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9월,
어김없이 찾아온 천고마비의 계절이었다.
안휘성 청양현에 위치한 구화산이 쪽빛 하늘 아래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99개의 산봉우리가 제멋을 뽐내듯 절경을 자랑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선 고송들, 깊은 계곡과 폭포, 기암괴석과 동굴들, 그리고 푸름을 자랑하는 대나무숲이 독특한 절경으로 조화를 이뤘다.
99개의 봉우리 중에서도 남쪽으로 치우친 죽봉(竹峰)이 한눈에 들어왔다. 죽봉은 아래로 펼쳐진 대나무숲으로 인해 그야말로 푸른 바다에 솟아있는 섬 같았다.
대나무숲이 파도가 치듯 바람에 넘실거렸다. 그때마다 거대한 이무기가 지나간 것처럼 꾸불꾸불한 길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길은 군데군데 끊긴 것처럼 보였으나 죽봉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나무숲으로 이어진 길은 입구에 있는 한 장원의 후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장원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대나무숲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장원 후문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50장쯤 올라가자 성문(城門)과 성벽(城壁)보다도 더 견고해 보이는 대나무 울타리가 나타났다. 너무도 교묘하게 만든 대나무 울타리라 언뜻 보기엔 빼곡한 대나무숲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끝도 없이 이어진 대나무 울타리는 커다란 죽성(竹城)의 성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문은 여러 개의 굵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들었으며 높이만도 3장에 이르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문 위는 물론이고 성벽을 따라 교묘하게 위장된 망루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번뜩이는 살벌한 눈빛만 아니었다면 망루가 있는지조차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성문엔 용사비등(龍蛇飛騰)의 필체로 양각된 사황련(四荒聯)이란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었다. 마치 붉은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끝도 보이지 않는 죽성 안,
곳곳에 들어선 크고 작은 전각들만 수백 채가 넘었다. 그 전각들 가운데 탑처럼 지어진 5층 전각이 한눈에 들어왔다. 죽성에서도 후원 깊숙이 자리 잡은 5층 전각 주위는 햇살에도 불구하고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게다가 경계를 서는 흉흉한 눈빛들이 곳곳에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전각이었다.
전각 5층 창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방안은 중천의 햇살도 범접(犯接)하지 못할 정도로 붉은 안개가 뭉클거리고 있었다.
“무엇이라! 놈들이 명을 어기고 그냥 돌아왔단 말이냐!”
안개 속에서 냉엄한 일갈이 흘러나왔다.
“그렇습니다. 련주! 일단 그들을 만나 보심이...”
“알았다. 내 대전으로 갈 것이다. 놈들을 대령하라!”
“예, 련주!”
뭉클거리는 안개를 향해 납작 엎드려있던 적발 노인이 대답과 동시 움찔거렸다. 그 순간 노인은 바람처럼 그곳에서 사라졌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대단한 노인임엔 틀림이 없었다.
량산을 떠나온 원세 일행은 일각 전에 죽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한 전각으로 안내되었다.
지금은 명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원세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원세가 아는 곳이라면 진가장과 량산이 전부였다.
그런 원세였으니 크고 작은 읍을 지나칠 때마다 모든 것들이 생경하고 경이로웠다. 특히 수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객점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정말이지 신기했다. 현실인지 꿈인지 어리벙벙했었다.
그동안 원세는 생경한 일상에 대해 시도 때도 없이 철인과 덕보에게 물었다. 그때마다 덕보는 귀찮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철인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일상적인 것들까지 상세하고도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뿐만 아니라 요령까지도 일일이 가르쳐줬다.
그렇게 죽성에 도착한 순간, 원세는 별천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죽성에 들어서자 느낌부터가 달랐다. 육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이 흉흉한 살기였다. 그때부터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진가장 보다 몇 배의 무사들이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강한 의혹이 들었다.
의혹에 의혹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 보니 심기까지 불안해졌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숙부에게 이곳 사황련이 어떤 곳인지 대충은 설명을 들었기에 불안한 심기를 다스릴 수가 있었다.
어쨌든 여랑과 만난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풍객! 모두 대전으로 들라는 련주의 명이시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무사가 전각으로 불쑥 들어와 명을 전했다. 그러자 한쪽에 앉아 우거지상을 쓰고 있던 풍객이 벌떡 일어나 굽실댔다.
풍객은 이곳으로 오는 내내 우거지상이었다. 혹시나 문책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철인이나 원세가 명을 거역했을 때, 뜻대로 하라는 명이라도 받았다면 풍객은 틀림없이 원세와 철인을 죽이려 했을 것이었다.
전각을 나서자 사방으로 길이 나 있었다. 길가엔 대나무들이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었고, 곳곳에 세워진 크고 작은 전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뻗은 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자 우측으로 제법 커다란 대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굵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커다란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안에선 웃통을 벗은 무사들 100여 명이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바로 수련장이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이곳에 있는 것일까, 원세는 곳곳에서 느껴지는 번뜩이는 살기에 신경을 집중시키곤 사방을 예리하게 살펴봤다.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 원세가 긴장하긴 긴장한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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