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대장부는 울지 않는다.
끼룩, 끼룩, 끼룩,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다.
그 높은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수천 마리의 철새 떼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는 아니지만 동남쪽이 확 트인 양지바른 산등성에 무덤 하나가 새롭게 세워졌다.
무덤 앞,
검은색 건을 쓴 두 사나이가 나란히 앉아 멀리 보이는 열두 그루의 적송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약관의 청년이었고, 그 옆에 묵묵히 앉아있는 사람은 백염이 덥수룩한 노인이었다.
그들은 한참동안 앉아있었으면서도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반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여간해선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노인이 청년의 어깨를 툭 쳤다.
“무룡아! 이젠 그만 내려가자, 내일은 암동에 가자꾸나.”
“아버지! 지금 제 머리가 많이 복잡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건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네 심정을 어찌 모르겠느냐. 많이 혼란스럽고 기막힐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겠지요. 그런데 아버지!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따로 있다하셨습니까? 그럼 좋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씀 좀 해 보세요!”
무룡의 격한 언성마저도 슬픔이 묻어나왔다.
무룡은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렀다.
처음엔 아버지 말대로 화장을 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모의 묘가 모셔져 있다는 말을 듣고는 생모의 묘소 옆에 어머니를 모시자고 우겼다.
결국 무룡은 아버지의 뜻을 꺾고 어머니를 생모가 모셔진 묘소 옆에 모셨다.
그러고 보니 새로 세운 묘 옆에 오래되었을 묘 한 기가 있었다.
묘비는 없었으나 누군가가 정성을 들여 돌봤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동안 만복철이 묘를 돌봐왔지만 묘를 돌보는 아버지를 무룡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만복철 부부는 무룡에게 그 어떤 빌미도 내 보이지 않았음이었다.
“무룡아!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인 게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사람에겐 근본이 있어야 한다지 않느냐! 뿌리 말이다. 나무도 뿌리가 튼튼해야만 잘 자란다. 그러니 너도 네 뿌리가 어떤 뿌린 지는 알아봐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아무튼 간에 근본인 뿌리는 찾아야 하는 게다.”
말이 되는지 어떤지, 뒤죽박죽이긴 했지만 만복철의 얘기는 일리가 있었다.
아버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무룡이 곰 발바닥처럼 억센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버지! 죄송해요. 그리고 아버지! 기운을 내셔야 합니다. 공연히 어머니 생각하시느라 몸을 상하시면 그때는 정말로 제가 화낼 겁니다. 아셨죠! 그만 내려가요.”
“이놈 봐라! 되레 큰소리는... 알았다 이놈아! 내려가자, 어쨌든 간에 네 어머니는 극락왕생 하셨을 게다. 생전에 많이 행복해하셨지 않느냐?”
“예 아버지! 분명 어머니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
부자(父子)는 손을 맞잡고 산등성을 내려섰다.
그들은 등성을 거의 다 내려와서야 아쉬운 눈길로 뒤를 돌아다봤다.
그때 막 서산으로 넘어가던 노을이 두기의 묘를 아름답게 치장했다.
마치 아름다운 무지갯빛 속에 떠있는 꽃가마 같았다.
***
무룡은 책상 앞에 앉아 들창으로 비쳐드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책상엔 책을 쌌던 보자기가 풀어진 채 그대로 놓여있었다.
얼굴에 굳은 신념의 의지가 여려있는 것을 보니 고심에 빠져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우선은 아버지를 잘 모셔야 한다. 오늘 보니 아버지도 많이 늙고 허약해지셨어, 아버지 말씀대로라면 생모를 죽인 놈들은 끔찍한 살인귀들이 틀림없어, 그만큼 가공할 무력을 지녔다는 얘기겠지...?”
무룡의 눈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일렁였다가 사라졌다.
“그래 원수를 찾는 것도 복수를 하는 것도 힘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제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수련에 임하는 거야! 그래 처음부터...”
꽉 움켜쥔 무룡의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혹시, 할아버지 서찰에 소연이를 부탁한다는... 소연이가 와 준다면 아버지도 모시고, 소연이 같은 며느리를 봤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셨으니,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겠지, 어머니도 하늘에서 우리 아들 참 잘했다고 기뻐하실 거야,”
무룡은 소연을 생각하자 다소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무룡아, 슬픔은 훌훌 털어 버려라!’
만 복철은 아들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미어졌다.
자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한탄했다.
만복철은 아들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게 자식의 슬픔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냥 무룡 자신이 슬픔을 이겨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지금 무룡은 어머니의 슬픔을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실 무룡의 슬픔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러나 무룡은 현명하고 의지가 강한 청년이었다.
슬픔에 빠져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등한시할 그런 위인은 아닌 것이다.
무룡은 맨 위에 놓인 서책을 집어 들었다.
책 겉표지에는 천기서(天氣書)라 쓰여 있었다.
무룡은 책장을 한 장씩 조심스럽게 넘겼다.
책에는 첫 장서부터 수많은 점들이 찍혀있었다.
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그대로 축소해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점 밑엔 점들에 대한 설명이 잘 기술되어 있었다.
다음 서책엔 퇴색되고 낡아서 의서(醫書)란 글씨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겉표지만 그럴 뿐 두툼한 책의 내용들은 보는 데 지장이 없었다.
무룡은 책을 빠르게 훑어본 뒤 세권 중 마지막 서책을 집어 들었다.
항마신공(降魔神功), 무룡은 책표지를 대하면서부터 긴장했다.
표지의 글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고,
어떤 강력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마신공(降魔神功)!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열 장 밖에 안 되는 내용이지만 그 심오한 뜻은 가히 천지를 뒤덮을 만한 것이었다.
무룡은 첫 장서부터 차근차근 뜻을 상기시키며 읽어 내려갔다.
그러는 동안 무룡은 몇 번이고 경이의 눈빛을 발했다.
사실 마공비록을 볼 때도 놀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무룡이 마지막 장을 넘기자 예의 서찰이 들어있었다.
봉투에 담기지 않은 맨 서찰이었다.
서찰을 집어든 무룡의 표정은 담담했다.
‘태궁 할아버지! 무슨 말씀을 하시던, 뜻에 거스르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처럼 무룡을 아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룡은 서찰을 펼쳤다.
“......”
무룡아!
어머니의 일은 애도(哀悼)로 대신한다.
너는 누구보다도 꿋꿋하리란 걸 나는 안다.
그동안 내가 네게 건네준 비급들은 하나 같이 소중한 비급들이다.
무엇하나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내가 염려한 것은 혹여 비급들이 악인의 손에 들어갈까 그것을 염려했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염려는 접었다. 너를 믿기 때문이다.
무룡아!
중원강호는 폭풍전야(暴風前夜)와 같다.
너는 무수한 인명을 구할 전사(戰士)가 되어야 한다.
마교의 발호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들을 막을 사람은 너뿐임을 명심해라!
무룡아!
소연이를 네게 맡긴다.
수일 내로 네게 보낼 것이니 잘 부탁한다.
끝으로 당부의 말을 남겨야겠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격분해서는 아니 된다.
뜻을 세운 자는 세 번을 참고, 세 번을 생각한 다음 행동으로 옮긴다고 했다.
명심해라!
그리고 사람들을 함부로 믿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을 낮추면 분명 하찮게 여기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런 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믿어서는 아니 된다.
뜻이 통하는 자는 자신을 낮출수록 스스로 따르게 되느니,
부디 네 앞길이 평탄하길 빈다.
태궁 서 (太弓 書)
‘폭풍전야는 뭐고 마교의 발호는 뭘 뜻하지, 신선 같은 할아버지가 뭘 두려워하시는 거지, 아무래도 할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긴 거야, 자영이의 행동도 이상하고, 일단 수일 내로 할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다. 태궁 할아버지! 할아버지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무룡의 눈에 굳은 의지가 일렁거렸다.
우- 우- 우-
밤이 깊었음을 알리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오늘은 월요일, 힘차게 출발하세요.
^(^,
응원은 모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긍정의 삶으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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