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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9

검투사의 아들 27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장원의 한 허름한 전각이 은은한 별빛 아래 드러났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정원수들만 속살거릴 뿐, 전각 주위는 고요했다. 창마다 불이 꺼진 지 오래되었고, 오직 불이 밝혀진 방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그 방에서 흘러나오는 여인의 목소린 애절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天地神明)께 비나이다. 부디 지아비를 무사 귀환케 도와주소서! 이 한목숨 거둬 가시고, 우리 원세를 살펴주소서! 빌고 또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부디 지아비를, 원세를, 빌고 또 비나이다.” 방안이었다. 고씨 부인이 동쪽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빌고 있었다. 얼굴은 몰라보게 수척했고 소복을 입었다. 고씨 부인은 아들 원세가 산으로 올라간 그날부터 천지신명께 빌었다. 오늘도 허드렛일을 하느라 ..

검투사의 아들 2021.12.10

검투사의 아들 17

“할아버지, 귀 아파요.” 얼마나 웃음소리가 컸던지, 원세는 귀를 틀어막았다. “흐흐... 이리 가까이 앉거라!” “왜요?” “이놈이 겁을 다 내네.” “겁내긴 누가 겁냈다고 그래요. 자요. 왜요?” 원세는 주춤거리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괴인 맞은편에 앉았다. “손을 내거라!” “자요.” 원세는 퉁명스럽게 말하곤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겁이 났는지 내미는 손이 잔잔하게 떨었다. “으음, 제법 탄탄히 다져졌군. 어느 놈인지 제자 하나는 잘 뒀어, 그런데 이 기운은 뭐지? 아니야, 기혈 따라 흐르는 기운 때문인가? 허허, 이젠 늙었음이야, 됐다. 이놈아!” 한참 동안 진맥을 짚어본 괴인은 냅다 손을 뿌리쳤다. “그런데 할아버지! 역정은 왜 내세요?” 약간 짜증 섞인 원세의 목소린 제법 당당했다. ..

검투사의 아들 2021.10.23

검투사의 아들 5

그 시각이었다. 웅—우웅- 우우웅--- 한 번씩 지하 감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원세는 굳게 닫힌 동굴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적어도 반 시진은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었다. 세상에 아들을 사지에 가두는 아버지도 있을까, 원세의 얼굴이 흔들거리는 횃불에 드러났다. 부릅뜬 두 눈은 충혈이 되었고, 일그러진 얼굴은 보기조차 딱했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한다거나 미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일그러진 얼굴엔 굳은 의지가 어렸고 눈에선 독기까지 흘렀다. “아버지! 아버지의 어깨와 등은 그 누구도 넘지 못할 태산 같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작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 또한 못난 자식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자는 아버지 말씀대로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겁니다. 백일이 아니라 일 년,..

검투사의 아들 2021.09.17

검투사의 아들 3

휘리링-- 휘이이힝--- 계곡을 훑고 올라온 바람이 절벽에 부닥쳐 음산한 귀곡성을 질러댔다. 그리곤 부자의 옷자락과 머리칼을 흩날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마주 보지 않았다. 그들은 어둠에 잠식당한 계곡을 응시한 채, 할 말만 하곤 입을 굳게 닫았다. 사실 천수는 아들이 동굴에 갇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아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평생을 쫓기는 신세로 산다는 것 자체를 천수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니 머지않아 면천이 될 것이기에 천수는 때를 기다리고 있음이었다. 천수는 기한이 되면 면천을 시켜주겠다는 장주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오랜 세월 동안 간과 쓸개까지 빼놓고 목숨을 걸고 충성을 바쳤다. 대략 일각 정도 흘렀을 것이다. 천수는 들고 있던 ..

검투사의 아들 2021.09.14

검투사의 아들 2

소년이 아버지의 손에 끌려간 지, 한 시진이 지났다. 여기저기 등불이 내 걸린 장원은 적막이 감돌았다. 그때 한 허름한 전각인 와가(瓦家) 안에서 여인의 흐느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흑흑, 불쌍한 내 아들, 어쩌겠느냐, 부모 잘못 만난 탓인걸, 하지만 원세야! 너는 종이 아니다. 이점 명심해라. 그리고 아들아! 언젠가는 아버지께서 내력에 대해 다 말씀을 해주실 것이다. 으흑, 흑흑,” 흐릿한 불빛에 드러난 방안은 깨끗하긴 했다. 서책 몇 권이 놓여있는 책상 앞이었다. 한 여인이 흐느끼며 서책을 쓰다듬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상심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여인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뜯어볼수록 인자해 보였고, 비록 남루한 치마저고리를 입고는 있었으나 몸에서..

검투사의 아들 2021.09.11

노총각 장가보내기

노총각 장가보내기 글/썬라이즈 서울서 쌀가게 하는 큰 형님 같은 숙부, 설날 아침 늦게 도착해 서둘러 제사 지내고 부모님과 쑥덕공론을 했는지 내게 서울 가잔다. 칠순을 앞둔 아버지는 쌀가게 도우라는 것이 이유지만 어머니는 자식 장가보낼 욕심에 금 년 농사 걱정하지 말라며 눈물 젖은 옷 보따릴 챙기셨다. 서울에서도 변두리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 앞,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때부터 자리 잡았다는 박가 쌀가게는 밥맛도 좋고 인심도 넉넉한 쌀가게로 유명하다. 그 박가 쌀가게에 배달꾼이 새로 왔다. 정초부터 새로 왔다는 머슴 같은 배달꾼은 성실한 것이 재산이라며 하루 내내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서울 온 지 두 달, 길 건너 양지 미장원 개업하던 날이었다. 떡쌀 배달한 인연으로 초대받고 망설인 끝에 숙모 따라..

단편과 생각 2021.09.09

치매가 뭐니? 2

자연사랑/어린이 사랑 2, 엄마! 막내아들 왔어요. 글/썬라이즈 “누구세요?” “엄마! 막내아들 왔어요.” “막내 왔구나.” 처음 보는 청년이 방문을 열었다. 목소리가 작았던지, 청년이 대답 없이 막내아들이라고 말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막내 왔구나,’ 말하곤 웃어 보였다. 아마도 웃는 모습이 가관일 것이다. 앞니가 하나도 없으니 바보 같고 어린애 같을 것이다. 청년도 씩 웃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몸은 어떠세요? “나야, 잘 지냈지... 밥은 먹었냐? 밥 차릴까?” “밥 먹었어요. 엄마는 요?” “줘야 먹지?” 막내아들은 내가 자신을 알아본 줄 아는지 손을 잡으며 질문을 해댔다. 내 입에선 말이 술술 쏟아지듯 나왔다. 그런데 말을 실수했는지 막내아들의 얼굴이 변했다가 펴졌다. “형! 엄마가 ..

치매와 동거 2021.08.02

치매가 뭐니? 1

자연 사랑/아이들 사랑 자연사랑/어린이 사랑 부모사랑/자식사랑 1, 치매가 뭐니? 글/썬라이즈 나는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으니 당연히 아는 것이 없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현실만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아니 현실에서 큰 딸이라는 여인이 자신의 이름이 뭔지 물었다. 나는 대답을 못했다. 나이도 물었지만 고개만 흔들었다. 여인이 말하길 엄마는 86세고 자신은 64세라고 말했다. 그리곤 내가 낳았다는 자식들에 대해 설명했다. “엄마는 자식을 칠 남매나 두었어요. 아들이 넷, 딸이 셋, 내가 큰 딸 명숙이고, 큰 아들은 영석, 둘째 아들 재석, 셋째 아들 민석, 막내아들이 종석이고, 둘째 딸은 창숙, 막내딸은 미숙이잖아요. 잘 생각해 보세요.” 여인이 목멘 소리로 차근차근 말했지만 이상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

치매와 동거 2021.08.02

시/새벽이 가진 것들

새벽이 가진 것들 시/중3 박오성 새벽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벽은 고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든 사람들의 고요한 숨소리를 모아 새벽의 소리를 만듭니다. 새벽은 상쾌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전날 아픔을 깨끗이 잊게 하듯이 상쾌한 냄새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새벽은 촉촉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의 모든 이슬이 한데 모여 우리를 구름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새벽은 밝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의 시작을 알리는 빛과 같이 사람들을 하나둘씩 어둠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새벽은 구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구수한 정을 자아내게 합니다. 새벽은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벽은..... ^(^...아들이 중학교 때 쓴 시입니다. 코로나 119, 힘..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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