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이었다.
아담한 전각을 호위하듯 늘어선 일곱 그루의 적송이 눈에 들어왔다. 대나무 숲의 이방인이라 할 유일한 적송(赤松)이었다. 그 적송 앞이었다. 언제부터 나와 있었을까, 여랑과 조사의가 적송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여랑은 안절부절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조사의는 담담히 대전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가씨! 곧 만나게 될 텐데...”
“할아범! 제 심정이 어떤지 알잖아요.”
“하지만 아가씨! 원세 앞에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지금 원세는 죽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그러니 제 마음이 더 아프죠.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원세가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만도 천운이 따랐음입니다. 그러니 감사히 생각해야 합니다.”
여랑은 진가장을 떠나온 이후로 하루도 편히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다. 눈만 감으면 원세의 얼굴이 떠올랐고 바보 같은 미소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준 사람은 유모와 할아범인 조사의였다.
그런 때에 진가장이 습격을 당해 불바다가 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여랑은 남았던 식솔들과 원세 부모님까지 화를 당했다는 말에 결국은 몸져누웠다.
여랑이 몸져눕자 아버지인 진충원이 더 놀랐었다.
진충원은 그때 생각했다.
원세를 여랑의 호위무사로 곁에 둘 생각을---
여랑은 조사의 덕분에 좋아진 상태였지만 수척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고 성숙해진 몸매는 상큼한 여인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있는 탓에 땅거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하늘을 덮을 듯 무성한 대나무 숲이라 성은 다른 곳보다 밤이 일찍 찾아들었다. 여랑은 원세가 빨리 나타나길 기대하며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조사의는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휘이잉- 휘리링--
사라락, 사라락,
밤이 되자 한 번씩 몰아치는 밤바람에 비비적거리는 대나무 소리가 으스스하게 들려왔다.
한 전각,
낭인 출신의 호위무사들이 기거하는 전각이었다. 방은 10여 개쯤 되었고, 불이 켜진 방엔 원세와 철인이 마주 앉아 얘길 나누고 있었다. 바로 철인의 거처였다. 원래 결혼한 자는 별도의 전각을 배정받았으나 독신자들은 두 명이 방 하나를 배정받아 함께 생활했다.
“원세야, 네가 결심을 했다니, 말리진 않겠다. 하지만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 명심하거라!”
“염려 마십시오. 제게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일단 아가씨를 뵙고... 숙부! 몸조심하십시오. 제 느낌이지만 숙부를 경계하는 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네가 느낄 정도였다니, 알겠다. 조심하마!”
‘...음, 처음부터 달라 보였는데, 그것이 뭘까? 그래 힘을 키우거라! 넌 충분히 해낼 것이다. 복수도...’
철인은 원세를 처음 안았을 때부터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기운을 느꼈었다. 그때는 원세도 경계를 푼 상태였기에 철인이 그 기운을 쉽게 간파를 했을 것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원세,
철인은 매사 잘해 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황련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날이 밝았다.
원세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머릿속을 맴도는 의혹들을 하나하나 따져도 봤고, 여랑을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할까 생각도 했다. 사실 의혹도 의혹이지만 여랑을 만날 생각에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식사시간이 되자 원세는 철인을 따라 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대부분 낯선 무사들이었고, 안면이 있는 몇 명 무사들은 아예 원세를 모른 척했다. 원세로서는 그들이 반가웠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들에게 먼저 인사할 정도로 마음에 여유는 없었다.
아침을 먹고 전각에 돌아오자, 쌍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의외이긴 했지만 쌍노는 웃는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고약한 인상이 좋게 보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늘 인상만 쓰던 쌍노로선 이유야 어떻든 장족의 발전한 것임엔 틀림이 없었다.
“철인은 전각에서 대기하라! 원세야, 가자!”
“쌍노 할아버지! 아가씨께 가는 겁니까?”
“네놈이 아가씨가 보고 싶긴 많이 보고 싶었던 게로구나!”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아가씬 제가,”
“됐다. 아가씨가 기다리고 계신다. 따라라!”
쌍노를 따라가는 원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음, 주인님 말씀대로 놈이 아비에게 무공수련을 받은 것이 틀림없군.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하여튼 천수 그놈을 죽인 것은 잘한 일이야. 그런데, 아무래도 철인 그자가 걸려---’
쌍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뒤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쌍노 할아버진 보통 할아버지가 아니다. 그 적발 늙은이도 그렇고, 장주님도 뭔가 달라 보였어, 전에는 무공에 조예가 없어서 몰라봤었는데, 광마 할아버지와 비교 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아, 으씨, 나를 감추는 일도 무공을 수련하는 것처럼 힘이 드네. 그래 매사에 조심하자!’
묵묵히 따라가는 원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얼마나 갔을까, 죽성 중앙에 자리한 대전을 지나치고도 반 각쯤 지났을 때였다. 쌍노가 걸음을 멈췄다. 100장 앞쪽에 일곱 그루의 적송이 있었고, 그 아래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었고 그리웠던 여랑과 조사의 그리고 유모였다.
100장이면 제법 먼 거리다.
사실 전 같았으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이목구비까지 보일 정도로 원세의 눈은 밝아져 있었다. 그만큼 광마와의 인연이 원세에게는 특별한 기연임에 틀림이 없었다.
-----------계속
응원은 모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
'검투사의 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투사의 아들 2권 9 (2) | 2022.10.28 |
---|---|
검투사의 아들 2권 8 (0) | 2022.10.25 |
검투사의 아들 2권 6 (0) | 2022.10.14 |
검투사의 아들 2권 5화 (0) | 2022.10.11 |
검투사의 아들 2권 4화 (2) | 2022.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