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거래했다.

악마와 거래했다. 11

썬라이즈 2021. 9. 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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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15,

오늘부터 일기를 쓰기로 했다.

사랑하는 손자 대박이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지 꼭 한 달째다. 의사 말로는 뇌사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의식이 없고 움직이질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미음을 먹이면 곧잘 받아먹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의사의 말과 깊은 잠에 빠진 것 같다는 간호사의 말에 위안을 삼았다.

우리 대박이가 깊은 잠에서 깨기만 한다면,

우리 대박이가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날 것만 같다.

2017316,

새벽에 산에 올라갔다.

천지신명께 우리 대박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마누라가 생전에 정화수(靜閑水)를(靜閑水) 떠놓고 비는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마누라가 손자를 살리려거든 기도를 하라는 계시 같았다. 그래서 날마다 천지신명께 빌기로 했다.

대박이는 오늘도 차도가 없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맘에 들었다.

2017317,

새벽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바둑 친구인 강 영감을 만났다. 뺑소니 범인은 잡았냐는 친구의 말에 못 찾았다. 됐냐!’ 화를 냈다. 사실은 자식 내외는 물론이고 손자의 뺑소니 범인조차 잡지 못하는 경찰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 친구에게 화풀이하고 말았다. 그래도 친구라고 강 영감은 툴툴거리곤 내일쯤 병문안을 오겠다고 했다.

오늘도 대박이는 차도가 없다.

2017318,

새벽기도를 마치고 내려와 간단하게 아침밥을 먹고 병원에 갔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할 얘기가 있다기에 얘길 나눴다. 오늘부터 간병은 물론이고 환자의 목욕은 그러니까 환자의 몸은 자신이 정성껏 씻길 것이니 걱정하지 말란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자신에게도 딸이 있다며 자식처럼 여기겠단다.

그동안 손자인 대박이 몸은 내가 직접 씻겨 줬었다. 암튼 아주머니는 손자 돌보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꼭 뺑소니 범인이나 잡아서 벌을 받도록 하란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감사하다고 몇 번을 말했다. 코끝도 시큰거렸다.

오늘도 대박이는 차도가 없다.

아니 차도가 있었다.

간병인 아주머니의 물수건 목욕을 받은 후에 대박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몸을 깨끗이 씻고 나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가 씻겼을 때보다는 시원했을 것이다. 암튼 보기에는 손자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2017, 315일부터 일기를 쓰셨단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아저씨 말씀처럼 꼬박 삼 년을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었다는 얘기잖아, 참말로 기막힌 얘기네. 그리고 아주머니는 삼 년 동안이나 날 간병을 했고, 그런데 할아버지와 괴인 할아버지는 정말로 무슨 약속을 하신 걸까?”

일기장을 읽는 대박이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아니 얼굴에 긴장감까지 어렸다.

자신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똑똑똑

오빠, 아저씨와 엄마 올라오셨어,”

그래 나간다.”

“......”

손님들은 다 가셨어요.”

대박이가 밖으로 나오며 인사했다.

모두 갔다.”

커피가 좋겠지요.”

홍 씨가 자리에 앉자 안 여사는 커피를 끓이겠다며 주방으로 갔다.

할머니 우린 들어가요.”

그래, 들어가자,”

소라가 할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가자 홍 씨가 말했다.

대박아, 그리로 앉아라!”

뭐 특별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아니지 특별한 일이지,”

그게 뭔데요.”

대박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 커피 마시며 얘기하세요.”

안 여사가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안 여사님도 그리 앉으세요. 이젠 한 식구나 진배없으니 무슨 일이든 의논을 해야지요.”

그래요. 아줌마, 앉으세요.”

“......”

세 사람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얘기는 대박이의 앞날에 관한 얘기들이었다.

학교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얘기에서부터 할아버지가 남긴 동산과 부동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였다. 그렇다고 재산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현재 예금 잔액은 거의 바닥을 보였고, 지금의 희망이네 분식집 건물이 재산의 전부였다. 그동안 생활비와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건물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액은 5천만 원이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홍 씨가 나서서 대박이를 돕기로 했고, 안 여사는 식당에서 번 이익금으로 대출금은 물론 생활비 일체를 책임지기로 했다.

아저씨, 아줌마가 대출금 문제와 생활비 일체를 책임진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요.”

네 말에 일리가 있긴 하지만 나는 식당이 잘만 운영되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

맞아요. 대박이 학생, 나도 생각한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따지고 보면 우리 가족이 큰 은혜를 입는 거야, 생각해 봐, 집은 공짜로 살지, 식당도 공짜로 장사해서 돈 벌지, 안 그래, 아마 세를 놓으면 한 3천만 원에 월 200만 원 이상도 받을 수 있을걸,”

안 여사는 오히려 감사함을 피력했다.

그렇게나 많이요. 그럼 아저씨 아줌마, 두 분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학교 문제는 제 뜻대로 하겠습니다. 때가 되면 복학을 하던지, 검정고시라도 보고 대학을 가든지 결정하겠습니다.”

공부는 다 때가 있는데,”

안 여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정히 그렇다면 네 뜻대로 해라, 그리고 대박아, 이젠 나도 자주 오지 못한다. 그동안 장사에 소홀히 했거든,”

저 때문에...”

아니다. 내가 할 도리를 한 것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너는 몸이나 잘 챙겨라, 완치됐다고 무리하지 말고, 그럼 나는 이만 갈란다.”

예 아저씨! 조심히 가세요.”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대박이와 안 여사는 밖에까지 배웅했다.

그동안 침대에 누워 눈인사만 보냈던 대박이었다.

이젠 두 다리로 당당하게 서서 인사를 건넸다.

대박으로선 감회가 새로운 순간이었다.

아주머니도 편히 쉬세요.”

대박이도 잘 자,”

다소 서먹했지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이렇듯 이상한 동거는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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