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2권 1화

썬라이즈 2023. 9. 2.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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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2권

 

 

1, 운명의 만남

 

 

어둠이 깔린 계곡으로 밤안개가 자욱하게 몰려들고 있었다. 계곡을 잠식한 밤안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 서서히 능선으로 기어 올라왔다. 수비대 병사처럼 능선에 늘어선 바위들도 밤안개를 저지할 수는 없었다. 띄엄띄엄 보초를 서던 나무들은 부들부들 떨다 숨을 죽였다. 만화곡에서 20리쯤 떨어진 험준한 능선이었다.

 

밤안개에 점령당한 능선은 사위를 분간키 어려운 어둠 속에 묻혔다. 그 어둠 속, 흐릿한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무룡아, 난 어떻게 해, 이럴 줄 알았다면 자영이처럼 무공이라도 배워 둘걸,”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기척이 들렸다.

흐릿하게 드러난 물체는 바위 옆에 웅크리고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연이었다.

 

소연은 여인에게 예의범절이 중요하다는 할아버지 말씀에 따라 예의범절은 배웠으나 무공은 배우지 않았다. 그러나 자영은 예의범절도 좋지만 무공을 배우겠다며 할아버지에게 떼를 썼고, 경공술과 장풍, 그리고 약간의 호신술을 배웠다. 소연은 자신도 무공을 배웠다면 이 고생도 안 하고 벌써 무룡을 만났을 거라고 후회를 했다.

 

축축한 바람이 능선을 핥으며 지나갔다.

비 냄새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자욱했던 밤안개가 줄행랑을 치자 비릿한 냄새가 후각을 심하게 자극했다. 들짐승들의 분비물 같은 역한 냄새였다. 그리고 인간의 몸에서 풍기는 소름끼치는 살기까지 느껴졌다.

 

휘이잉-

바람을 타고 나타난 것일까, 검은 인영들이 능선으로 풀풀 날아 내렸다. 그 순간 살기로 인해 머리가 빳빳이 곤두섰다. 검은 인영들의 몸에선 죽음의 냄새가 확확 풍겼다.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그것도 험한 능선을 날아다니듯 휙휙돌아다녔다. 이것만 봐도 대단한 무위를 지닌 자들이 분명했다. 대략 십여 명은 넘어 보였다.

“......”

내 코는 계집의 냄새라면 귀신같이 맡는다. 여봐라! 이 근처다. 주위에 계집이 있다. 찾아라!”

! 대두!”

 

살기 어린 싸늘한 일갈이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검은 인영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이를 어째, 할아버지! 무룡아! ~ 어쩌면 좋아, ...’

 

소연은 눈앞이 캄캄했다.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렸고 위기는 점점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젠 도망갈 여력도 없었다.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라 여겼다. 소연은 두 눈을 꼭 감고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천신님! 살려만 주신다면 시키시는 일은 무엇이든 다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소연은 얼굴을 무릎에 파묻은 채 계속 빌었다.

 

천신님! 살려만 주세요. 천신님!’

 

너를 살려주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하겠느냐?’

,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천신님!’

분명 네 입으로 약속을 했으렷다.’

네 에- 누구 세 웁,”

! 죽고 싶으냐! 가만히 있어라!”

 

언제 나타났는지 한 인영이 소연 앞에 나타났다. 소연은 자신의 기도에 천신이 화답을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눈을 뜬 순간 코앞에 버티고 앉은 인영을 보고 기겁했고, 인영은 급히 소연의 입을 틀어막았다. 소연은 그때서야 놈들과 같은 패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 숨도 크게 쉬지 말거라!”

 

인영이 입에서 손을 떼며 속삭였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대략 33장 거리까지 검은 인영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이를 알아챈 사나이가 왼손으로 소연의 입을 다시 틀어막았다. 그리곤 언제 꺼냈는지, 오른손으로 무엇인가를 살래살래 뿌려댔다. 마침 바람도 다가오는 검은 인영 쪽으로 불고 있었다.

 

이게 뭐야! 제기랄, 멧돼지 새끼들이 사나? 냄새 한번 지독하다. ! ! 이봐! 이쪽엔 없다.”

 

검은 인영의 목소리가 소연의 귀에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여왔다..

 

검은 인영이 멀어지자 사나이가 소연의 몸에 무엇인가를 마구 발랐다. 소연은 냄새도 냄새지만 사나이가 엉큼한 짓거리를 하는 줄 알고 발버둥을 쳐댔다.

 

지금 살았다고 생각하는 게냐? 가만있어라! 너를 겁탈하려고 했다면 내 손가락 하나에 너는 황천을 몇 번이나 갔다가 왔다가 했을 것이다.”

아파요. 아이고 냄새야! 그럼 이게....”

그렇다, 멧돼지 응가다. , 더럽냐?”

그럼 안 더러워요.”

이것 봐라! 살려줬더니 말대꾸까지, 이것아! 너는 응가 안 하냐?”

저기--”

신경 쓸 것 없다. 네 몸에서 나던 분내도 없어졌고, 곧 비도 올 것이고, 놈들도 갈 것이고...”

사나이는 놈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후드득, 후두득

사나이 말처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이젠 비까지, --”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귀청을 찢는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수색하던 검은 인영들이 모여들었다.

 

부르셨습니까?”

오늘은 이만 철수를 해야겠다. 이 밤엔 계집도 움직이질 못할 것이다. 가자 원로께서 기다리신다.”

“......”

 

숨 몇 모금 들이쉬는 사이 검은 인영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인영들이 사라진 직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봄비치 고는 제법 굵은 빗방울이었다.

 

가자, 우리도 비를 피해야겠다.”

~”

 

소연은 말 잘 듣는 어린애처럼 대답했다.

사나이와 소연은 바위틈바구니에서 기어 나왔다.

사나이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소연은 사나이를 따라 가려다 몇 번 넘어졌다.

그때마다 사나이가 잽싸게 소연을 부축했다.

 

이젠 안 되겠다. 내가 잠깐 너를 안고 가야겠다.”

아니, ---”

가만히 있어라! 잡아먹지 않을 것이니...”

 

사나이는 소연을 번쩍 안아 들더니 몸을 날렸다.

소연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 눈을 꼭 감았다.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 날을 수가 있지, 할아버지에게 경공술이라도 배워둘 걸 그랬어, 그랬다면 벌써 무룡이에게 가 있었을 텐데,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굴까?’

 

소연은 자신을 구한 사람이 누굴까 의문이었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걱정도 되었다. 소연이 의문과 걱정으로 마음을 졸일 때 사나이가 걸음을 멈췄다.

 

다 왔다.”

 

-

아 야!”

엄살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아라!”

아니, 아니, 여기는 어~~~?”

“......”

사나이는 동굴에 들어오자마자 소연을 그대로 바닥에 동댕이치듯 내려놓고는 등불에 불을 붙였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온기가 있고, 바닥은 들짐승 가죽들이 깔려있었다. 취사도구도 준비가 되어있었으며 한쪽 벽 밑엔 이십여 권의 서책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있었다. 사나이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사나이가 아니라 60세가 넘었을 노인이었다.

“......”

 

, 이곳에서 사세요.”

그렇다. 이곳이 내 집이니라! 앞으론 네가 내 수발을 들어주어야겠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네에, 저 보고 어르신의 수발을 들라고요?”

그럼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냐?”

아 아니옵니다. 생명의 은인에게 어찌 약속을...”

그럼 되었다. 앞으로 십 년간만 내 곁에서 시중을 들어라!”

네에 십 년간이...”

소연은 말문이 막혀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우선, 네 몸에서 똥 냄새가 나니, 깨끗이 씻고 오너라!”

 

소연은 노인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몸을 씻을 만한 곳은 없었다.

 

어디...?”

 

소연이 넋이 나간 듯 벙벙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노인이 손가락질을 해댔다.

 

저 벽에 쳐있는 거적을 들춰봐라! 몸을 씻기에 그곳만큼 좋은 곳도 없을 것이다. 아주 깨끗이 씻어야 한다. 알겠느냐?”

, 거적 안에...?”

귀가 먹은 것이냐! 거적을 들춰보라니까!”

 

노인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소연은 노인의 목소리에 움찔하곤 대답했다.

 

,”

소연이의 목소리는 모기소리만큼 작았다.

 

주눅이 든 소연은 공손히 대답하고는 조심스럽게 거적을 들추고 안을 들여다봤다. 안은 작은 암동으로 되어 있었고, 중앙에 움푹 파인 샘이 있었다. 샘에서는 물이 부글부글 기폭을 일으키며 끓어올랐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온천인 것 같았다. 잠시 주춤거리며 안을 살핀 소연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온천물은 넘쳐서 바닥을 타고 구석에 난 작은 구멍으로 흘러나갔다. 약간 턱이진 바위 위에 바가지가 놓여있었다. 소연은 조심조심 샘 옆에 앉아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물은 몸을 씻기에 정당한 온도였다.

 

어르신이 아니었다면... 일단 몸부터 씻자.’

 

이미 자신은 죽었다 살아난 몸이라고 소연은 생각했다. 소연은 축축이 젖은 웃옷을 벗었다. 그리고 바가지로 물을 머리에다 퍼부었다. 따뜻한 물이 온몸으로 흘러내리자 짜릿짜릿한 희열이 느껴졌다. 그렇게 소연은 몸을 씻었다. 사실 말이지 소연은 그동안 얼마나 긴장하고 무서웠던지, 자신이 오줌을 지렸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 그러나 소연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에 빠졌다. 그렇게 자포자기에 빠지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소연은 실실 웃으며 미친년 목욕하듯 몸에다 물을 마구 퍼부었다.

 

흑흑, 이래선 안 되는데, 정신을 차려야지... 으흑,”

 

미친년처럼 물을 끼얹다 보니 괜히 슬퍼졌고, 그냥 눈물이 나다 보니 울었다. 울다 보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자영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무룡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텅 비었다. 그냥 칵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정신까지 놓을 순 없었다.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말거라!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것이 도리니라! 어떤 일을 겪었든, 그 일은 차후에 생각할 일이다. 우선은 살면서 생각해라! 사내든 여인이든 신의는 천금을 주고도 사지 못한다.”

 

소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노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소연의 고막을 강타했다. 소연은 노인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누가 뭐라고 그랬어요, 죽긴 내가 왜 죽어, 할아버지와 자영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도 봐야 하고, 무룡이도 만나야지, 그럼 무룡이를 만나서... 내가 왜 죽어!! 난 안 죽어!”

 

정신을 차린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독이 오른 독사가 되어있었다. 소연은 중얼거리며 목욕도 하고 더러워진 옷도 빨았다.

“......”

 

흐릿한 등불에 소연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팔등신 미인이 샘 옆에 앉아 목욕을 하고 있었다. 소연은 지금 수줍음 많은 여인이 아니라 어찌 보면 인생을 달관한 여인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밖에 있는 노인을 믿어서도 아닐 것이다. 자포자기를 한 것도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소연은 서슴없이 알몸을 드러낸 채, 온몸을 물로 씻었다. 불룩 솟아오른 젖무덤을 쓰다듬으며 소연은 긴 한숨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눈에 힘을 주었다. 어떤 중대한 결심을 한 것처럼...

 

이제 그만하고 나오너라!”

옷이 있어야 나가지요. 벗고 나가요.”

 

소연의 목소리는 앙칼졌다.

왜 자신이 이토록 쌀쌀맞게 말했는지, 소연도 흠칫 놀랐다.

 

이것을 걸치고 나오너라!”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이 거적을 들추고 쑥 들어왔다..

 

어머!”

놀라긴, 자 팔 떨어진다. 받아라!”

 

옷을 든 노인의 팔이 거적 안으로 반쯤 들어와 있었다.

소연은 잽싸게 가죽옷을 잡아챘다.

“......”

 

가죽옷이 얼마나 컸던지 소연의 알몸을 푹 감싸고도 헐렁했다. 어떤 동물의 털인지 맨살에 닿는 감촉이 너무 좋았다. 팔소매도 길었고 끝자락은 발에 밟혔다. 소연은 가죽옷을 잘 매만지고는 거적을 들추고 밖으로 나갔다. 노인은 물끄러미 소연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노인은 완전 산사람이었다. 수염과 머리는 봉두난발(蓬頭亂髮)이었고, 옷은 가죽으로 만든 반바지에 소매가 없는 가죽옷을 입었다. 몸집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당당했으며 눈은 부리부리했고, 나이는 적어도 60은 넘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소연은 노인이 무섭지가 않았다.

 

보기 좋구나! 이쪽으로 와 앉아라!”

그런데, 할아버진 누구세요?”

 

소연은 노인의 행색에 멈칫거리긴 했으나 놀라진 않았다. 마음을 비우니, 무서운 것도 하다못해 죽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 소연이었다. 소연은 노인의 일장 앞에 편하게 앉았다.

 

내가 누구더라? 내 이름이 어떻게 되었더라? 그렇지 한철, 그래 내 이름은 한철이라 한다. 아주 옛날 이름이지,”

노인은 독백처럼 중얼거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마도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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