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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1권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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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철은 미시(未時, 하오 1시 30분) 경 산을 내려갔다.

무룡은 산등성까지 아버지를 배웅했다.

무룡의 눈에 멀어지는 아버지의 등이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옛날 같았으면 아버지의 등이 너무 넓고 단단해 보여 커다란 바위를 보는 것 같았었다.

그런데 초라하고 힘없는 노인의 등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솟았다.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그동안 이 못난 놈을 키우시느라 등골이 빠지셨음을 잘 압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소자 눈물만 납니다. 부디 아버지는 오래오래 사시면서 소자가 장가들어 아들 낳는 것을 꼭 보셔야 합니다. 아버지! 소자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오래오래 사신다고 약속은 꼭 해 주십시오. 며칠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혹여 소연이가 오면 잘 말해 주십시오.”

무룡은 중얼거리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암동으로 돌아온 무룡은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무릎 앞에는 작은 목합(木盒)이 놓여 있었다.

 

‘그래 목함을 열어보는 거야...’

무룡이 목합을 열자,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동전처럼 생긴 목걸이였다.

등불에 목걸이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무룡은 목걸이를 세세히 살펴봤다.

한쪽 면에는 정교하게 음각(陰刻)된 용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새겨져 있었고, 다른 면 위쪽에는 만무가(万武家)라 음각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엔 신필(神筆)의 솜씨로 음각된 만무룡(万武龍)이란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작은 목걸이에 이렇듯 절묘하게 글을 새기고 그림을 새겨 넣었다는 것이 무룡의 눈엔 신기(神技)로 보였다.

 

무룡은 목걸이가 자신이 만무가의 혈손임을 증명하는 신표임을 금방 알아봤다.

어떤 결심을 했는지, 서슴없이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리곤 목걸이 밑에 접혀있던 양피지를 펼쳤다.

 

이름은 만무룡(万武龍)!

만무가(万武家)의 유일한 혈손이다.

만무가(万武家)는 숭산(崇山) 운무곡(雲霧谷)에 있다.

 

아들아!

가문이 멸문 당할 급박한 상황에서 이 글을 쓴다.

아비는 부득이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밝은 세상에 나온 지 백일,

아비는 침통(沈痛)한 마음으로 너를 피신시켜야만 했다.

가문의 원흉들은 정도맹과 오대세가로 짐작된다.

아들아!

훗날,

그때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듣게 될 것이다.

멸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원한이 사무칠 것이다.

그렇지만 아들아!

원한을 복수로 갚지 말라!

정의를 저버린 자들에겐 그 대가만 치르게 하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아들아! 무너진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라!

 

아들아!

너를 키워주신 분들을 부모이상 공경하며 받들어 모셔라!

이것이 아비가 아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유언이다.

 

아버지 만천(万天)이 쓰다.

 

무룡의 손이 부르르 떨었다.

눈에선 일순 날카로운 빛이 일렁였다가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고 보니 어머님이 무공비급을 엄격하게 공부시킨 것은 후일을 기약한 안배였어, 어머니! 소자 무룡,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익힌 무공뿐만 아니라 다른 무공도 대성을 이루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살해하고 가문을 멸문시킨 살인귀들을 응징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님! 무룡은 어머님과 아버지의 교훈대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의로운 자가 되겠습니다.”

무룡의 얼굴은 일그러졌으나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무룡은 서찰을 읽었음에도 보기보단 침착했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울분은 가슴이 터질 듯 복받쳐 올랐고 피가 거꾸로 솟듯 들끓었다.

그렇지만 의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고 무룡은 스스로를 채찍질한 것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무룡은 서책을 집어 들었다.

서책의 겉장엔 만무보(万武譜)라 적혀있었다.

겉표지만 봐도 만무가의 비전무공(秘傳武功)이 수록된 비급임을 알 수가 있었다.

 

무룡은 가문의 비급인 만무보를 접하자 긴장되었지만 침착하게 만무보의 겉장을 넘겼다.

 

‘만무보를 접한 자는 만무가의 혈손임을 믿는다.’

겉장을 넘기자마자 눈에 들어온 구절이었다.

 

무룡은 글을 읽는 순간,

가슴속으로 찌릿찌릿 강한 전류 같은 것이 전해져 옮을 느꼈다.

아마도 천륜의 기운이 혈손을 알아본 것이리라!

 

만무보(万武譜)!

만무가의 가전(家傳)인 무공비급이다. 무공비급은 만씨 가문의 역대계보(歷代系譜)의 부록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역대계보를 읽어봤을 것이다. 고래(古來)로부터 국가나 가문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었다. 만무가(万武家)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무가도 십여 차례에 걸친 흥망성쇠를 거쳤다. 그러는 동안 대를 이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보완하여 오늘의 만무보의 정수를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만무보의 부록에 속한 이름 없는 무공이나 이는 만씨 조상들이 피로서 창안한 무공비급(秘笈)이니라! 만무가의 비전무공이 천하제일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단언하건대 이를 꺾을 무공 또한 없다고 본다.

 

무공을 대성하느냐 하는 것은 능력에 달려있다.

또한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

힘으로 명성을 얻지 말라!

덕(德)으로 명예와 명성을 얻어라!

 

후손은 명심하라!

만무가의 이름이 대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선조(先祖)들이 후손에게 명으로 남긴다.

“......”

무룡은 첫 장에 쓰인 글을 읽으며 아, 탄성을 발했다.

 

“분명한 것은 만무가를 시기한 자들이 만무가의 씨를 말리기 위해 저지른 만행일 것이야, 언젠가는 꼭 연유를 밝혀낼 것이다. 기필코 가문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자식도 한 열 두 명은 낳을 것이다. 그런데 역대 계보는 뭐지...?”

무룡은 잔뜩 긴장했던 얼굴을 펴고 다음 장을 넘겼다.

 

“이것은 허공답보(虛空踏步)인 허공만보(虛空萬步), 땅이 아니라 허공을 땅처럼 만보를 걷는 경공술이라니, 걸음걸이가 정말로 특이하군. 이럴 수가...? 익히기만 한다면 어떤 경공술보다도 뛰어날 것 같은데..”

 

무룡은 몇 가지의 경공술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허공답보(虛空踏步),

일명 허공만보(虛空萬步)는 다른 경공술 보다 한 수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대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이용한 경공술이 바로 기괴한 허공만보였던 것이다.

 

무룡은 열두 장으로 되어있는 비급을 모두 읽었다.

비급의 내용은 세 가지 내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째, 허공답보인 허공만보를 익히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둘째, 검법인 천로검결(天路劍訣)의 삼 초식이 그림과 함께 위력까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하늘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검법으로 보여준 경천(驚天)할 검법이었다.

감히 자신이 익힐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앞서는 무룡이었다.

셋째, 장법(掌法)인 풍천장(風天掌)을 익히는 법과 그 위력이 기술되어 있었다.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솟구치는 위력의 장법이었다.

주위 백장내의 모든 것들이 초토화가 되어 태풍에 날려가듯 한 순간에 사라지는 장풍이었다.

무룡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법(掌法)이었다.

 

무룡은 내용을 숙지한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 익힐지 상상하며 비급을 읽었다. 얼마나 신경을 집중해서 읽었는지 무룡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암동은 만복철이 밝혀놓고 간 횃불로 인해 낮과 밤이 없었다. 날밤을 꼬박 지새운 것을 보면 무룡이 얼마나 비급에 심취해 있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비급을 덮는 무룡의 눈엔 아직도 힘이 실렸다.

 

“가문은 멸문을 당했고, 생모는 못난 자식을 살리기 위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업둥이를 친자식 이상으로 귀히 여기셨고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렇듯 큰 사랑을 받은 소자! 뜻에 부합하는 자식이 되겠습니다.”

무룡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머님은 죽음 앞에서도 자식 걱정만 하셨다. 이젠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한다. 뜻을 이루기 위해선 힘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젠 절대로 울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눈물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내대장부다.”

무룡은 두 눈을 꽉 감고 상념에 잠겼다.

 

‘나는 원한을 풀어야 한다. 복수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기필코 해내야 할 일은 가문의 영광을 되찾고 후손을 번창시키는 일이다.’

어떤 중대 결심을 했는지 무룡이 두 눈을 번쩍 떴다.

 

무룡은 밤새 가부좌하고 있던 다리를 풀고 동굴 밖으로 나섰다.

새벽안개가 계곡 아래까지 잔잔히 깔려있었다.

동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른 해가 찬란한 햇살을 뿌려대댔다.

그러자 안개들이 앞 다퉈 도망가고 나무들이 하품을 해대며 기지개를 켰다.

 

무룡도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바라보며 양껏 기지개를 켰다.

새벽의 신선한 공기가 코를 통해 폐부 속으로 시원하게 들어왔다.

피로가 싹 가시듯 심신이 맑아졌다.

 

무룡은 한참 동안 당당한 자세로 서서 대자연과 더불어 맑은 공기를 마셨다.

무룡의 모습은 의연한 남아대장부였다.

----------계속

 

아직도 더위가 극성입니다.

모두들 건강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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