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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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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서두른 무룡 부자는 진시(辰時, 아침 8시) 경,

천지봉이 바라다 보이는 산등성을 오르고 있었다.

무룡은 등짐을 졌고 허리에는 손도끼를 찼다.

아버지인 만복철은 지팡이 겸 작대기를 들었다.

 

천지봉에 드리운 운무가 햇살에 무지갯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었다.

항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천지봉 정상이었다.

 

어렸던 무룡은 운무에 가린 천지봉이 하늘과 맞닿은 줄 알았었다.

그런데 천지봉이 하늘과 맞닿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아버지에게 듣게 되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어린 마음에 실망을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 말씀대로 천지봉 꼭대기에 별천지가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때 무룡은 언젠가는 별천지인 천지봉 정상에 꼭 올라가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지금도 그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

 

무룡은 한참동안 천지봉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런 무룡을 지켜보던 만복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룡아! 지금도 천지봉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게냐?”

“천지봉이요. 그럼요. 꼭 한번 올라가 보겠습니다.”

“나는 천지봉에 올라가 봤다는 사람은 이제까지 들어보질 못했다. 그러니 너도 공연한 생각 말고 어머니 말씀대로 힘을 키우는 데만 정진해라!”

“아버지! 어머님 말씀은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천지봉 정상엔 언제든 꼭 올라가 볼 겁니다.”

“네가 무공을 익히고 나면 그럴 수도 있겠지, 무공을 익히면 하늘을 난다고 하지 않느냐?”

“그런가요. 이젠 그만 가죠. 아버지!”

“거의 다 왔다. 이 능선을 돌아가면...”

만복철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능선 주위엔 철쭉과 진달래가 하나둘 몽우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싱그러웠다.

그러나 두 부자에게는 봄의 정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걸음만 재촉했다.

 

무룡 부자는 힘들게 계곡으로 내려섰다.

대략 20장 앞에 예의 절벽이 떡 버티고 있었다.

절벽 아래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동굴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고,

계곡 바닥은 크고 작은 돌들이 깔려있어서 걸음을 떼어놓기도 힘이 들었다.

 

“아버지! 조심하세요. 옛날 같지 않습니다.”

“이놈아! 아직은 끄떡없다. 앞 서거라!”

“그럼 먼저 갈 테니 천천히 오세요.”

“......”

 

무룡은 동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햇살에 의해 동굴 안을 둘러보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동굴 안은 특별한 것은 없고 마른풀과 낙엽들만 쌓여있을 뿐이었다.

옛날 그대로 작은 동굴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 말씀은 사람이 기거를 해도 된다고 했는데...’

무룡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굴 안을 세밀히 살폈다.

 

“험, 험, 무엇이 이상하냐?”

“아버지! 여기에 다른 동굴이 또 있습니까?”

“그놈 봐라! 어디 한번 찾아보거라!”

“아버지! 내가 찾으면 질문에 답해 주시겠습니까?”

“이놈 보게, 옛날에는 내기를 못했지만 지금은 상관이 없다. 입구를 찾는다면 무슨 질문이던 답해 주마,”

“하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찾겠습니다.”

“이놈이 웃기는, 옛날에는 대답하기가 곤란했지 않았느냐!”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일단 입구부터 찾고 얘기하지요.”

“어디, 네놈의 능력을 한 번 볼까.”

“......”

‘제 이의 동굴이 있다면, 그래 분명 공간이 있어야 동굴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공간의 울림은 다른 곳과는 다르다. 그렇지, 두들겨 보면 답이 나오겠군...’

무룡은 동굴 벽을 세밀히 살피며 허리에 차고 있던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동굴 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쿵! 쿵쿵! 쿵-!

무룡은 벽을 두들기며 귀를 바짝 기울였다.

 

“무룡아, 되었다. 네가 벽을 두들기는 것을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게다. 네 질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답을 줄 테니, 일단은 암동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만복철은 성큼 동굴 안쪽으로 들어서더니 암벽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곤 약간 튀어나온 돌을 미래 준비해 두었던 몽둥이로 툭툭 쳤다.

그러자 튀어나왔던 돌이 밀려들어가 안쪽으로 툭 떨어졌다.

 

만복철은 기묘하게 쌓아 올린 크고 작은 돌덩이 몇 개를 벽에서 빼냈다.

그리곤 제법 큰 바위덩이를 끄집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댔다.

그러나 힘이 부치는지 바위덩이는 움직이질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무룡의 얼굴에 잔뜩 수심이 어렸다.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네요. 그동안 소자를 얼마나 염려하고 사랑하셨는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앞으로 편히 모시겠습니다.’

무룡의 눈에 물막이 어렸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버지!”

“나이는 속일 수가 없나 보다. 허허허-”

 

만복철은 비켜서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무룡은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아버지에게 나약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바라는 것은 꿋꿋한 사내대장부가 되는 것이었다.

 

대장부의 눈물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거라!

착하고 정의롭게 살되 옳은 일을 할 땐 주저하지 말거라!

언제든 일하고 먹되 사람을 겉만 보고 평가하지 말거라!

 

만복철은 위와 같은 말을 나무를 하러 갈 때마다 무룡에게 들려줬었다.

좋은 말도 자주 들으면 짜증이 난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무룡은 한 번도 아버지 말씀에 토를 달아본 적이 없었다.

무룡은 아버지를 진정으로 존경했고, 어머니는 존경뿐만 아니라 경외하는 마음까지 가졌었다.

 

무룡은 아버지가 들어내려던 바위를 힘들이지 않고 들어냈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만 복철은 미리 준비해 온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횃불을 만들었다.

 

“들어가자!”

“예, 아버지!”

“......”

 

암동은 잘 정돈이 되어있었다.

곰팡내 같은 퀴퀴한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그만큼 암동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깨끗이 청소하고 손본 것은 죽은 조추월이 아들을 위해서 한 일이었다.

 

무룡은 암동에 들어서자마자, 암벽을 정교하게 파서 서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서가에 꽂혀있는 100여 권의 서책을 보고 정말이지 기함하고 말았다.

세상에 쉽게 믿어지지가 않는 일이었다.

 

‘이럴 수가? 어찌 사람의 힘으로 암벽을 파서 서가를 만들었지, 이곳에 기거했던 분은 대단한 분이었을 게야,’

무룡은 상상도 못 했던 일대 기인의 거처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거듭 놀랐다.

 

“무룡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좀 앉아라!”

“아버지! 대단하신 분이 기거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럴 것이다. 무룡아, 너와 이곳과는 인연이 깊은 것 같다. 너를 처음 발견했을 때가 생각난다.”

만복철은 옛날을 생각하는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무룡아! 지금부터 아버지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그리고 놀라지도 말거라! 네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다 하늘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도 잊지 말거라!”

“잘 알겠습니다. 소자, 조용히 경청하겠습니다.”

무룡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지난날 꿈 얘기에서부터 입을 연 만복철은 무룡을 업둥이로 키우게 된 사연을 소상히 얘기했다. 그러나 무룡의 친어머니였던 여인의 처참한 몰골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만복철은 이야기 내내 침착하게 차근차근 얘기했고 무룡 역시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언뜻언뜻 무룡의 얼굴이 일그러지기는 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소자는 어머님이 내 자식이 아니다하셨을 때 벼락을 맞은 듯했습니다. 아버지! 어찌 되었든 소자는 어머님과 아버지의 자식입니다. 그렇지요. 아버지! 흐흑,”

그동안 잘도 참았다 싶었는데 무룡이 눈물을 흘렸다.

“무룡아! 너는 내 아들이다. 그렇지만 네게는 친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아니 된다. 너희 친부모가 어떻게 화를 당하셨는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네 어머니는 무림의 여인이었다. 너를 이곳까지 데리고 들어온 것을 보면 아주 대단한 무공을 익히셨을 것이다. 그때 네 어머니의 몰골은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구나! 그래도 네게는 사실대로 들려줘야겠다.”

“아버지! 무슨 문제 있었군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

만복철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때의 상황과 여인의 처참했던 몰골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무룡에게 들러줬다.

무룡은 몸을 떨며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눈에선 분노의 불꽃이 일렁거렸다.

 

“어찌 그럴 수가? 한갓 여인을 그토록 처참하게...... 할 수가 있지요. 진정 제 어머니이셨습니까, 아버지! 정말 어머님께서 이 못난 자식을 살리시기 위해 그렇게 목숨을 버리셨단 말씀이지요. 으 아--”

무룡은 차마 도륙이란 말은 못 하고 이빨만 부드득 갈았다.

만복철은 울분에 치를 떠는 무룡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때 상황을 소상히 얘기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했다.

 

“무룡아! 오늘부터 너는 이곳에서 기거를 해라. 그리고 네가 직접 목합을 열어보고 그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거라! 아버지 생각은 네가 무공을 익혀 친부모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으면 좋겠다. 이 아비는 네가 너와 피를 나눈 혈육을 찾길 바란다. 이것은 아비의 진심이다.”

만복철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재차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기거를 하셨던 기인께서는 대단하셨던 분일 것이다. 그러니 이곳은 네가 무공을 익히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나는 까막눈이라 글은 모르지만 서적들이 모두 중요한 기서들 같구나. 그리고 저것들은 영약들...”

“그런데 아버지! 저 혼자 이곳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어찌 아버지를 혼자 계시게 하고 제가 이곳에 머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말씀은 하시지 마십시오.”

“무룡아! 아비의 말을 거역하는 것은 이 아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비 말대로 해라! 그리고 무슨 인연인지 아버지 성과 너의 친부성도 만가였느니라, 해서 네 이름은 그대로 만무룡으로 사용하면 될 것이다.”

 

무룡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무룡은 반각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만복철은 그런 무룡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버지 말씀이 다 옳다. 천륜을 저버릴 순 없지, 꼭 뿌리를 되찾고 자식을 살리기 위해 처참하게 돌아가신 생모의 원한도 풀어드릴 것이다. 아버지, 제 뿌리도 꼭 찾겠습니다.’

 

무룡이 눈을 떴다.

그러자 눈에서 의지의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무룡의 눈에 힘이 실렸고,

만복철은 아들이 일대 결심을 했구나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룡아! 결심을 했느냐?”

“네 아버지! 그렇지만 아버지, 제가 누군지, 혈육을 찾더라도 저는 지금의 만무룡입니다. 그리 아십시오. 그리고 아버지, 칠일에 두세 번은 집에 다니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된다면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좋다. 좋아, 그렇게 해라. 그런데 말이다. 다니러 와서는 자고 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아버지!”

허허허! 하하하!

부자는 그냥 좋았다.

서로 손을 맞잡고 마음껏 웃었다.

암동이 쩌렁쩌렁 울렸고 서재의 책들이 들썩거렸다.

이렇게 두 부자는 슬픔을 가슴에 묻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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