리야, 또 괴인 할아버지 꿈을...”
똑똑똑
“오빠, 일어나, 오빠!!”
소라의 짜랑한 목소리가 멍한 정신을 일깨웠다.
“소라야 미안 들어와,”
소라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분홍색 잠옷 차림의 소라는 참으로 예뻤다.
“오빠, 오늘도 꿈을 꾼 거예요. 날마다 악몽을 꾸시면 어떻게 해요. 무슨 꿈인지 제가 대신 꾸고 싶어요.”
소라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악몽은 나만 꿔도 돼, 그런데 아까 뭐라고 했니?”
대박이는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며 웃어 보였다.
“오늘 친구 만난다고 했잖아요.”
“아, 내 정신 좀 봐, 오늘이 일요일이구나.”
“그래요, 일요일, 얼른 씻으세요. 엄마는 벌써 아침 준비 끝냈어요. 할머니는 식당 앞 청소하시고요.”
“내가 너무 늦잠을 잤구나, 앞으론 일찍 일어나야지,”
대박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소라는 밝게 미소를 지으며 방을 휘 둘러봤다.
소라의 눈에 이채가 반짝였다.
별안간 3년 전 꿈속의 오빠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그 눈빛, 불굴의 의지가 불타던 그 눈빛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소라는 꿈에 관한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말하게 된다면, 그 당사자인 대박이 오빠에게 얘기할 생각이다. 소라는 그 지옥 같은 장소에서 무시무시한 괴인과 싸웠던 오빠가 지금의 대박이 오빠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도인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동정녀(童貞女),
아직은 때가 아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소라였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사람, 어렸던 소라의 마음을 훔친 남자, 그것이 사랑이라면 첫사랑이다. 그것이 첫사랑이 아니어도 그 사람, 바로 대박이 오빠의 일이라면 무조건 돕고 싶은 소라였다.
사실 소라는 지난날 겪었던 힘든 일상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일상들을 기억하기에 지금의 안락한 삶을 감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행복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는 중이었다. 특별한 삶보다는 평범한 삶이 행복이라고...
암튼 소라는 자신의 인생이 아주 특별할 것이란 것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날씨도 좋은 데 나도 친구들과 놀러 갈까?”
3월 말로 접어들자 날씨는 완연한 봄이었다.
이미 개나리와 벚꽃은 활짝 웃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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