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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1권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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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이었다.

두 개의 등불이 암동(巖洞)을 환하게 밝힌 가운데,

무룡은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무룡 앞에는 대략 10권의 서책이 수북이 쌓여있었으며,

막 펼쳤는지 한 권의 서책은 무릎 앞에 펼쳐진 채 놓여있었다.

 

“무공을 익힌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전에는 쉽게 익힐 것 같더니, 처음부터 정식으로 익히려니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그러니까? 평생을 익혀도 대성하기가 어렵다고 했구나! 그렇지만 나는 꼭 해내야 한다. 먼저 가전무공(家傳武功)을 익힌 후에 다른 무공들을 섭렵할 것이다. 이미 머릿속에 갈무리된 것들은 시간 날 때마다 익히면 될 테고, 우선 경공술인 허공만보를 익히면서 검법을 익히자, 천로검결, 가히 하늘도 놀라게 할 만한 검법이다. 장풍인 풍천장 역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장법(掌法)임엔 틀림없다. 잘 응용하면 지공도 창안해 펼칠 수 있다고 하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야,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전까진 가전무공은 가능한 한 사용치 말아야 한다. 꼭 해낼 것이야! 그래 풍천장을 지공으로 활용하도록 창안하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잖아, 음, 이름은 풍천지(風天指)라고 부르자, 풍천지(風天指)... “

무룡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곤 침상에서 내려와 암동을 나섰다.

 

동굴을 나선 무룡은 중천에 떠오른 만월을 올려다봤다.

만상(萬象)을 비추는 만월이 오늘따라 무룡의 눈에 더없이 경이롭게 보였다.

그것은 태궁이 건네준 천기서(天機書)를 본 후부터일 것이었다.

무룡은 달뿐만 아니라 태양과 작은 별들까지,

하물며 대자연과 미물들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게 되었다.

 

천기서(天機書), 처음엔 별들을 보고 길흉화복이나 점치는 점술서(占術書)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천체(天體)의 오묘한 깊이를 헤아림은 물론이고, 천체(天體)의 움직임이 곧 대자연의 흐름이요, 인간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그 깊이를 다 터득한 것은 아니나, 인간이 대자연에 속한 나약한 존재란 것은 알아차렸다.

 

무룡이 대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게 된다면 무공수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공이란 것이 대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힘일 것이었다.

그 사실을 무룡은 서서히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한참 동안 만월을 보고 있던 무룡이 몸을 움직였다. 무룡은 허공만보에 기술 된 보법대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약간 구부린 듯 보였고 걸음걸이는 술 취한 사람이 껑충껑충 춤추듯이 걷는 희한한 보법이었다. 팔은 힘을 뺐는지 늘어진 것 같은데 약간 벌린 자세로 날갯짓하듯 흔들어댔다. 아주 천천히 걷는 것 같고 팔도 천천히 흔드는 것 같았으나, 정작은 보통 걸음걸이와 진배없었다. 그렇게 휘적휘적 계곡으로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매우 위태 위태해 보였다.

 

사실상 계곡은 사람들이 걷기에는 매우 위험천만한 곳이다.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무수히 깔려있는 데다가 구덩이까지 파였고, 듬성듬성 큰 바위도 박혀있었다. 그리고 나무뿌리며 낙엽이 쌓여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도 지천이다. 게다가 미미하던 경사가 급격히 가파르게 내려간 곳도 많았다. 그런데도 무룡은 은은한 달빛을 한 몸에 받으며 계곡을 타고 내려갔다. 한낮에도 계곡을 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겠지만, 무룡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도 달밤에 허공만보인 경공술 수련에 열중인 것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계곡 밑 산자락까지는 적어도 10리 길은 넘을 것이었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만월이 서태(西台)라 불리는 금수봉에 반쯤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무룡이 계곡 밑으로 내려갈 때가 자시(子時)가 지날 시각이었으니,

지금이 인시(寅時) 면 한 시진 이상 걸렸다고 봐야 했다.

시간으로 봐선 올라올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다.

 

그때였다.

무룡이 비지땀을 흘리며 계곡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말이야 한 시진이면 충분히 올라오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계곡이 험하긴 험했던 모양이었다.

계곡 밑 산자락까지는 10리 길은 넘었고, 게다가 밑으로 내려 갈수록 산을 돌아서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가파른 절벽을 타야 했으니,

이것도 무룡이 아니었다면 거슬러 올라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룡은 사력을 다해 계곡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 다다른 무룡은 그때서야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해댔다.

온몸은 땀으로 목욕을 했고 하얀 수증기가 김처럼 피어올랐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때였다.

“......”

 

 

언제 산을 내려왔을까?

무룡은 싸리문이 활짝 열려있는 초옥(草屋) 앞에 서있었다.

누가 뭐래도 집이 좋았다.

 

무룡은 무공수련을 끝마치자마자 대충 몸을 씻었다.

그리고 동굴을 위장시키곤 곧바로 아버지를 뵈러 내려왔다.

며칠 지나진 않았지만 아버지 걱정에 얼굴이라도 뵈어야 할 것 같아 부랴부랴 내려온 터였다.

막상 집 앞에 당도하니 가슴이 뭉클거렸다.

곧 어머니가 뛰어나올 것 같았고 아버지가 이 놈하고 호통을 치실 것도 같았다.

무룡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그런 때에 만복철은 싸리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숫돌에 도끼를 갈고 있었다.

무룡이 걸어오는 것도 보았고, 대문 앞에 서서 청승을 떠는 것도 보았다.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그렇지만 만복철은 결심했다.

자신이 약해져선 안 된다고......

 

만복철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들 앞에 나섰다.

무룡은 아버지가 불쑥 나타나자 얼른 고개를 숙여 눈시울을 훔쳤다.

눈물만큼은 아버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거기 계셨습니까?”

“이놈아! 인사고 뭐고 울고 싶으면 나 없는 먼 데서 울어라! 아무튼 내 앞에선 절대 울지 말거라! 이 아비는 너처럼 나약하지 않았다. 평생 나무를 해가며 살았지만 무엇 하나 잘못한 것도 부족한 것도 없이 살았다. 원도 없다. 네 어미도 그것은 알고 계실 것이다. 이젠 내 얼굴을 보았으니, 그만 돌아가거라! 이삼일 내로 식량을 갖다 주마!”

“아버지! 잠시만 있다가 가겠습니다.”

“이놈이, 아비가 말했지 않느냐! 그만 돌아가거라!”

“그래도 아버지!”

“무룡아! 아비는 결심했다. 네가 무공을 대성하기 전에는 집에 와도 보지 않기로... 그러니 아비가 보고 싶고 집에 오고 싶으면 하루빨리 대성을 이루어라! 알겠느냐?”

 

언제 만복철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완전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 정녕, 이러실 겁니까? 나보다도 아버지께서 저를 더 보고 싶어...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아버지는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제가 누구입니까, 만 무룡입니다. 만 무룡! 두고 보세요 아버지! 꼭 대성을 이루겠습니다. 그러니 한 번씩 집에 오도록 허락해 주세요. 아버지!”

무룡은 난생처음으로 아버지께 애원했다.

그렇지만 만복철은 아들의 애원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젠 아니다. 네가 무공수련을 모두 끝마치고 내려오면 그때는 내가 우리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란 말이다. 알았으면 그만 돌아가거라!”

만복철의 목소리는 엄엄했다.

“좋습니다. 아버지! 빨리 수련을 끝내고 내려오지요.”

“진즉에 그럴 것이지, 가봐라!”

 

만복철은 도끼를 들고 다시 숫돌 앞에 앉았다.

무룡은 그런 아버지를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무룡아, 이놈아! 그냥 우리 둘이서 살면 안 되니, 에이,’

만복철은 멀어지는 무룡을 흘깃 쳐다보곤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 심정을 이해합니다. 제가 떼를 쓴다면 아버지가 어쩌시겠습니까, 허나 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왜 아버지께서 이러시는지 잘 압니다. 아버지, 저는 꼭 아버지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일 년, 아니 육 개월이면 대성합니다.”

무룡은 입술을 깨물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왕 결심을 했으니, 오늘은 만화곡에 들려 할아버지에게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다고 인사를 드려야겠다. 소연과 자영도 만나 봐야지, 소연아! 너는 내 각시가 됐으면 좋겠다. 할아버지도 너를 우리 집에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너도 알고 있겠지, 그런데 자영이가 어찌 생각할지...”

문득 자영이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저었다.

 

“자영아! 너는 좋은 여자야, 얼굴도 예쁘지 마음씨도... 그래 마음씨도 예쁘긴 예쁘지, 자영아! 너는 좋은 친구이자 동생이다. 이런,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주접을 떨었네, 일단 할아버지한테 인사는 드려야겠지, 지금 가면 저녁에 도착할 텐데, 그래 수련 삼아 돌아오자, 그러면 되겠지,”

 

무룡은 만화곡으로 길을 잡았다.

이미 해는 서녘으로 기울기 시작한 시각이었다.

 

------------계속

 

오늘은 금요일, 힘차게 출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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