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2권 2화

썬라이즈 2023. 9. 3.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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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이름은 한철이었다.

개봉성 어느 대상의 아들로 태어난 한철은 어려서부터 개구쟁이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개구쟁이 버릇을 못 버리고 망나니 생활을 계속했다.

 

한철이 엇나간 데에는 부모인 아버지 책임도 한몫했다. 한철의 아버지인 한 대인은 엄했으며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공부시켜 출세시킬 생각만 했다. 그러나 맏아들인 한철은 아버지 말은 듣지 않고 엇나가더니,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계집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술에 취해 기방에서 밤새 술을 퍼 마셨고, 아버지에게 역정을 들은 날은 아버지에게 반항까지 하게 되었다.

 

머리가 똑똑했던 한철은 옆에서 공부하는 것을 슬쩍 훔쳐본 것으로도 공부한 자들보다 월등한 차이를 보였었다. 그런 한철이지만 공부엔 취미가 없었는지 공부 소리만 나오면 십리 밖으로 도망을 쳤다. 한 대인이 아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그냥 내 버려두었다면 달라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 대인은 맏아들인 한철에게 집착을 보였고, 그런 아버지에게 한철은 반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한철은 친구들과 어울려 단골인 기방에서 술을 먹게 되었다. 그때 같은 또래인 고위관리의 아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결국은 불상사가 생겼다. 그 싸움에서 관리의 아들이 넘어졌고,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다쳐 뇌진탕으로 죽었다. 정당방위였으나 힘이 있는 관리와 시비를 가린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때부터 한철은 스스로 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살인자로 지명수배가 내려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건으로 집안은 몰락했다.

 

한철은 쫓기는 신세가 되어 산속을 전전했다. 그렇게 산속을 전전하던 한철은 어느 고묘(古墓)에서 무공비급을 습득하여 무공을 익히게 되었다. 그 후부터 세상을 등지고 떠돌다가 이 동굴에서 이십 년째 살고 있었다.

 

그래, 네 이름은 어떻게 되느냐? 그리고 만화곡 늙은이하고는 어떤 사이냐?”

노인이 실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저희 할아버지를 아세요?”

알기는, 그냥 국화를 좋아하는 늙은이가 두 손녀와 산다는 것만 안다. 아마 그 늙은이가 만화곡에 와서 산지가 나처럼 한 이십 년쯤 됐나, 잘은 모르겠다.”

노인은 눈을 끔벅거리며 말했다.

“......”

 

소연은 이 노인이 보통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절대 자신을 해할 그런 분이 아니란 걸 알게 되자 한시름 놓았다.

 

저는 소연이라고 해요. 할아버지는 제가 두 살 때, 어머니 품에서 죽어가는 저를 구하셨죠.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제 동생 자영이는 할아버지의 친손녀가 맞아요. 그런데 지금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셨는지...?”

그랬구나, 오늘은 이만 자자, 너는 그 옆에서 자거라!”

할아버지와 자영이가 걱정이라...?”

 

소연은 마음이 안정되자 할아버지와 자영이가 걱정이 되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노인이 한소리 해댔다.

 

소연이라 했지, 소연아! 네가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만 자거라! 알겠냐?”

그래도...”

! 그만 자라, 내일 얘기하자꾸나!”

, 알았어요.”

 

소연은 정말 피곤했다.

잔뜩 긴장했다가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나니 자꾸 눈꺼풀이 감겼다. 노인이 말하지 않아도 소연은 곧 쓰러져 잠들 판이었다. 노인은 그런 소연의 마음을 아는지 먼저 코를 곯았다.. 소연은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동굴 밖은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다.

 

***

 

깜깜한 어둠 속,

빗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초옥이 보였다. 방 안에서 새 나오는 불빛이 아니었다면 초옥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방안에서 사내들의 비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릿한 불빛에 방안의 정경이 드러났다.

무룡이와 아버지인 만복철이 마주 앉아있었다.

무룡의 머리나 옷에선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무룡아! 어찌 그런 일이 다 있단 말이냐? 선인께서 변을 당하시다니, 나는 도저히 믿지를 못하겠다.”

아버지! 놈들의 무공이 얼마나 높았으면 할아버지께서? 저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소연이와 자영이가 어디로 갔을까요. 분명 우리 집으로 왔을 텐데, 무슨 변고라도 당한 건 아니겠죠. 혹시 습격한 자들의 손에... 아버지 나가서 찾아봐야겠습니다.”

무룡아!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네가 나선다고 낭자들을 찾을 것 같으냐? 잘못하면 너까지도 위험에 처할 수가 있다. 네가 살펴봤듯이 놈들은 적어도 몇십 명은 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만복철은 엄하게 꾸짖었다.

 

아버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무룡아! 내가 듣기로는 무림인들은 무슨 원한이 있다면 끝까지 아니다. 벌써 자시(子時). 그만 쉬어라! 아침에 같이 찾아보자꾸나!”!”

 

만복철은 선인이 무림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말 못 할 깊은 사연이 있었겠구나 생각했었다. 게다가 오늘날 이런 일까지 당하고 보니, 무룡의 앞날이 얼마나 고난의 길이 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버지! 아버지도 그만 쉬십시오. 저는 씻고 자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무룡은 밖으로 나와 처마 밑에 있는 커다란 장독 뚜껑을 열었다. 그리곤 웃통을 훌훌 벗고 바가지로 물을 퍼 머리에 부었다. 활활 타오르던 열기가 치지직거리며 식는 것 같았다.

“......”

 

한참 동안 끓어오르는 울분을 식히듯 물세례를 해댄 무룡은 방에 누워 잠을 청했다. 눈꺼풀은 무거웠으나 머리는 명경지수처럼 맑았다.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소연아! 자영아! 어디 있니? 부디 무사해라! 그런데 소연아, 지금 생각해 보니까, 할아버지가 너를 우리 집에 왜 보내려 했는지, 이젠 확실히 알 것 같다. 분명 할아버지는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거야! 그런데 왜, 대비를 안 하셨는지 그것은 의문이다.”

무룡으로선 신선 같고 절대적일 것 같은 할아버지가 그토록 처참히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음이었다.

 

할아버지! 진즉 보내시지 않고요. 이게 뭐예요. 진정 할아버지를 능가하는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보아하니 할아버지는 장력에 당하셨어요. 그것도 마공비록에 적혀있는 독마장에... 가슴과 심장이 녹아 있는 것을 보면 짐작이 됩니다.”

 

태궁의 끔찍한 몰골이 떠올랐을까, 무룡이 부르르 떨었다.

 

할아버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할아버지가 마공비록을 갖고 계셨던 것도, 분명 마공비록은 마교의 비록인데, ? 비록을 저에게 주셨는지, 진정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않을 겁니다. 후일 꼭 진상을 밝혀 한을 씻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소연이는 제가 꼭 찾겠습니다. 소연이만 좋다면 각시를 삼을 생각입니다. 아버지도 좋아하셨고, 어머님도 며느리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무룡은 한참 동안 중얼거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인시(새벽 4시 10분)경이었다.

무룡은 그때서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무룡이 바윗덩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공을 대성한 것도 아니다. 거기다 이틀 전서부터 가전(家傳) 무공을 배우느라 날밤을 꼬박 새웠다.. 그랬으니 피곤도 했을 것이었다. 사람은 육체적인 것만 피곤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피로를 더 크게 느끼기도 한다. 무룡은 지금 육체적 정신적 피로에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사실이지 무룡은 20여 일 동안 감내해 내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겪었다. 어머니의 죽음, 가문의 멸문, 생모의 끔찍한 죽음까지, 그리고 태궁의 처참한 죽음과 정인(情人)인 소연과 자영의 실종이 바로 그것이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그때까지 무룡은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푹 자라!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겠지, 불쌍한 놈!”

 

만복철은 무엇을 만드는지 굴속 같은 부엌에서 한참 칼질을 하고 있었다. 중얼, 중얼거리면서...

 

만복철은 한참 동안 부엌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간 뒤, 만복철이 부엌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는 장끼의 깃털들이 수북이 들려있었다.

 

이젠 일어날 때가 됐는데, 아니 더 자도 된다. 아주 푹 자라!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은 산으로 올라가거라! 이왕 결심한 일 다른 일 때문에 의지가 꺾여선 절대 안 된다. 소연이는 내가 찾아보겠다. 그러니 너는 네 할 일만 충실히 하면 된다. 알겠느냐?”

 

만복철은 꿩 털을 버리러 가면서도 계속 중얼댔다.

“......”

 

꿩 털을 버리고 돌아서던 만복철이 잠시 서쪽 하늘을 바라다봤다. 붉게 물들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분명 내일은 날씨가 화창할 것이라고, 그리고 소원하나를 더 빌었다. 무룡이 굳건한 의지로 뜻을 굽히지 않기를...

“......”

 

 

같은 시각, 어둠이 일찍 찾아든 오리목나무 숲 속,, 불빛이 새어 나오는 군막 안에서 굵직한 사나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군막을 지키는 자들의 눈빛이 날카롭다.

군막 안, 흉측하게 얼굴을 감싼 단구의 노인과 천태일, 그리고 자영과 이십여 명의 흉흉한 자들이 모여 있었다.

 

사부님! 아무래도 그 계집은 놓친 것 같습니다. 근동 마을까지 이 잡듯 뒤졌지만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영아! 네가 한번 말해 보거라!”

제 사부가 되겠다고 하셨죠, 정말인가요?”

 

귀마가 부르자 분홍색 무복을 날렵하게 차려입은 자영이 발딱 일어서선 앙칼진 목소리로 엉뚱한 말을 해댔다.

 

그렇다. 네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 맹서 하지...”...”

좋아요. 그렇담 말씀드리죠. 소연인 저와 친자매가 아니에요. 그래서 무공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집안일엔 아는 바가 없어요. 그냥 착하기만 했지, 그리고 소연이가 집을 비운 지는 보름쯤 됐어요. 장안인가? 친척 집에서 혼인 얘기가 있다면서 연락이 왔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보냈어요, 혹시 알아요. 좋은 짝을 만나서 혼인을 했는지...”

자영아! 말에 책임을 지겠느냐?”

못할 것도 없지요. 사실이니까?”

 

자영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쌀쌀맞게 대답했다.

귀마는 번뜩이는 눈으로 자영을 한차례 쓱 쓸어봤다.

 

태일아! 자영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나는 일단 철수를 할 것이다. 너는 남았다가 만화곡을 샅샅이 뒤져라! 분명 꼬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 사부님! 혈살대만 남게 하고 돌아가십시오, 계집을 잡아 곧 뒤를 따르겠습니다. 틀림없이 계집을 잡아가겠습니다.’

귀마와 천태일은 아주 빠르게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듣거라! 혈살대는 공자를 모시고 이곳을 정리한 뒤 교로 돌아오라! 너희들은 나를 따라 성내로 돌아간다. 오늘 밤은 성내에서 지낼 것이다. 자영아! 너도 나와 함께 간다. 따라라!”

복명! 복명!

 

귀마는 말을 끝내자마자 군막을 나섰다. 그 뒤를 십여 명의 흑의 인들이 따랐다. 많은 인원이 움직였음에도 발소리 하나 나질 않았다. 자영도 마지못해 따라가듯 천태일을 힐끗 흘겨보고는 군막을 나섰다. 그 순간 천태일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제기지랄, 사부님은 공연히 제자를 삼겠다고 나서 가지곤, 그래 교에 가서 보자, 어차피 너는 내 계집이니까. 내 계집!’

천태일의 입에 비릿한 웃음이 어렸다.

 

모두 듣거라! 분명 계집은 산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은 쉬고 날이 밝는 대로 만화곡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 비밀스러운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도망친 계집이 돌아올 수도 있고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공자님!”

좋다, 이젠 배를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아도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낮에 어슬렁거리는 멧돼지 새끼를 잡았습니다. 통구이를 해 드시면 맛이 그만일 겁니다. 술도 준비했습지요,”

그럼 빨리 준비해라! 쩝쩝--”

천태일은 입맛을 다시며 나무의자에 등을 기댔다.

“......”

 

사나이들은 대부분 삼사십 대의 인물들로서 생김새부터가 험상궂고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하지 못할 무위와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

 

혈살대(血殺隊)는 총인원 열 명으로 구성된 천태일의 그림자 같은 호위무사들이다. 혈살대는 마교 내에서도 막강한 무위를 지닌 인물들만 차출해 만들었다. 그들은 살인수업을 철저히 받은 마교의 진정한 살수들이었다.

 

군막 밖에서는 모닥불이 지펴졌고, 멧돼지 새끼가 꼬챙이에 꿰여 통구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글거리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숲 속 여기저기서 푸른 눈빛들이 이글거렸다. 냄새를 맡고 찾아온 늑대와 들개들이었다.

 

그런 때에 제일 음침한 곳에서 늑대의 움직임 같은 기척이 들렸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가죽옷을 입은 사나이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사나이는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는 흑의 인들을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었다.

 

, 대단한 놈들이다. 헌데 저 작자들은 도대체 무엇하는 작자들일까? 분명 만화곡을 습격한 자들인데, 초막이 불탄 것으로 봐선, 태궁이란 늙은이는 죽었을 거고, 그런데 아까 그 계집애는 분명 자영이었다.. 그런데 왜? 놈들을 순순히 따라갔지,, 아무래도? 이것을 소연이에게 말을 해 말아, 일단 돌아가자, 놈들도 오늘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으니...’

 

한철 노인은 비호 같았다..

노인이 움찔거린 순간 노인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계속

 

창작은 상상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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