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경, 집을 나선 대박은 잠시 2층 난간에 서서 자신을 돌아봤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일들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실제상황인지 재차 확인한 것이다.
“나 박 대박, 겸허히 받아드리겠습니다. 하늘의 뜻이건 누구의 농간이건 관여치 않겠습니다. 정의의 사자로서 당당하게 세상의 등불이 되겠습니다. 꿈과 희망을 위해...”
그동안 수차에 걸쳐 자신을 돌아본 대박이었다.
지금의 현실이 실제상황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한 대박은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것들을 겸허히 받아드리기로 작심했다. 희망이 있어야 삶에 의욕이 생긴다. 꿈이 있어야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크거나 작거나 꿈을 이룬다면 그것이 행복이요, 희망이 있는 세상이다. 대박은 꿈을 이루어주는 정의의 사자가 되기로 작심했다. 희망의 전도사가 되기로 작심한 것이다. 대박은 하늘을 우러러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부님, 곧 갑니다. 보고 계시다면 제자의 뜻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대박은 발걸음도 가볍게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대박이가 고당봉에 도착한 시각은 5시경이었다.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고당봉은 고요하기만 했다.
“마음을 닦는 것은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 앉거나 서거나, 걸어갈 때도 마음을 닦아라, 마음이 깨끗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다스린 것이다. 항마심법은 마기를 제압한다.”
대박은 동쪽 바위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어쩌면 사부인 염마왕께서 이승에 오기가 껄끄러울 수도 있겠는데, 이승과 저승은 엄연히 다른 세계잖아, 그동안 왜 그걸 몰랐을까, 죽은 자가 이승에서 활보를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럼 내가 저승에 갔다가 온 것은 말이 되나, 그것도 지옥의 문지기 염마왕의 제자가 되었잖아, 아, 정말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승에서 내가 할 일을 할 거야, 사부님은...’
“그래 제자야, 사부인 나는 내 할 일을 할 것이다.”
어떤 낌새도 없이 적발노인 염마왕이 나타났다.
“기척이라도 내시지, 사부님 오셨습니까?”
대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숙여 인사했다.
“제자는 잘 있었느냐,”
“예 사부님,”
“13일 동안 수련도 열심히 했겠지,”
“예 사부님,”
“제자야, 앞으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이승에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저승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 명심하고, 제자는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저질러도 된다. 왕창왕창 박살을 내면 스트레스도 확 풀릴 거다. 그리고 제자야 복수를 할 땐 가차 없이 처리해야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알겠느냐?”
염마왕은 여느 때와는 달리 조용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 속에 뼈가 있었다.
“예 사부님, 그런데 사부님, 저희 부모님을 죽인 자들을 잡고 싶습니다. 그들의 신상명세를 말씀해 주시지요.”
대박이는 차분하게 말했다.
“뭐라, 놈들의 신상명세를 알려달란 말이냐, 이런 쯧쯧, 이놈아, 정신 차려라, 이승의 법도가 있다면 저승의 율법이 있다. 그 법을 어기면 큰 벌을 면치 못한다. 그렇지만 이놈아, 네놈 능력이라면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성을 높였던 염마왕이 눈에 불을 켰다가 껐다.
화를 참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음, 사부님이 약해지신 건가, 암튼 좋은 징조, 게다가 이승과 저승의 법도와 율법을 내세우셨단 말이지, 히히히...’
“......”
“제자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승의 법도가 있듯이 저승의 율법이 있다는 것을 깜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론 이런 실수는 하지 않겠습니다. 사부님,”
대박은 일부러 큰소리로 잘못을 시인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머지않아 동이 틀 것이다.
“사부님, 떠나시기 전에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시지요. 제자는 경청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대박은 일부러 염마왕에게 자신을 낮춰 보였다.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어떤 경우든 능력을 사용할 때는 ‘염라대왕이시여, 충복!’ 이란 주문을 꼭 외워야 한다는 것 잊지 말거라! 알겠느냐? 그리고 제자야, 부득이 내가 올 수 없을 때는 그 멍충이를 보낼 것이니, 그 놈 말에 따르도록 해라!”
“예, 멍충 아니 마설훈씨를 요. 그럼 사부님, 마설훈씨는 사부님 종인데 대 염마왕의 제자인 제가 종의 명령에 따르라는 말입니까, 저는 그렇게는 못 합니다.”
대박은 일부러 언성을 높여 말했다.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암튼 사부의 말만 전하도록 하겠다. 그러니 맘 쓰지 말고 어떤 상황이든 염라대왕이시여, 충복! 이라고 꼭 주문을 외어야 한다. 알겠느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그럼 언제 또 뵐지...”
“이놈아,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오지 않겠다고 했지 않았느냐, 이승에서 네놈이 할 일은 오직 저승을 바빠지게 만들라는 것이다. 네놈의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을 응징 하거라, 네놈 능력을 맘껏 누리며 살라는 얘기다. 이승의 말로 복수든 원수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처리해라!”
“예 사부님,”
“그럼 사부는 간다.”
슈욱-
대박은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떤 수법을 썼기에 순식간에 사라질 수가 있는지 염마왕의 제자로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만큼 수법이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마술 같았다.
“그럴 거야, 이승의 사람은 서로 교감이 있어야만 볼 수가 있다고 하셨지, 일테면 귀신이라는 얘기잖아, 아무렴 어때 염마왕은 지옥의 문지기인 수문장이고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분이니, 무슨 수법을 쓰든 기기묘묘하겠지,”
대박은 염마왕이 사라져간 하늘을 올려다봤다.
동쪽 하늘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만물을 포용하듯 위용을 자랑하며 떠올랐다.
염마왕이 떠난 직후, 건너편 암봉에 명덕 도인인 삿갓 노인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염마왕이 왔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듯 안개가 걷히면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악마도 무서운 것이 있고, 불안하기도 한 모양이지, 암튼 저승에 문제가 생기긴 생긴 모양이군, 대박아 잘 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음 닦는 일을 게을리해선 아니 될 것이다.”
대박이를 지켜보는 도인의 마음은 아기를 밖에 내놓은 듯 불안, 불안 조마조마할 것이었다.
만에 하나 대박이가 마성에 무너진다면,
너무도 끔찍하여 생각조차 하기 싫은 도인이었다.
----------계속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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