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7화

썬라이즈 2023. 8. 19.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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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룡이 집에 돌아온 시각은 술시(戌時, 저녁 7시 30분)경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싸리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기둥엔 불이 환하게 밝혀진 등이 걸려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그곳에서 자고 올 줄 알았는데, 들어오너라!”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

무룡은 방으로 들어서며 아버지 표정부터 살폈다.

그리곤 흐릿한 불빛에 더욱 창백해 보이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음, 오늘밤을 넘기기가 어려울 듯싶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만복철이 힘없이 말했다.

“예! 그런데 어찌 저를 만화곡으로 보내셨어요!”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네 어머니가 말하는 바람에... 어쩌겠느냐! 네가 어머니 마음을 이해해 드려야지...”

“어머니! 어찌 소자를 불효자로 만드시려 하셨습니까? 소자는 너무 속상합니다. 어머니, 흑, 흑--”

무룡은 어머니의 갈퀴 같은 손을 붙잡고 흐느꼈다.

이를 지켜보는 만복철의 눈에도 물막이 어리더니 이내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우리 아들 왔구나, 그래 선인께서는 뭐라 하시더냐?”

퀭한 눈을 힘겹게 뜬 조추월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어머니! 그것이 무에 중요해요, 얼른 일어나셔야 지요.”

 

무룡은 정말이지 화가 났다.

얼마나 자식을 끔찍이 여겼으면 자식이 슬퍼하는 것조차 걱정을 하셨을까,

그리고 임종도 못 보게 하셨을까 생각하니 목이 메었고 설움이 복받쳤다.

 

조추월의 몰골은 정말로 말이 아니었다.

비록 이불을 덮고는 있지만 몸은 장작개비처럼 말랐을 것이다.

퀭하니 들어간 눈과 튀어나온 광대뼈, 홀쭉한 얼굴만 봐도 어떤 몰골일지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무룡아, 선인께서 뭐라... 그렇지 서찰을 보냈겠구나, 어서, 서찰을 읽어 보거라, 어서, 으음-”

조추월은 힘들게 입을 놀렸다.

“알았어요. 어머니,”

무룡은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설움을 억지로 참아냈다.

 

‘무슨 서찰이었을까? 어머니가 답신을 기다리신 것을 보면 분명 나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을 텐데...’

 

무룡은 고개를 갸웃거리곤 할아버지가 건넨 보퉁이를 풀었다.

세 권의 서책과 그 위에 한 통의 봉서가 올려져 있었다.

무룡은 봉서(封書)를 뜯고 내용물을 꺼내 들었다.

 

“어머니! 서찰을 읽겠습니다.”

“그래, 어서 읽거라!”

무룡은 어머니 옆으로 바짝 다가앉아 서찰을 펼쳤다.

 

무룡 모친 전(武龍 母親 前)!

무룡의 일은 초심(初心)대로 하십시오.

훗날 무룡의 손에 강호평화가 달려있음입니다.

이점 유념해주시길 바라며 한 가지 부탁을 하고자 합니다.

손녀인 소연을 보낼 것이니, 어여삐 받아주시길 빕니다.

뵙지 못하고 글로 대신합니다.

극락왕생(極樂往生)하소서!

태궁 배상(太弓 拜上)

 

무룡은 목소리를 크게 하여 서찰을 읽었다.

조추월은 무슨 힘이 남아있었던지 무룡의 손을 꼭 쥐곤 빤히 쳐다봤다.

그런 조추월의 눈에 일순 생기가 감돌았다.

 

“무룡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거라!”

“예, 어머니! 말씀하세요.”

조추월은 무룡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입을 열었다.

무룡은 어머니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바짝 긴장했다.

만복철도 긴장했는지 몇 번 마른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무룡이 일곱 살이 되던 해였을 것이다.

조추월이 무룡을 앉혀놓고 심각하게 들려준 얘기가 있었다.

 

‘무룡아! 네가 어른이 되면 꼭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그때까지는 공부에만 전념해라. 아는 것이 힘임을 있지 말거라!’

무룡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궁금해하며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말씀을 떠올렸다.

 

“무룡아! 너는 우리 부부의 친아들이 아니다.”

“어머니! 그게 무슨--?”

“무룡아! 어머니 말씀을 끝까지 듣거라!!”

만복철이 엄엄하게 한 소리했다.

조추월은 마른 입술에 있지도 않은 침을 바르곤 재차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무룡아, 너에 대한 신세 내력은 아버지가 일러주실 것이다. 절대로 경거망동하거나 분개하지 말거라! 모든 일엔 선후가 있는 법,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생각해라! 때가 될 때까지는 절대로 나를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이 어미의 마지막 부탁이다. 부디 우리 아들 앞날에...”

조추월은 끝내 말끝을 맺지 못하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승을 하직한 것이었다.

 

“어머니! 걱정 마십시오. 소자! 어머니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어머니!”

무룡은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앞에 통곡도 못한 채 손만 부들부들 떨었다.

“어머니! 주무세요. 힘이 드십니다.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해주세요, 으으- 어머니--”

“무룡아! 이러면 안 된다. 네 어미는 행복하게 눈을 감으셨다. 보거라, 웃고 있지 않느냐!”

“아버지! 으아, 으아앙, 흑흑, 엉엉--”

급기야 무룡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무룡은 아버지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잠시 자식의 등을 두들기며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던 만복철,

가만히 무룡을 떼어놓곤 마누라의 얼굴을 이불로 덮었다.

그때서야 만복철의 두 눈에도 물막이 어리더니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여자 조추월!

세상에서 제일 마음씨가 고왔던 여인 조추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어머니 조추월!

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__________계속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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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은 모두에게 큰 히이 됩니다.

긍정의 삶으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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