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1화

썬라이즈 2023. 8. 12.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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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가운 한나절,

노소가 천지봉 깊은 골짜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무룡은 몸에 딱 맞는 지게를 지고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올랐다.

지게는 아버지가 어깨나 등이 배기지 않도록 아주 편하게 만들어준 지게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버지는 천지봉 깊숙한 골짜기까지 들어가서야 지게를 벗었다.

 

주위는 곧게 자라지 못한 소나무와 낙엽송 그리고 오리목나무와 상수리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나무들은 기형적으로 자란 나무들이 태반을 차지했다.

땅이 척박해서가 아니었다.

돌들과 바위들로 이루어진 땅이라 뿌리가 곧게 뻗지를 못해 기형적으로 자란 나무들이었다.

그렇지만 어른들 한 아름이 넘는 굵은 나무들이 많았다.

 

“무룡아! 왜, 이곳까지 왔는지 아느냐?”

“아버지! 제가 그 답을 맞히면 아버지는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그럼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느닷없는 질문에 무룡이 선뜻 대답했다.

 

무룡은 이곳까지 오면서 줄곧 ‘왜?’라는 의문을 상기시키며 아버지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았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지게를 벗는 순간 그 의문이 풀렸다.

그동안 아버지는 나무를 다닐 때, 꼭 필요한 나무들만 찾아서 다녔다는 것을...

“.......”

‘이놈이 뭘 물어 보겠다는 거지...?’

무룡의 뜬금없는 제의에 만복철은 아들을 쳐다봤다.

그리곤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먼저 질문을 해라! 그런 연후에 대답을 해주겠다.”

“......”

말하는 언변으로 봐선 옛날 만복철이 아니었다.

만복철의 일상은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작하여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끝이 났다.

날마다 보고 듣는 것은 책 읽는 소리요, 선비들이 쓰는 어려운 말투와 예의범절이었다.

이것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무려 10년 이상을 마누라와 아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그랬으니 자연스럽게 말투도 의젓해졌고 말솜씨도 늘었다.

 

“아버지!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대답하시기 곤란한 질문을 할까 봐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질문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은 말씀드릴게요. 아버지는 상수리나무를 베기 위해 이곳으로 오신 것이지요. 그렇죠?”

무룡이 씩 웃었다.

“허허! 이놈 보게!”

만복철은 허허거리며 무룡의 어깨를 툭 쳤다.

“아버지! 우선 식사부터 해요. 배고파요.”

“......”

무룡은 여러 번 아버지께 궁금한 것을 여쭤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 대답은 ‘네 어머니에게 여쭈어 보아라,

그럼 말해 줄 거다.’ 라는 말씀뿐이었다.

그랬으니 따져서 질문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 부자(父子)는 조추월이 정성 들여 만들어준 주먹밥을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무룡은 아버지가 표시를 해 놓은 상수리나무 앞에 도끼를 들고 섰다.

 

사실 만복철은 읍성(邑城)에 사는 왕대인 댁에서 주문한 상수리나무를 베러 온 것이었다. 상수리나무는 숯은 단단하고 불꽃이 오래갈 뿐만 아니라 음식을 하면 그 맛이 좋기로도 이름이 나 있었다. 그런 관계로 만복철은 특별 주문을 받았고 언젠가 봐뒀던 이곳 만화곡(萬花谷) 입구까지 온 것이다.

 

쿵! 쿵! 쿵쿵! 쿵! 퍽퍽! 쿵!

만복철은 한 아름이나 되는 상수리나무 밑동을 힘차게 내리찍었다.

무룡도 자기 몸통만한 상수리나무를 내리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수리나무는 속이 얼마나 단단한지 쉽게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다.

쿵! 쿵! 쿵! 퍽! 퍽! 쿵!

그렇게 두 부자는 도끼질에 열중이었다.

 

그런 때에 그들 부자를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십장쯤 떨어진 바위, 한 노인이 바위에 서 있었다.

청색장포를 입었으며 백발에 백염(白髥)을 가슴까지 늘어트린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그들이 이곳에 왔을 때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지직 쿵!

“윽, 아으, 으--”

만복철의 힘 있는 도끼질에 아름드리 상수리나무가 기음(奇音)을 질러대며 패대기 쳐지듯 넘어졌다.

그 순간 뒤로 물러서던 만복철이 넘어져 신음을 흘렸다.

‘우라질,’

만복철은 넘어지는 나무를 피해 물러서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발목을 삐끗한 모양이었다.

만복철이 나무를 하러 다니다가 발목을 다치기는 이번이 난생처음이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무룡이 급히 달려와 아버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음, 발목을 삔 것 같다.”

“어디 봐요?”

“으 아야--”

“아버지! 큰일인데요, 뼈에 이상이...”

“그럼 큰일이 아니냐? 으---”

억지로 일어선 만복철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허허, 발목을 다친 게요, 어디 내가 한번 봐도 되겠소!”

별안간 나타난 신선 같은 노인이 말을 걸었다.

“할아버진 누구세요?”

무룡은 놀란 눈으로 노인을 올려다봤다.

“나는 저 아래 사는 할아버지란다.”

“네에~ 그런데 할아버지, 아버지가 발목을 다치셨어요..”

“큰일 날 뻔했구나, 내가 한번 봐도 되겠느냐?”

노인이 묵직하게 말했다.

“아버지! 그렇게 하세요.”

무룡은 노인의 풍모만 봐도 믿음이 갔다.

“선인께서... 송구스럽습니다.”

만복철은 노인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끄떡였다.

“자, 한번 봅시다.”

“아아...”

노인이 발목을 만지자 만복철이 인상을 써댔다.

“대인! 발목이 탈골됐고, 뼈도 금이 간 것 같습니다. 저 아래 만화곡이 내 집인데, 함께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소이다. 이대로 있다간 오랫동안 고생을 해야 할 게요.”

“아버지! 그렇게 하세요,”

“알았다. 선인께서 은혜를 베푸시니, 기꺼이 도움을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무룡아! 지게는 한쪽에 치워 놓거라!”

“네, 아버지! 그런데 할아버지 정말 만화곡에 사세요.”

두 부자가 신비한 듯 노인을 쳐다봤다.

 

두 부자는 노인이 만화곡에 산다는 말을 듣고서야 여기가 신선이 산다는 만화곡 입구라는 것을 알았다. 만화곡에 직접 들어가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천지봉 계곡 어딘가에 만화곡이 있으며 거기에 신선이 산다는 소문이 10여 년 전서부터 돌고 있었다.

 

“아버지! 지게에 타세요, 그 몸으론 못 내려갑니다.”

“네가 아버지를...”

노인이 놀란 듯 무룡을 쳐다봤다.

“우리 무룡이가 힘을 좀 씁니다.”

“그래요. 대인은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야! 나를 따라 오너라!”

노인은 앞서서 성큼성큼 걸음을 떼어놓았다.

 

무룡은 아버지를 지게에 태우곤 짊어졌다. 그동안 나무는 짊어져 봤지만 사람을 태우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100근이 넘는 아버지를 짊어지려니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무룡은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려 걸음을 떼어놓기도 힘이 들었다. 그런데도 비틀비틀거리며 노인을 잘도 쫓아갔다. 노인은 앞서 가면서도 한 번씩 뒤를 돌아다보며 연방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놈, 보면 볼수록 탐나는 놈이야, 힘도 장사고...’

노인의 얼굴엔 놀람이, 눈에선 이채가 발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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