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기의 순간,
몸을 굴려 한쪽 무릎을 꿇었던 젊은이가 검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곤 핏발 선 눈으로 거구의 상대를 노려봤다. 거구의 검투사도 이번엔 단칼에 목을 칠 것처럼 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결투가 치러졌다.
창! 챙강! 까까까깡!!!
으~ 윽!
요란한 금속성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고 젊은이와 거구의 사나이가 몇 차례 자리바꿈을 했다. 그때 듣기 거북한 신음이 들렸다. 현란하면서도 아찔아찔했던 상황은 끝나고 드러난 장내, 젊은 검투사는 검을 후려친 자세로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고, 거구의 검투사는 도를 내리친 자세로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그렇게 장내는 쥐 죽은 듯 침묵이 흘렀다.
쿵!
잠시 후,
거구의 검투사 목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이어서 거구의 몸이 통나무 쓰러지듯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때 만신창이의 젊은 검투사가 천천히 일어섰다.
와—와--
짝짝짝!!! 짝짝짝!!!
구경하던 수백 명이 일시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목숨을 건 젊은이의 용맹한 승리였다.
노예 검투사였던 젊은이는 거래에 따라 제갈 세가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제갈왕민이 내건 거래 조건은 노예 신분을 면천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장장 20년간, 그것도 제갈 세가의 호위무사로서 임무를 마쳤을 때의 얘기였다. 그랬음에도 젊은이는 사람 죽이는 검투사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기쁨에 제갈왕민의 제의를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호위무사 생활도 검투사 생활만큼이나 힘겨운 생활이었다. 특히 젊은이에겐 노예라는 신분이 따라다녔고, 동료 무사들에게도 환대를 받지 못해 따돌림을 당했다.
젊은이는 묵묵히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렇게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18년 전이었다.
젊은이는 가주인 제갈왕민의 명에 의해 한 인물을 살해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가주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세가로 돌아가던 젊은이는 뜻밖에도 쫓기는 한 여인과 마주쳤다. 여인은 만신창이의 몸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데 여인을 쫓는 무사들은 바로 제갈 세가의 동료 무사들이었었다. 그들은 ‘그년 잡아라!’ 소리치며 쫓아오고 있었다.
여인은 젊은이가 아니더라도 곧 잡힐 몸이었다. 젊은이는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여인을 돕자니 동료 무사들을 죽여야 하고, 여인을 외면한다면 여인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마도 붙잡힌 여인은 온갖 수모를 당한 후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여인은 만신창이의 몸으로 사력을 다해 달려와선 젊은이 앞에 맥없이 쓰러졌다. 그리곤 말없이 젊은이를 올려다봤다. 여인의 처연한 눈빛은 ‘살려주세요’라고 간절히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여인의 눈과 마주친 젊은이는 이 여인만은 살려야겠다고 작심을 하였다.
젊은이는 동료 무사들이 방심한 틈을 이용해 살해하고 여인을 구했다. 비록 자신을 업신여기고 등한시 여겼던 무사들이었지만 죽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한동안 자책도 했었다.
어쨌든 젊은이는 갈 곳이 없다며 평생 따르겠다는 여인을 어쩌지 못하고 거두기로 했다. 그때 젊은이는 여인에게 자신은 노예 신분이라고 신상에 대해 진실을 밝혔고, 여인은 이미 죽었던 목숨이니, 은인을 평생 모실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젊은이는 그런 여인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 여인이 바로 대도 묘 신수의 여식인 묘인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진 가장 장주인 진충원이 제갈 세가를 방문했다.
그때 진충원은 호위무사인 젊은이를 보게 되었고 젊은이에게 눈독을 들였다. 결국, 제갈왕민과 진충원간에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졌고, 젊은이는 진충원이 돌아갈 때 동행했다.
“원세야! 지금까지의 얘기가 내가 알고 있는 네 아버지의 과거사다. 하지만 네 아버진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거기에 대해선 말씀이 없으셨다. 내 짐작으론 배를 타고 산동으로 왔다면 신라나 백제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네 아버지의 무인다운 행동이나 무장의 기질을 보면 고구려 무장의 후손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저는 중원인이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그건 아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느냐? 너는 분명 좋은 가문의 핏줄을 이었을 것이다. 네 아버지를 보면 알 것이 아니냐! 그러니 매사에 당당해져라!”!”
“예, 숙부!”
자정이 넘어서야 철인의 얘기가 끝났다.
적막이 감돌자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쯧쯧, 불쌍한 놈! 슬픔을 참느라 가슴이 시커멓게 다 탔겠다. 너는 이 숙부를 믿고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언젠가는 원흉들을 밝혀내고 말 것이다. 쳐 죽일 놈들,’
철인은 원세의 의젓한 행동이 더 안쓰럽게 보였다.
‘나는 어느 나라 후손일까? 아버지께서는 한 번씩 동토에 있는 백두산이 영산(靈山)이라며 동쪽 하늘을 바라보셨지, 백두산과 연관이 있다는? 그땐 여쭤봐도 훗날 알게 될 거라며 웃기만 하셨는데, 소자는 참 바보였습니다. 왜 그러셨는지 이해도 못 했고 캐묻지도 못했으니까요. 이제야 아버지께서 자신의 나라를 그리워하셨음을 알겠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을까,
원세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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