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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1권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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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이었다.

만화곡엔 수상한 인물들이 들이닥쳤다.

일견해도 예사인물들이 아니란 걸 대번에 알 수가 있었다.

 

흑색무복을 날렵하게 차려입은 30여 명의 인물들이 초막 앞에 늘어서서 흉흉한 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사나이들은 하나 같이 검을 들고 있었으며 살인수업을 받았는지, 몸에선 날카로운 살기와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들 흉흉한 자들이었다.

 

사나이들 앞엔 노소(老小)가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일견 하기에도 노소는 보통 인물들이 아니었다.

노인은 오 척 단구(短軀)에 청포를 입고 있었으며 짧은 수염과 머리는 붉었다.

게다가 눈까지 뱁새눈인데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청년은 바로 천태일이었다.

 

초막 안, 태궁과 소연 그리고 자영이 탁자 앞에 앉아있었다.

소연은 겁에 질린 얼굴로 할아버지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자영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할아버지! 어쩌면 좋아요.”

“뭘 어째, 나가서 만나보면 알 거 아냐?”

소연이 나서자, 자영이 톡 하고 쏘아붙였다.

“시끄럽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태궁이 눈을 떴다.

 

“태궁은 어서 나와 교주의 교지를 받들라!”

카랑카랑한 일갈이 초막을 흔들었다.

“알았다. 잠시만 기다려라!”

밖에다 대고 날카롭게 일갈한 태궁의 눈에서 일순간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가 사라졌다.

 

“소연아! 자영아! 이 할아비는 놈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진작 놈들에게 복수의 칼을 갈았어야 했다. 이제 와서 놈들에게 굴복할 수는 없다. 너희들은 비밀 통로로 도망쳐 무룡을 찾아가거라! 나중에 내가 찾아갈 것이다. 시간이 없다. 어서--”

“할아버지! 어떻게 저희들만...”

소연은 울상이었다.

“할아버지! 저는 남겠어요,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잘 알고 있는데, 이대로 도망을 칠 수는 없지요, 이 두 눈으로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똑똑히 봐야겠어요. 그러니 저 보고 도망치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자영의 눈에서 독기가 뿜어졌다.

“무어라! 할아비 명을 거역하는 것이냐!”

태궁이 눈을 부라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자영은 눈을 똑바로 뜨고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워요. 말은 안 했지만, 저들이 누구 에요. 할아버지 자식과 아내를 죽인 원수들이에요. 나에겐 부모님과 할머니를 죽인 원수들이고요. 그런데 이제 와서 또 도망을 쳐요. 그럴 수는 없지요. 죽이려면 죽이라고 하세요. 그렇지만 할아버지! 언니는 보내세요.”

“자영아! 나도 남을 거야,”

소연은 울먹이면서 자영의 손을 잡았다.

 

태궁은 자영의 힐난을 묵묵히 들었다.

그렇게 두 손녀를 지켜보던 태궁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자영아! 이 할아비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한다. 좋다. 자영이 너는 남거라! 소연아! 너는 빨리 이곳을 떠나거라! 이미 무룡에게 네가 갈 것이라고 얘기를 해두었다. 그리고 소연아! 무룡에게 꼭 전해라, 경거망동하지 말고 몸조심하라고, 어떻게 해서든 무공을 대성하여 뜻을 펼치라고 알겠느냐?”

“할아버지! 자영아! 흑흑, 흑--”

“바보같이 울긴, 잘 가 언니! 빨리 가,”

자영은 무룡에게 안부를 전하려다 입을 닫았다.

“어서 떠나거라!”

태궁이 소연의 손에 작은 보퉁이를 건넸다.

“할아버지! 저도 남으면 안 돼요.”

“소연아, 곧 찾아갈 것이다. 그러니 어서 떠나라!”

“으흑, 할아버지...”

소연은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태궁은 탁자 옆에 세워 두었던 검을 집어 들었다.

그때 대갈이 들려왔다.

 

“태궁! 나오지 않으면 내가 들어갈 것이다.”

“곧 나갈 것이다. 소연아! 어서 뒷문으로...”

태궁은 밖에다 일갈하곤 소연을 쳐다봤다.

“할아버지! 자영아! 그럼...”

“......”

소연은 눈물을 흘리며 뒷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태궁은 초막을 나섰다.

자영이 독 오른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태궁! 오래간 만이다. 한 오십 년은 되었겠지, 그대도 많이 늙었으이, 그런데 태궁! 교주께서 특별히 그대를 초빙하셨다.”

“귀마(鬼魔)! 네놈이 아직도 살아있었구나! 네놈이 어떤 짓거리를 했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태궁이 싸늘한 눈길로 단구의 늙은이를 노려봤다.

“태궁! 말을 삼가라! 우리 마교(魔敎)는 명령엔 무조건 복종이다. 그것은 너도 잘 알 것이 아니냐? 따지고 보면 태궁, 너야말로 명령에 따라 살인을 밥 먹듯이 저지른 장본인이다. 나 역시도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다. 그리고 교를 배신한 것은 바로 너다. 교를 배신한 자는 끝까지 추적해 척살한다는 것을, 네가 누구보다도 잘 알 터, 날 원망치 말라!”

“......”

귀마란 늙은이의 말에 태궁의 얼굴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얼마나 울화가 치밀었으면 입고 있는 장포가 바람도 없는데 펄럭거렸다.

 

‘으, 내 어찌 저런 인간들의 마수에 걸려 씻을 수도 없는 죄악을 저질렀는지, 정말이지 후회가 막급이다. 그래, 오늘 내 생에 종지부를 찍자! 자영아! 이 할아비를 원망해라!’

태궁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귀마!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미 나는 교를 떠났고, 이렇게 숨어서 살고 있다. 그러니 옛날 정리를 생각해서 그냥 돌아가 주길 바란다. 이것은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것이다.”

“클클- 좋다, 그렇다면 한 가지 제의를 하겠다. 이미 손녀에게 얘길 들었겠지만, 이런 인연도 기막힌 인연일 터, 네 손녀와 교주의 손자가 혼인하는 것을 허락해라! 그리고 마공비록을 내 놓아라! 그렇게만 해 준다면 네 손녀만 데리고 조용히 돌아가겠다.”

“무엇이라! 자영아!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

태궁의 눈에 살기가 일렁였다.

 

사실 태궁은 자영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헌데, 그 당사자가 천무강의 손자라는 말에 하늘이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 놀라셨지요. 그래요. 천 공자와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니 혼인을 허락해 주세요.”

자영은 슬픔이 복받쳤지만 쌀쌀맞게 말을 내뱉었다.

자영은 복수를 하기 위해선 순순히 응하는 길뿐이라고 생각했고,

아주 독하게 마음을 먹었음이었다.

 

“태궁! 손녀도 좋다고 말했으니,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겠지, 마공비록만 내놓아라! 그것은 마교의 천년비록이니라!”

“마공비록은 교를 떠나왔을 때, 곧바로 불태워버렸다.”

“무엇이 어째, 마공비록을 불태웠다.”

“그렇다. 하지만 귀마! 내 손녀가 원하는 일이라면 막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만은 용서할 수가 없다.”

“......”

태궁이 마공비록을 없앴다는 말이 떨어지자,

옆에 서 있던 천태일이 뒤에 서 있는 자들에게 은밀히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사나이들이 소리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부는 초막 안으로 숨어들었다.

“무엇이라, 마공비록을 불태운 것도 부족해 이번엔 나를 어쩌겠다고...”

“귀마! 너와 나와의 은원은 청산을 해야지,”

창--

태궁은 검을 뽑아 들고 귀마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태궁은 지금 소연이가 도망친 것을 놈들이 눈치챌까 그것을 염려했다.

놈들은 소연이가 도망친 것을 곧 알아챌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연이의 뒤를 쫓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태궁으로선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할아버지, 후일을 생각하시는 것이...’

자영은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일단 일을 수습한 뒤에 복수를 하던, 무슨 대책을 세워도 늦지 않다고 자영은 생각했다.

자영으로선 할아버지가 죽기를 작정하고 나선이상 말릴 수도 없었다.

 

“태궁! 정녕 죽기를 작정한 것이냐?”

“귀마! 나서라! 긴 말은 하고 싶지가 않다.”

“좋다, 정히 죽기를 원한다면 죽여주지, 덤벼라!”

 

장내는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태궁과 귀마는 3장을 격해 마주 서서 서로를 노려봤다.

두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피 냄새,

얼마나 가공스러운 것인지 자영은 5장 밖으로 물러서야만 했다.

천태일도 3장 밖으로 물러났고, 그 주위론 사나이들이 에워쌌다.

 

태궁은 검을 수평으로 하여 몸을 낮췄다.

귀마는 기마 자세를 잡고 양팔을 휘둘러 장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그러자 태궁과 귀마의 몸에서 뭉클뭉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흑마살검(黑魔殺劍)”

“독마장(毒魔掌)”

태궁의 입에서 대갈이 터진 순간, 귀마도 대갈했다.

아! 이럴 수가...?

미풍도 없던 장내가 회오리바람에 휩싸인 듯 흙먼지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 와중에 태궁은 2장 높이로 날아올랐고, 귀마도 뒤질세라 마주 날아올랐다.

흙먼지 속에 두 사람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일견 하기에 두 마리의 용이 어우러져 싸우는 그런 모습이었다.

 

“흑 마 살 검!”

“독 마 장!”

2장 높이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용의 울음소리 같은 포효가 재차 들렸다.

우- 우--

번쩍-

쿠쿠쿠쾅-

지진이 일어난 듯 만화곡이 들썩였고, 초막이 내려앉았다.

그것뿐인가...?

방원 5장 이내의 모든 것들이 빨려 들어가듯 회오리 속으로 말려들었다.

그 여파에 자영은 모로 쓰러져 입가에 피를 흘렸고 천태일은 그런 자영을 부축했다.

 

너무도 엄청난 광경에 사나이들도 멍청히 서서 넋을 놓고 있었다.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 같던 먼지들이 차츰 가라앉았다.

멀찍이 떨어졌던 사나이들과 천태일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 자영도 장내로 다가서며 주위를 살폈다.

 

장내로 다가가던 인물들이 일시 걸음을 멈췄다.

아! 그들은 확연히 드러난 장내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내의 중앙이 폭 1장의 넓이로 움푹 파였다.

그 구덩이 안엔 태궁이 피를 연방 게워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반면 귀마는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끔찍하게 부상을 당한 두 노인,

얼마나 독한 인물들인지 깊은 부상을 당했음에도 신음소리하나 흘리질 않았다.

단 두 수에 벌어진 끔찍한 결과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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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마무리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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