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객들과 아침 산행에 나선 사람들이 몰려올 즈음 대박이는 고당봉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천천히 걸어가자,”
대박은 천천히 걸어서 산성마을 입구까지 내려왔다.
잠시 걸음을 멈춘 대박은 산성마을을 바라봤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마을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대박은 아주머니에게 반갑게 말을 걸었다.
“네에, 안녕하세요.”
“저 아줌마, 얼마 전에 한 식당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면서요. 그때 그 아가씨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사실 대박은 식당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정말로 궁금했다.
“그 강간미수사건 말이 군요,”
“예 그 사건 말입니다.”
“그때 과장인가 하는 사람은 갈비뼈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잡혀갔고요. 아가씨도 병원에서 치료받았다는 얘기만 들었어요. 뉴스에도 나왔어요. 참 그때 범인을 잡은 청년을 경찰에서 찾던데, 그 청년이 아니었으면 아가씨가 큰일을 당했을 거예요. 그 식당은 문 닫았고요. 주인이 알면서도 모른 척 방관했다고 하잖아요. 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니까요.”
아주머니는 입을 열자 술술 말도 잘 했다.
“그랬었군요. 아주머니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대박은 꾸벅 인사했다.
“... 잘 가요.”
아주머니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모처럼 만에 전철을 탈까, 그게 좋겠다. 참, 연희 엄마는 잘 있겠지, 남편은 벌을 받았을까, 뉴스에 나왔다면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전철을 생각하니까 이번엔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던 연희 엄마가 떠올랐다. 그날은 다행스럽게도 이웃 주민들의 도움으로 남편을 경찰에 신고를 했었지만, 그 후의 일이 어떻게 됐는지,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 남편이라고 죄값도 받지 않고 풀려나 다시 행패를 부린다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전철역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박이는 서면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교통카드를 사용했다. 교통카드는 아주머니가 사용하던 하나로 카드인데 잔액이 5만 원쯤 남았다며 용돈과 함께 쓰라고 준 것이었다. 그리고 소라는 스마트폰을 사라고 말했지만 아직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곤 다음에 사기로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전철을 탔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전철에 오르자 빈자리는 고사하고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객실은 초만원이었다. 콩나물시루란 말이 헛말이 아님을 직접 겪으니 실감이 났다. 그뿐이 아니었다. 성희롱, 성추행 등이 전철이나 지하철에서 왜 많이 발생하는지 알만했다.
‘지긋지긋 해, 정말 이 생활을 얼마나 해야 하는 거야, 내차로 출근할 수만 있다면, 몸이라도 팔고 싶다. 아...’
누군가의 넋두리가 대박이의 고막을 강타했다.
‘오늘 감원 발표가 있다고 했는데 설마 난 아니겠지,’
“.......”
‘마누라, 아침부터 미안했어, 맘 같아서는 잘 대해주고 싶은데, 요즘 회사가 어려워, 부도설이 나돌거든,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짜증이 나서 미안...’
“.......”
‘수정아, 내가 가진 건 없지만 너 하난 먹여 실릴 자신은 있다. 그래서 오늘 프러포즈 한다. 기대해라, 아싸!’
“.......”
‘엄마, 미안해, 딸이라고 있는 것이 엄마 아픈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그래도 엄마, 간암은 수술하면 낳을 수 있대, 내 간이라도 줄 테니까, 입원하자, 왠 고집, 속상하게...’
“.......”
대박이의 귀로 전해지는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세상은 이렇듯 희로애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청력이 좋은 것도 생각을 읽는 것도 마냥 좋아할 것도 아니란 말씀이네, 아이고 머리야, 이 일을 어찌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대박은 표현은 안 했지만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아했다. 특히 불순한 자들을 찾아내 응징할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흥분까지 되었었다. 그런데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분명 문제가 있음이었다.
“가만, 명덕 할아버지도 청력이 대단하시던데,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는지 여쭈어 보자, 그래 소림사 무술까지 익히셨다니까, 무공에도 조예가 깊으실 거야, 암튼 저승의 마력이 아닌 이승의 무공이니까, 활용도가 훨씬 클 거야, 항마심법처럼...”
대박은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도인인 명덕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서면 서면역입니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곧이어 전동차가 멈췄다.
아침 출근길이라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박은 가급적 사람들 시선을 피해 역에서 빠져나왔다.
대박이가 집에 도착한 시각은 8시경이었다.
소라는 학교에 갔고, 아줌마와 할머니가 식사 중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좀 늦었구나,”
“예 할머니,”
“아침을 먹어야지 먼저 씻어,”
“아줌마, 아침은 생각이 없습니다. 점심때 국수 먹으러 내려갈 게요. 지금은 컴퓨터로 뭘 좀 찾아볼 것이 있어서요. 할머니 식사 맛나게 많이 드세요.”
“대박아 나보단 네가 식사를 거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강은 규칙적인 식사로부터 온단다. 그러니 앞으로는 규칙적인 식사를 하도록 해라,”
아침을 건너뛰겠다는 대박이 말에 할머니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예 할머니, 가급적 식사는 거르지 않겠습니다.”
대박은 꾸벅 인사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대박은 책상 앞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리곤 뉴스를 검색했다.
온천동 연희 엄마 가정폭력사건’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결과 없음이라고 떴다.
아니 결과가 있기는 있었다.
그 사건은 엉뚱한 사건으로 실렸다.
사건 내용은 이러했다.
온천동 모 연립주택에 사는 한 가정주부가 이웃 주부들과 한편이 되어 남편을 폭행한 사건으로 기록되어있었다. 사건은 남편의 말버릇을 고치기 위해 부인이 이웃 주부들과 짜고 남편을 집단 폭행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 사건은 이웃주민들이 가정폭력사건으로 남편을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남편이란 자가 주민들을 집단폭력으로 고소를 했다. 남편은 어금니가 반파된 사진과 갈비뼈가 부러진 상해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어쨌든 주부들과 연희 엄마는 남편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진술했으나 경찰에서는 부부싸움에 주부들이 나서서 남편을 구타한 사건으로 보고 합의를 권했다. 사건은 남편을 폭행한 청년은 주부들과 부인이 만들어 낸 거짓 진술로 보고 엉뚱하게도 주부들이 집단폭행한 사건으로 결론이 났음이었다.
연희 엄마와 주부들은 사실을 진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해를 행사한 청년을 증인으로 데려올 수 없기에 남편의 고소에 꼼짝없이 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아내에게 반성한다면서 앞으론 잘할 테니, 연희를 생각해 이번 사건을 덮자고 회유했다. 연희 엄마와 주부들은 어쩔 수 없이 남편의 말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들은 느닷없이 나타나 일만 크게 벌여놓은 청년을 원망했다.
“제기랄,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상황이야, 그 새끼, 정말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암튼 법이 문제야, 문제,”
대박은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게 이승의 법이라면 뭔가 허점이 많아, 법대로 한다는데 경찰이라고 어쩌겠어, 증거가 없으면 살인자도 살인자가 아니니, 이런 개떡 같은 법(法) 대신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적용시키는 거야, 확실하게...”
별안간 대박이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제길, 그렇다고 함부로 나설 수도 없고, 그래 명덕 할아버지를 뵙고 의논하자, 할아버지라면 답을 주시겠지,”
대박이는 방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계속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긍정의 삶으로 파이팅입니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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